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의를 보이는 것·들”

1. 괴상한 제목이다. 적의敵意? 싸우자는 건가? 아니다. 글쓰기 얘기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교정·교열에 관한 이야기다.

2. “적·의를 보이는 것·들”은 지금 읽고 있는 김정선 작가의 책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파주: 유유, 2015)의 장章 제목이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국내 1인 출판의 대표격인 유유 출판사가 하계 브랜드전을 진행하고 있어 한 달 전쯤 저렴하게 구입한 책 중 하나다.

3. 글을 맛깔나게 쓰는 사람들이 있다. 사견이지만 이건 훈련으로 극복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그마저도 10대 때 하지 않으면 사실상 어렵다고 봐야 한다. 인문계(음악학은 우리나라에서는 예체능계로 분류되지만…)에 몸담고 있으면서 훌륭한 글은 수도 없이 접하지만,1 이런 전문적인 글이나 문학 작품을 제외하고 만나는 ‘맛있는’ 글도 적지 않다. 예컨대 다음 스포츠에서 〈야구는 구라다〉를 연재하고 있는 칼럼니스트 백종인(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의 글이나 「북스조선」 어수웅 팀장의 문장이 내게는 그렇다.

4. 그리고 이번에 한 사람을 더 추가해야겠다. 김정선 작가. 이 사람 분, 글 참 잘 쓴다. 본인 스스로를 전문 ‘외주 교정자’라고 소개하지만 책도 벌써 여러 권 냈고 무엇보다 ‘작가’라는 호칭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글을 쓴다. 자꾸 글의 ‘맛’을 얘기하게 되는데,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처럼 기분 좋아지는 글이라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5. 이 책의 부제는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이다. 앞서 밝힌 대로 ‘글쓰기’가 아니라 교정·교열을 다루는 책이다. 비슷한 류의 책을 많이 접해 봤지만 (풍부한 예문으로 가득한) 내용뿐만 아니라 저자의 ‘글’ 자체에 이렇게 주목했던 경우는 많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책의 목적을 ‘정보 전달’로만 받아들인다면 물론 ‘실패’한 책이겠지만 그건 실패한 ‘독서’ 때문이기도 하다.

6.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가 재미있는 이유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형식’ 때문이다. 한 장 건너 한 장씩 우리말 문장에 대한 강의가 있고, 그 사이사이에는 개인적인 경험담이 에세이 형식으로 들어가 있다. 마치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를 읽는 것 같다.2

7. 상당히 공교롭게도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를 읽기 조금 전에 집사람과 일본 드라마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2016)를 보기 시작했다. 왓챠에서 “내용은 모르겠고 그냥 이시하라 사토미가 예뻐서 넋 놓고 보는 드라마”라는, 드물게도 정확한 맞춤법과 띄어쓰기로 작성된 리뷰를 보고 그런가 보다 하며 보기 시작했는데 웬걸.

8. 일단 “이시하라 사토미가 예뻐서 넋 놓고 보는 드라마”라는 말에 110% 공감. 나보다 와이프가 더 좋아한다. 그런데 “내용은 모르겠”다는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다. 실제로는 어떤지 몰라도 적어도 드라마상에서는 교열부에서 저런 일까지 하나 싶을 정도로 중요한 많은 일을 한다. 심지어 “그럼 편집부는 대체 하는 일이 뭐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9. 물론 드라마일 뿐이다. 하지만 ‘장인 정신’에 목숨 거는 일본을 생각하면 정말 현실에서도 저럴 수 있겠다는 생각 또한 들었다. 동시에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생각. ‘우리나라 출판사에서도 저렇게 꼼꼼히 교정·교열을 봐줄까?’

10. 드라마에 나오는 그런 대형 출판사와 작업해 본 적이 없다는 전제를 달고 아주 솔직히 얘기하면 내 마음속의 답은 부정적이었다. 며칠 전 “한국식 적당주의, 일본의 완벽주의 넘다”라는 얼토당토않은 제목의 글을 읽고 어안이 벙벙해졌는데. 물론 ‘적당주의’의 장점과 ‘완벽주의’의 단점을 중심에 두고 쓴 글이라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는 알겠으나 ‘적당주의’는 어떻게 포장해도 절대로(!) 자랑할 만한 게 아니다. 더군다나 그게 출판에 관한 문제라면. 하지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주의’인 것 또한 사실이지 않나.

11. 잠시 얘기가 다른 곳으로 샜는데. 하려던 이야기는 이번에 김정선 작가의 책을 읽고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도 저렇게 열심히 교정·교열을 봐주시는 분이 있구나… 하고 말이다.

12. 아직 다 읽지 못했지만 벌써 밑줄로 가득하다. 역시 전자책인 관계로 인용 페이지 대신 목차의 제목으로 출처를 밝힌다.


접미사 ‘–적’的과 조사 ‘–의’ 그리고 의존 명사 ‘것’, 접미사 ‘–들’이 문장 안에 습관적으로 쓰일 때가 많으니 주의해서 잡아내야 한다는 뜻으로 선배들이 알려 준 문구였다.

적·의를 보이는 것·들 ① 中

포스팅 제목에 대한 설명이다. 무작정 쓰지 말라는 뜻이 아니니 자세한 설명은 책으로 대신 하길.

기억하기로는 수정이 가장 적은 원고의 필자였지 싶다. 책을 많이 내 봐서 문제가 될 만한 문장을 미리 걷어 낼 만큼 노련해서가 아니라, 처음 책을 내는 사람의 긴장감이 문장 곳곳에 서려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기억한다.

편견 中

“처음 책을 내는 사람의 긴장감”이라…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의 글이라면 읽기도 전에 신뢰가 간다.

전문 번역가보다 관련 분야 연구자들이나 교수들의 문장이 더 안 좋았다. 오죽하면 해당 작가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에게는 되도록 번역을 맡기지 말라는 말이 다 있겠는가. 번역할 생각은 않고 각주를 통해 논문을 쓰려 한다는 게 편집자들의 불만이었다.

편견 中

역시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이다. 나도 모차르트 관련 역서 출간할 생각은 접어야 하나. 안 그럴 테니까 책 내주세요… ㅠㅠ

그러니 편견은 의심할 수밖에 없는 내가 아니라 늘 확신의 편에 설 수밖에 없는 글쓴이의 몫이 아니겠는가. 자신의 문장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편견 말이다!

편견 中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빼 보면 쓸데없다고 말하는 이유를 금방 알게 된다(좋은 문장은 주로 빼기를 통해 만들어진다).

적·의를 보이는 것·들 ④ 中

한 글자라도 더 썼을 때는 문장 표현이 그만큼 더 정확해지거나 풍부해져야지, 외려 어색해진다면 빼는 게 옳다.

굳이 있다고 쓰지 않아도 어차피 있는 ① 中

문장의 주인은 문장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문장 안에 깃들여 사는 주어와 술어다. 주어와 술어가 원할 때가 아니라면 괜한 낱말을 덧붙이는 일은 삼가야 한다.

굳이 있다고 쓰지 않아도 어차피 있는 ② 中

그래서 마감이 다가올 수록 분량이 자꾸 줄어드는 문제가 발생한다…


  1. 물론 x레기는 훨씬(!) 많이 접한다.. 10:1, 재수 없으면 20:1의 비율로..

  2. 학부 3학년 때 ‘인문학 2’(Humanities II)라는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이름의 (필수) 수업 시간에 이 소설을 읽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작곡을 전공했던 내게 칼비노 소설의 형식은 큰 영감 감동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