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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음악실

2. 클래식 음악의 저작인격권?

KBS 음악실 ‘계희승의 음악 허물기’ 2018년 6월 4일 방송

2019 프로야구 개막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곳에도 밝혔듯이 저는 ‘야구에 살고 야구에 죽는’ 야생야사(野生野死)…까지는 아니지만 ‘야구를 보지 못 한 날은 기분이 좋지 않다’고 할 정도는 됩니다. 이 글을 올리고 있는 지금은 겨우내 담금질한 결과를 확인하고 상대의 전력을 가늠해 보는 시범경기가 진행 중이죠. 예년과 다른 점이라면 TV 중계가 없다는 것. 중계권을 둘러싸고 복잡하게 얽힌 방송사와 통신사, KBO의 관계 탓은 아니라는 게 공식 입장이지만 그다지 설득력 있게 들리지는 않습니다. 각설하고.

우리나라 야구장의 관전 문화는 야구의 본고장 미국이나 8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과 사뭇 다릅니다. 그리고 그 ‘다름’에 큰 지분을 차지하는 요소가 바로 음악입니다. 선수마다 고유의 등장곡이 있고, 소위 ‘떼창’으로 전달되는 응원가는 때로는 상대 진영을 압도하기도 하죠. 그런데 작년 이맘때, 역동적인 응원 문화를 즐기는 야구팬에게 청천벽력의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른바 ‘저작인격권’(moral rights) 침해와 보상에 관한 소송. 응원에 사용되는 음악 대부분 국내외 대중가요를 편곡, 개사해 사용하는 데서 비롯된 문제였습니다.

이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 일반적으로 알려진 저작권은 ‘저작재산권’. 반면 저작인격권은 공표권, 성명표시권, 동일성유지권을 포함합니다. 이 중 문제가 된 건 원작의 동일성유지권. “저작자가 자신이 작성한 저작물이 어떠한 형태로 이용되더라도 처음에 작성한 대로 유지되도록 할 수 있는 권리”(저작권법 제13조)가 침해되었다는 거죠.1 쉽게 말하면 ‘내 작품 마음대로 바꾸어 사용하지 마라’.

저작인격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직접 만들어 쓰거나 저작권이 만료된 음악을 사용하는 것. 하지만 전자는 초기 비용을 투자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또 다시 저작인격권 문제로 귀결될 수 있다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몇몇 구단은 후자의 길을 택했죠. 저작권이 만료된 음악, 예컨대 클래식 음악으로 눈을 돌립니다. 평소 즐겨 듣는 야구 팟캐스트에 출연한 어떤 기자는 일찌감치 응원가에 클래식 음악을 적극 활용한 모 구단의 사례를 들며 야구 한 경기 보고 나오면 굉장히 교양 있어진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저작인격권이 정말 클래식 음악에는 적용되지 않을까요? 오늘의 주제입니다. 느닷없이 야구 이야기로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죠. 우선 한 곡 듣겠습니다. 물론 오늘 주제와 결은 다르지만 맞닿아 있는 곡입니다. 1782년 초연된 모차르트의 오페라 《후궁 탈출》(Die Entführung aus dem Serail, K. 384), 제2막, 장면 3, 콘스탄체의 아리아(11번) ‘어떤 고문이 나를 기다린다 해도’(Martern aller Arten). 프리마 돈나의 기교를 뽐내기에 더없이 훌륭한 곡입니다.

Mozart: Die Entführung aus dem Serail, K. 384 / Act 2 – Nr. 11 Arie: “Martern aller Arten” (Live). Video by Various Artists – Topic

《후궁 탈출》의 대본은 슈테파니(Gottlieb Stephanie)가 브레츠너(Christoph Friedrich Bretzner)의 유명 희곡을 각색해 완성했습니다. 많은 오페라가 그렇듯 이 오페라 역시 각색 과정에서 내용이 많이 바뀌었죠. 문제는 모차르트의 오페라가 자신의 원작을 훼손했다며 브레츠너가 ‘너 고소!’를 선포한 것.2 오늘날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대본 작업 전에 원작자의 허락을 구하고 판권을 구입하는 게 수순이겠지만 저작물에 대한 권리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으로 보호받기 시작한 건 20세기 초.3 브레츠너가 실제로 고소를 했더라도 쉽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실제로 20세기 들어 클래식 음악계에서 벌어진 저작인격권 관련 사례가 있습니다. 디즈니社의 《판타지아》(Fantasia, 1940).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Le Sacre du printemps, 1913)이 삽입된 것으로 유명하죠. 문제는 원곡의 내용과는 전혀 다른 내러티브가 그려졌다는 것. 이에 대해 스트라빈스키가 원작의 ‘인격’이 침해되었다며 불편함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Rite of Spring. Video by Leopold Stokowski – Topic

스트라빈스키가 《판타지아》 제작 당시 생존해 있던 유일한 작곡가다 보니 벌어진 일입니다. 하지만 정작 법적 절차를 밟은 쪽은 스트라빈스키 본인이 아니라 《봄의 제전》의 권리를 소유한 출판사 Boosey & Hawkes. 1993년부터 디즈니를 상대로 진행한 8년간의 소송 끝에 미화 3백만 달러에 합의했습니다.4 편의상 1달러=1,000원으로 계산해도 30억. 물론 지금 30억과는 다릅니다…

전 세계의 어린이, 심지어 성인에게도 큰 울림을 준 애니메이션에 이런 일(?)이 얽혀 있었다니 동심 파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예술업계도 철저히 비지니스 중심으로 돌아갑니다.5 당연히 존중받아야 할 권리인 동시에 클래식 음악, 더 나아가 예술이 시장 논리에서 어디까지 자유로울 수 있는지 고민하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음악과 관련된 저작물의 ‘범위’를 한정하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예컨대 법학자 라잔(Mira T. Sundara Rajan)이 2015년 발매된 「글렌 굴드 리마스터드 전집」(Glenn Gould Remastered: The Complete Columbia Album Collection)과 관련해 내놓은 해석은 범위 한정의 어려움을 잘 보여 줍니다.6 무려 81(78+3)장의 CD로 구성된 이 전집의 셀링 포인트는 최적의 환경에서 최고의 기술로 최대한 원음에 가깝게 (리)마스터링 했다는 것. 하지만 아시다시피 굴드는 음반의 처음부터 끝까지 정확히 자신의 의도대로 통제하길 원했던 음악가였습니다. 굴드는 본인의 통제 없이 이루어진 이번 리마스터링 결과에 만족했을까요?

Quartet for Piano, Violin, Viola & Cello in E-Flat Major, Op. 47: III. Andante cantabile (Remastered). Video by Glenn Gould

워낙 예측이 안 되는 인물이라 단언할 수는 없지만 굴드도 좋아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예측해 봅니다. 저는 적당히 건조하게 한 음 한 음 꾹꾹 눌러 연주하는 이 음반을 참 좋아합니다. 특히 내성(內聲)을 이토록 강조한 연주는 거의 들어 보지 못 했는데 이 곡의 매력은 내성이 자아내는 불협화음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짐작컨대 이쯤 되면 연주자의 해석에 따라 애초에 이런 방식으로 녹음했을 겁니다. 믹싱, (리)마스터링 과정에서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졌겠죠. 굴드도 굴드지만 줄리아드 현악사중주단(The Juilliard Quartet)의 ‘리즈 시절’ 연주라 더욱 애착이 갑니다.

2012년 6월 채택된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 ‘시청각 실연에 관한 베이징 조약’(Beijing Treaty on Audiovisual Performances)에 ‘연주’(performances)의 저작인격권 조항(제5조)은 있지만 전통적인 의미의 연주 개념을 넘어서는 ‘녹음된 소리’에 관해서는 (아직) 명시되어 있지 않다고 합니다.7 하지만 요즘 추세로 보건대 새 조항이 추가되기까지 그렇게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군요. 클래식 음악은 저작(인격)권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것 같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권리가 인정됩니다.

재차 강조하지만 당연히 존중받아야 할 권리입니다. 다만 이에 관한 논의가 (특히 국내의 경우)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계속해서 시대에 맞게 변화해 가겠죠. 최근 법원은 모 구단과 작곡가들 사이에서 진행된 소송 1심에서 편곡, 개사가 원작자들의 저작인격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8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더 두고 봐야겠지만 어떤 방향으로 결론이 나든 이것 하나만은 분명합니다. 음악이 우리 삶의 일부라는 것! 남은 주말 평안히 보내시길 바랍니다.


  1. 김기태, 『저작권: 편집자를 위한 저작권 지식』, 살림지식총서 345 (파주: 살림출판사, 2008).

  2. Hermann Abert, W. A. Mozart, trans. Stewart Spencer, ed. Cliff Eisen (New Haven, CT: Yale University Press, 2007), 667.

  3. 저작인격권은 기본적으로 프랑스 개념이라고 합니다. 기원을 따지면 1777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군요. 다음 문헌은 저작인격권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Mira T. Sundara Rajan, Moral Rights: Principles, Practice and New Technology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1), 31–113.

  4. Kate Sutherland, “The Rights (& Wrongs) of Stravinsky’s Rite of Spring,” Law.Arts.Culture, 25 February 2011.

  5. 그나저나 《판타지아》가 정말 어린이 대상이 맞는지 의문입니다. 어릴 때 LD로 수십 번도 더 본 것 같은데 솔직히 재미없었거든요.

  6. Jeremy, “Glenn Gould and the Case for Moral Rights in Sound Recordings,” The IPKat, 4 October 2015. 라잔은 각주 3에 언급한 문헌의 저자입니다.

  7. ‘베이징 조약’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 문헌을 참고하시면 도움이 됩니다. 이동기, “시청각 실연자의 권리와 그에 관한 베이징 조약 연구,” 『원광법학』 제32권 제3호 (2016): 109~38; 한지영, “시청각실연자의 법적 보호에 관한 고찰: 베이징 조약을 중심으로,” 『계간 저작권』 제29권 제4호 (2016): 169~94.

  8. 김식, “프로야구 응원가 다시 울려퍼지나,” 『중앙일보』, 2019년 2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