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근 한 달만의 포스팅이다. 작년에도 10월을 기점으로 두 달 동안 언뮤를 방치해 두었는데 올해는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11월 첫 글을 뒤늦게 끄적거린다. 늘 그렇듯이 여러 가지 일로 바빴다는 말 외에는 좋은 핑계가 떠오르지 않지만 언뮤에 신경쓰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집필 작업 때문이었다. 이번 학기는 ‘유례 없는’이라는 표현을 써도 좋을 정도로 강의 부담이 적어 연구와 집필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고, 그래서 마감의 연속이다.
2. 새로 쓴 논문 한 편이 출간되었다. 현재 재직 중인 한양대학교 음악연구소에서 발행하는 학술지 『음악논단』 최신호에 “바실리오와 피가로는 무엇을 들었는가? 오페라, 혹은 엿듣기의 예술”이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었다. 이것으로 올해 작업한 논문 중 세 편이 학술지에 실리게 되었는데, 다른 두 편은 출판 목록(Publications)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링크를 클릭해 발행 기관으로 들어가면 모두 무료로 파일을 받아 볼 수 있으니 괜한 곳에서 커피 한 잔값을 들여 가며 구입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 (그래 봐야 저자인 나에게는 단돈 10원도 안 들어온다.) 어렵게 쓰는 데에는 도무지 재주가 없어 오페라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굳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읽고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지 않을까(라며 약을 판다).
3. 우리 업계(?)에서는 1년에 논문 세 편을 발표했으면 나름 열일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데, 불행히도 아직 끝이 아니다. 위의 논문을 투고한 후에도 심사 기간 동안 두 편의 글을 더 완성했고 지금은 내 손을 떠나 있다. 그중 한 편은 게재가 확정되어 1차 편집이 마무리되어 가는 모양인데 피드백이 오면 게재되는 순간까지 편집자와 씨름해 가며 수정해야 한다.
4. 더 큰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고 그동안 손 놓고 있었던 단행본 챕터 두 장도 이번 달 중으로 마무리해야 한다. 이 두 편의 글까지 탈고하고 나면 초고가 작성된 논문 다섯 편이 남는데 이것들에 대해서는 해를 넘기고 겨울 방학이 되어야 제대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2017년의 남은 두 달(벌써!)은 투고한 논문 두 편의 사후 처리와 첫 단독 저서, 그리고 번역서 출간을 위한 기획서와 샘플 작성에 집중할 계획이다.
5. 갑자기 이렇게 미친 듯이 논문을 써 대면 실적에 대한 압박이 있다거나 출세(?)에 환장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하는데 (아내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둘 다 별로 관심이 없다. 이제 글로 옮겨도 되겠다고 확신하기까지의 연구 기간이 조금 길었을 뿐이고, 어쩌다 보니 올 한 해에 그동안의 연구 성과가 쏟아져 나오는 것일 뿐이다. 실제로 작년에는 단 한 편의 논문도 발표하지 않았는데 일단 충분한 준비(=연구)가 되어 있지 않았고, 부족한 10%를 채우기에는 강의 부담이 유독 심했던 한 해이기도 했다. (덕분에 수입은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역시 덕분에 올초 연말정산 때 한 달치 수입을 고스란히 뜯겼으니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실적, 출세, 이런 것보다 평생 기록으로 남겨질 논문을 (속된 말로) ‘쪽팔리지 않게’ 쓰는 게 내게는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대충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써도 될 만하다고 판단이 섰을 때, 알아서 쓴다.
6. 언뮤에 소흘했던 또 한 가지 이유는 건강상의 문제 때문인데, (굳이 이제 와서 밝히는 게 이상하지만) 지난 추석 연휴 때 난생처음으로 의식을 잃고 쓰려졌다. 이달 말에 몇 가지 검사(심장내과)를 앞두고 있지만 문진(問診)에 기초한 1차 진단명은 ‘미주신경성 실신’이다. (다행히도 그렇게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는 뜻이다. 왜 이제 와서 처음 경험하게 되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사실 나는 실신을 막연히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했었는데, 직접 겪어보니 그런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실신하기 직전 찰나 가슴이 답답하다는 느낌만 있었을 뿐 쓰러지는 과정도, 내가 쓰러졌다는 사실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바닥에 주저앉아 금방 샤워라도 마친 듯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고, 아내가 놀란 표정과 목소리로 나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집사람은 나 때문에 10년은 늙었다고… 다행히 10년까지는 아닌 것 같다!
7. 추석 연휴 직전까지 계속되는 마감으로 스트레스도 없지 않았고 좀 무리를 하긴 했지만 마감 당일을 제외하곤 딱히 밤을 새운 것도 아니고 몸도 나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긴장이 풀린 탓이었으려나. 아무튼 중요한 건 (이번에 깨닫게 된 사실이지만) 사람이 한 순간에 허무하게 갈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강조하건대 실신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정신을 잃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작별 인사도 못했다거나 아직 못다 한 일이 있다거나 따위의 얘기가 아니다. 그냥 어느 한 순간, 내가 더 이상 없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이 생각보다 쉽게 죽지 않는다는 말도 분명 맞지만 언제 어떻게 생이 끝날지 모르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8.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봤는데. 100세 시대인 것도 맞고, 앞으로의 인생 계획도 중요하고, 다 좋지만 ‘의미 없는 일’만 하다가 한 순간 사라지는 것은 아무래도 싫다. 우리나라에서 의미가 괴상하게 변질된 ‘욜로’(YOLO) 얘기 하자는 게 아니고. 이 조어(造語)의 원래 의미, 요컨대 (내게) ‘의미 있는 일’에 관한 문제다.
9. 다행히 ‘의미 있는 일’을 (이제서야) 조금씩 찾아 가고 있는 것같다. 요즘도 이 책 저 책 손에 잡히는 대로 읽고 있는데, 그중 Mark Manson의 The Subtle Art of Not Giving a F*ck (2016)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1 제목이 아름답다… 오늘도 ‘의미 없는 일’, 혹은 ‘의미 없다’고 판단되는 일에 과감히 “I don’t give a flying f*ck!”을 날리며 아내와의 행복한 일상을 찾아 간다. 왠지 모르게 “flying”을 넣고 싶었다.훨씬 찰지다! 모두 아프지 말고 건강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