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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니까”

소설은 주로 밤에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서 본다. 연구와 관련된 전문적인 내용의 글을 읽으면 오히려 잠이 깨는 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잠드는 순간까지 그렇게 치열하고 열심히 살아야 하나 싶기도 해서 지양하는 편이다. 아무튼 와이프와 내게는 하루 중 가장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다.

요즘 읽고 있는 소설은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Emily St. John Mandel)의 2014년작 『스테이션 일레븐』(Station Eleven).1 책을 크게 가리는 편은 아니지만 평소 취향과는 거리가 있는 소설인데 ‘인류 멸망 20년 후’를 그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어 든 이유는 아마도 몇 년 전 읽은 스티븐 킹의 고전 『스탠드』(The Stand, 1978)의 인상이 워낙 강하게 남아서인 것 같다. 물론 예상했던 내용과는 정반대로 흘러간다는 게 함정이지만.

킹의 『스탠드』는 호흡이 긴 소설이다. 그래서 인류가 멸망해 가는 과정 속의 삶이 상세하게 기록된다. 반면 총 55장으로 구성된 맨델의 『스테이션 일레븐』은 단 6장만에 인류를 싹 쓸어버린다. 사람들이 어떻게 죽어나가는지에 대한 묘사도 없다. 어떻게 멸망했는지 그런 것에는 관심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다. 그 후 생존자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자는 것이다.2

소설의 제목인 ‘스테이션 일레븐’은 소설 속 여주인공인 커스틴(Kirsten)이 인류 멸망 전부터 간직하고 있던 만화책 『닥터 일레븐』(Dr. Eleven) 1권 1호의 소제목이자 배경이다. 생존자 중 하나인 커스틴은 심포니(The Traveling Symphony)라는 그룹과 함께 이동하며 생활하는데, 가는 곳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공연하는, 이동 극단 같은 그룹이다.

인류가 원시시대로 돌아간 마당에 웬 셰익스피어냐고? 아마 심포니도—그리고 커스틴도—이 질문을 어지간히 받았나보다. 맨 앞에서 이동하는 마차 한편에 아예 “생존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니까”(Because survival is insufficient)라고 새겨 놓았고(11장), 커스틴은 자신의 왼팔뚝에 같은 문구를 문신까지 해 두었다(19장).3 비교적 앞부분에 등장하는 이 문구에 대한 (작가의) 답이 소설의 나머지를 이루고 있다. 마치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묻는 듯하다.

어젯밤 기절하기 전에 표시해 둔 책갈피를 보니 23장을 읽다가 잠들었다. 아직 절반을 조금 못 읽었는데 언제 다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4 이런 류의 소설이 풍기는 암울한 냄새가 없어 오래 두고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이 소설은 전혀 우울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격하게 아름답다. 심지어 인류 멸망 20년 후가 사무치게 ‘그리울’ 정도로.


  1. 읽고 있는 버전은 원서(전자책)이다.

  2. 물론 이 설명이 아주 정확한 것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20년 후’의 모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7장부터 소설이 끝날 때까지 ‘20년 전’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교차시킨다.

  3. 커스틴의 동료인 디터(Dieter)의 지적(19장)대로 이 멋진 문구가 《스타트랙: 보이어》(Star Trek: Voyager) 시리즈에서 가져온 대사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조금 더 그럴듯하지 않았을까 싶다.

  4. 치열하게 읽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일찍 잠이 오면 다섯 페이지도 못 읽고 잘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