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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안 되는 것들”에 대해 말하는 법

1. 포스팅 제목의 “분석 안 되는 것들”은 기시 마사히코의 저서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머리말의 제목이다. 일본에서는 2015년에 출간되었고 우리말 번역은 2016년 말에 나왔으니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그렇다고 아주 신간도 아니지만 호평 일색인 “이 자그마한 책”에 대해 알게 된 지는 이제 한 달 정도다.

2. 잠자리 독서용으로 구입한 (전자)책인데 딱 이틀 만에 잠자리에서 읽을 책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미뤄 두었다가 어제 저녁에 다시 집어 들었다. 사회학자인 저자가 풀어놓는 이야기들은 그 겉모습과는 달리 가볍지 않다. 아니, 오히려 무겁기 그지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쉽게 읽히지 않는다. 분야는 다르지만 나도 어쨌건 똑같은 ‘연구’를 하는 입장에서 저자가 던지는 말이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사회학을 연구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 경우에는 한 사람씩 찾아가 어떤 역사적 사건을 체험한 당사자 개인의 생활사를 듣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 조사를 끝내고 나서도 구술 내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라 끝없는 회의와 망설임과 한숨이 그치지 않았다. 개인의 이야기를 외부인인 내가 멋대로 해석해도 좋은지에 대해 딱히 답이 있을 리 없다.

머리말—분석 안 되는 것들 中

3. 여기까지만 해도 그냥 ‘양심적인 학자구나’ 정도로 생각했다. 나도 지금 본의 아니게—사학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어떤 특정 주제에 대한 ‘역사화’(historicization) 작업을 하고 있는 터라 저자가 말하는 “외부인인 내가 멋대로 해석해도 좋은지”에 대한 고민이 없지 않다. 그런데 저자의 이야기는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간다.

통계 데이터를 활용하거나 역사적 자료를 뒤적이거나 사회학적 이론 틀로 분석하는 것이 내가 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정말 좋아하는 일은 분석할 수 없는 것, 그냥 그곳에 있는 것, 색이 바래서 잊혀 사라지는 것이다. (…) 돌멩이도, 블로그도, 개의 죽음도 내 해석과 이해의 그물을 슬쩍 빠져나가 버린다. 그것들은 그저 그 자리에 있다.

머리말—분석 안 되는 것들 中

4. “분석할 수 없는 것, 그냥 그곳에 있는 것, 색이 바래서 잊혀 사라지는 것”이라는 대목에서 멈칫했다. 무슨 뜻일까?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한 말이라 좀 더 읽어 봐야 한다. 머리말 말미에 저자는 다음과 같은 고백을 남긴다.

사회학자로서는 실격일지 모르지만, 언젠가 ‘분석할 수 없는 것’만 모아서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이 책에서는 내가 아무리 용을 써도 분석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을 모아 언어화하고자 했다.

머리말—분석 안 되는 것들 中

5. “‘분석할 수 없는 것’만 모아서 책을 내고 싶다”니. 저자 자신의 말처럼 학자로서 “실격”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연구를 하면서 종종 “분석 안 되는 것들”에 부딪히게 되는데 그럴 때면 답답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나마 명확한 마감일 없이 진행하는 연구라면 잠시 거리를 두었다가 다시 시도해 볼 수 있지만, 전에도 언급했다 싶이 마감일 없는 연구는 결국 결과물도 없다. 그리고 마감일과 싸워야 하는 경우라면? 도망갈 곳이 없다.

6. 몇 달 전에 이렇게 분석 안 되는 것들 때문에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때 내가 멘토로 생각하는 어떤 선배 학자가 “그럴 때는 너무 고민하지 말고 ‘왜’ 분석이 안 되는지 풀어서 써 보라”는 조언을 해 주었다. 저자가 말한 “언어화”도 이런 것일까? 당시에는 마감일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던 터라 깊이 생각해 볼 여유도, 정말 그렇게 실행할 용기도 없었지만 돌이켜 보면 ‘논문’이라는 것이 연구의 ‘결과’여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당연해 보이는—공식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조언이 아니었나 싶다. 이것은 ‘결과보다 과정’ 같은 클리셰와는 다른 문제다. ‘분석 안 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종종 ‘실적’으로(만) 대표되는 논문의 근본적인 기능인 학문적 ‘탐구’에 좀 더 충실할 수 있다는 뜻이리라. 그런데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의 저자가 하려는 이야기는 이것과는 또 다르다.

7. ‘인생은 단편적인 것이 모여 이루어진다’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본문은 저자의 경고(?) 대로 “테마도 각각, 순서도 뒤죽박죽, 문체나 스타일도 들쑥날쑥하다”. 그래서 그저 단편적인 에피소드로 구성된 얕은 책 같지만 글의 밀도는 장章을 거듭할수록 더 이상 잠자리에서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진다.

이러한 단편적인 만남을 통해 이야기를 들은 단편적인 인생의 기록이 그대로 그 사람의 인생이라고 한다거나 그대로 그 사람이 속한 집단의 운명이라고 일반화하고 전체화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다.

우리 사회학자가 할 일은 남의 이야기를 분석하는 일이다. 한마디로 그러한 폭력과 무관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인생은 단편적인 것이 모여 이루어진다 中

8. 학자로서 자기가 하는 일이 “일종의 폭력”, 혹은 “폭력과 무관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반은 성공한 셈이지 싶다. 저자는 이 장章을 끝맺는 다음 두 문단으로 책 전체를 관통하는 대주제를 던진다.

이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손에 들고 들여다보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유한 존재라는 점이 명확해진다’ 같은 흔해 빠진 ‘발견의 스토리’가 아니다.

내 손바닥에 올려놓은 돌멩이는 그 하나하나가 둘도 없는,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세계에는 하나밖에 없는 것이 온천지 길바닥에 무수하게 굴러다니고 있다.

인생은 단편적인 것이 모여 이루어진다 中

9. 그렇지않아도 “흔해 빠진 ‘발견의 스토리’”라는 의심이 짙어지고 있던 차에 저자에게 보기 좋게 한 방 먹었다. 그리고 여기서 잠이 깼다. 몸풀기를 마친 저자는 바로 다음 장인 ‘누구에게도 숨겨 놓지 않았지만,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것’에서 논의를 밀도를 더욱 높인다. 이제 3분의 1쯤 읽은 것 같은데 쉽게 손에 잡히지 않지만 자꾸 손이 가는, 그런 이상한 책이다.

10. 나도 가끔 저자처럼 “‘분석할 수 없는 것’만 모아서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음악을 ‘분석’하는 학자로서 분석—그리고 해석—에 성공한 경우보다 그렇지 못한, ‘실패’한 케이스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음악 분석뿐만 아니라 음악이나 소리에 관한 ‘현상’을 분석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렇게 쌓아 둔, 하다 만 분석들이 자꾸 눈에 밟힐 때가 있다. 이 아이들을 ‘실패’한 분석이라고 불러야 할까? 그렇다면 이미 발표된 논문들은 ‘성공’한 분석이라는 ‘오만’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여전히 “그저 그 자리에 있”는 이 ‘실패’한 분석들을 언젠가 언뮤에 차례대로 풀어놓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