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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Lewin의 “Morgengruß” 분석

1. 이번 가을 학기에는 정말 오랜만에 음악 분석 수업을 맡게 되었다. 우리나라와 북미 지역에서는 여전히 ‘음악학’이라고 하면 ‘역사음악학’을 떠올리고 ‘음악이론’이나 ‘종족음악학’1과의 구분도 명확하지만 유럽에서는 조금씩 흐려지는 추세인 것도 같고 심지어 ‘musicology’와 ‘ethnomusicology’의 구분 마저 더 이상 의미 없다는 주장도 있다.2 이게 좋은 현상인지는 잘 모르겠고 지금 하려는 이야기도 아니다. 아무튼 이런 혼돈의 카오스 속에서 누군가 나의 음악학자로서의 정체성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는 망설임 없이 ‘음악분석가’라고 답한다.3 귀국 후에는 (굳이 따지자면) ‘음악학’ 수업을 훨씬 많이 한 것 같은데, 말하자면 간만에 집에 돌아온 기분이랄까. 그래서 딱히 설렌다는 얘기는 아니고.

2. 지금까지 강의하면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 교재를 사용해 본 적이 없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인데, 한 학기를 어떻게 꾸릴까 고민하던 중에 문득 David Lewin의 슈베르트 가곡 “Morgengruß” 분석으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Lewin의 “Morgengruß” 분석은 사실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염두에 두고 있는 건 2년 전 공식 발간된 1974년 분석이다.4 내가 Lewin의 분석으로 시작하려는 이유는 그의 분석이 탁월해서가 아니라5 분석을 대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3. 예컨대 Lewin은 본격적인 분석에 앞서 다음과 같은 말로 독자를 독려(?)한다.

독자가 가곡에 등장하는 모든 화음이나 화성진행을 “식별”(즉, 화성풀이)할 수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독자가 “프레이즈”나 “종지”, “강박强拍”, “으뜸(화)음에서 딸림(화)음으로의 진행” 따위에 해당하는 청각적 감각(aural sensations)에 익숙하냐는 것이다.

(Lewin [1974] 2015, 13–14)

풀어서 말하면 이런 것이다: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섬세한 ‘귀’를 갖고 있다면 화성풀이 따위 못해도 이 책을 읽고 분석을 이해하는 데 (지금 당장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내게는 이 말이 화성풀이와 분석을 동일한 것으로 착각하지 말라는 경고처럼 들린다. 쉔커식 분석이나 집합이론(혹은 변환이론)에 기반을 둔 분석도 종종 ‘분석’과 ‘해석’을 혼동하면서 오해를 받는다. 그러니까 내가 할 일은 학(부)생들이 분석과 해석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도록 좋은, 그리고 가능한 다양한 분석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다.

4. 내가 맡은 수업의 정식 명칭은 ‘음악 형식과 분석 2’다. ‘1’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2’라는 숫자가 그래도 뭔가 의미있는 시간이어야 한다는 묘한 압박감을 느끼게 한다. ‘형식’에 관해 공부하는 시간도 많을 텐데 단지 수업명에 ‘형식’이 들어가서 그런 것은 아니고, 내게는 ‘분석’이 곧 ‘형식 분석’이거나 거기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마침 Lewin의 분석도 형식에서 시작한다. 이 글을 계속 읽을 시간과 인내심이 있다면 아래 영상을 클릭해 슈베르트의 “Morgengruß”를 한 번 들어보라. 여기서 질문 하나: 이 곡의 ‘형식’은 무엇인가?

Schubert: Die schöne Müllerin, D.795 – 8. Morgengruß. Video by Dietrich Fischer-Dieskau – Topic

5. Lewin이 (일단) 던지는 답은 음악적 감각이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Lewin은 다음과 같이 ‘3부 형식’을 제시한다.6

mm. 1–4: (서주)
mm. 5–11: A
mm. 12–15: B
mm. 16–23: A′

6. 그런데 정말 위와 같이 ‘3부 형식’이라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Lewin의 떡밥에 보기 좋게 걸려든 것이다. 여기서부터 장장 100페이지에 걸쳐 이 곡이 왜 ‘3부 형식’인지/이 아닌지에 대해 설명한다.7 Lewin은 되묻는다.8 우리가 이 곡의 형식을 3부 형식으로 듣는 이유는 무엇인가? A′는 정말 A의 반복(reprise)인가? A와 A′는 어떤 면에서 유사하고 다른가? B는 정말 A, A′와 이견의 여지 없이 대비되는가?

7. 형식에 관한 문제와 더불어 고려해야 할 것은 ‘가사’다.9 1절의 가사(시)는 2~4절의 그것과 구조적, 문법적, 의미적으로 어떻게 다른가? 가사의 물리적 시간과 극적 시간은 각 절에서 어떻게 변화하는가? 화자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1절과 3절에서 사용되는 의문문과 2절과 4절에서 사용되는 명령문은 시의 구조, 더 나아가 곡의 극적 구조를 어떻게 바꾸는가? 1절의 마지막 행(6행)은 온전히 두 번, 부분적으로는 세 번 반복되는데 그 극적 의미는 무엇인가?

8. Lewin의 분석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그의 결론이 무엇이든 간에 그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보다 훨씬 중요한 건 분석이 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이러한 질문들을 던질 수 있게 해주는 과정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러한 질문들이 작품을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고 연주하고 감상할 수 있는, 한 마디로 ‘경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사실이다.

9. 꼭 2년 전 여름, 홍콩 생활을 정리하고 막 귀국했을 때 전자책이 먼저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침 아무것도 정해진 것 없는 백수였던 터라 공부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했던 와중에 누구한테? 안 그래도 기다리던 책이라 넋 놓고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감동이란.. 하지만 슬슬 내 기억을 온전히 믿을 수 없는 나이가 지경이 되어 정말 이 책의 내용으로 수업을 시작해도 괜찮을지 확인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책을 펼쳤다. 그리고 거기에 ‘분석’이 있었다.


  1. 요즘은 ‘종족음악학’이라는 표현 대신 ‘음악인류학’을 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것 같지만 논의의 목적상 잠시 사용한다.

  2. Nicholas Cook, “We Are All (Ethno)musicologists Now,” in The New (Ethno)musicologies, ed. Henry Stobart (Lanham, MD: Scarecrow Press, 2008), 48–70. 작년에 City University London에서 이에 관한 흥미로운 토론이 있었는데 YouTube에서 감상할 수 있다.

  3. 공식 서류상으로도 내 박사학위 전공 분야(Field of Study)는 ‘음악이론 및 분석'(Music Theory and Analysis)으로 기재되어 있다.

  4. David Bard-Schwarz and Richard Cohn, eds., David Lewin’s ‘Morgengruß’: Text, Context, Commentarie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5); Lewin의 1974년 분석 텍스트는 pp. 13–127. 학부 대상 수업이라 1986년 분석은 읽힐 수도 없고 당장 급한 일도 아니다. 관심 있는 독자는 다음 문헌을 참고하라. David Lewin, “Music Theory, Phenomenology, and Modes of Perception,” Music Perception: An Interdisciplinary Journal 3, no. 4 (1986): 327–92.

  5. 물론 탁월하다. 하지만 핵심은 그게 아니다.

  6. Lewin [1974] 2015, 16. 이 곡의 악보는 IMSLP에서 무료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Breitkopf & Härtel의 Schubert’s Werke 에디션을 추천한다.

  7. 총 23마디에 불과한 곡으로 115페이지를 떠든다.. 마디당 5페이지씩이다!

  8. 다음 질문들은 Lewin [1974] 2015, 21–23의 내용을 질문 형식으로 요약한 것이다.

  9. 다음 질문들은 Lewin [1974] 2015, 14–21의 내용을 질문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