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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음악실

91. 페테리스 바스크스의 (합창) 음악

KBS 음악실 ‘계희승의 음악 허물기’ 2020년 3월 9일 방송

주말 아침, 언제나처럼 모 일간지 북 섹션을 훑던 중 눈에 들어온 책이 있습니다. 지야드 마라의 『평가받으며 사는 것의 의미』. 과연. 대학 강사로서 학기 단위로 받는 강의 평가는 당장 그 다음 학기(또는 학년도) 출강 여부에 적잖은 영향을 미칩니다. 연구원 자격으로 받는 업적(사실상 논문) 평가는 또 어떻고요. 연구 과제 지속 여부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마라의 책에서 논의되는 ‘평가’가 모두 이렇게 살벌한(?), 그러니까 생업과 직결된 성격의 것은 아닙니다. 우리말 번역본의 부제는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 평범한 일상조차 ‘평가’의 대상이 되어 버린 시대에 어떻게 의미 있는 삶을 살 것인가를 다룬 책입니다.

그러고 보면 저도 주 1회, 〈KBS 음악실〉 같은 인기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평가 항목을 또 하나, 아니 둘 늘린 셈입니다. 제작진의 평가(개편 회의 때마다 반영되겠죠?), 그리고 애청자의 평가. 특히 애청자의 평가(…라기 보다는 실시간 반응)는 (생)방송 중 진행자를 통해 전해 듣기는 하지만 게스트 자리에 모니터가 없는 관계로 직접 보지는 못 합니다. 대신 제가 (아무런 근거 없이) 나름의 척도로 삼고 있는 수치가 있으니 바로 선곡표 조회수입니다.

아주 가끔, 조회수가 폭주할 때가 있습니다. (사실 폭주는 오버고 ‘음악 허물기’ 평균 대비 그렇다는 것이니 오해 없으시길.) 지난주 에릭스 에센발즈(Ēriks Ešenvalds)의 합창 음악이 그랬습니다. 정말 많은 분들이 선곡표를 클릭하셨더군요. 이유는 다양할 겁니다. (위에서 ‘아무런 근거 없’다고 말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역시 좋은 음악은 통한다고, 바람대로 에센발즈의 합창 음악이 힐링이 되었다고 믿고 싶을 뿐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사람의 목소리에는 정말 그런 힘(치유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에는 라트비아 작곡가 페테리스 바스크스(Pēteris Vasks, b. 1946)의 음악 준비했습니다. 바스크스의 합창 음악은 연초에도 한 번 소개한 바 있습니다. 〈침묵의 열매〉(The Fruit of Silence, 2013). 당시 반응이 폭발적이었죠. 오늘 선곡에도 합창 음악 두 곡 포함되어 있으니 바로 들어 보겠습니다.

Vasks: The Fruits Of Silence. Video by Voces8 – Topic

합창곡 Pater noster. 직역하면 ‘우리 아버지’. ‘주기도문’입니다. 바스크스의 아버지가 성직자(개신교 목사)였다고요. 아들에게 주기도문 작곡을 주문했다는군요. 하지만 구소련 시절, 합창 음악, 특히 종교 음악을 쓰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기악 음악 작곡을 독려했죠. 오랫동안 미루다가 결국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1991년이 되어서야 작곡, 발표했습니다.

바스크스는 70대 중반의 나이에도 왕성히 활동 중입니다. 긴 커리어만큼이나 작풍도 다양하죠. 바스크스의 음악을 잘 아는 사람들에게 Pater noster는 1991년 기준으로 보면 놀라울 정도로 협화적인 조성 음악입니다. 종교 (합창) 음악은 3화음 중심이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라고요. 들어 보죠. 지그바르츠 클라바(Sigvards Klava)가 지휘하는 라트비아 라디오 합창단(Latvian Radio Choir)과 리가 신포니에타(Sinfonietta Riga)의 연주입니다.

Pater noster. Video by Latvian Radio Choir – Topic

Pater noster는 바스크스 작품 중에서도 유독 고전적인 방식으로 작곡된 곡입니다. 소위 ‘팔레스트리나 양식’(Palestrina style)을 연상케 하는 ‘도약 후 (역방향으로) 순차 진행’이나 ‘엄격한 불협화음 처리’ 등이 귀에 들어옵니다. 물론 20세기 작곡가답게 마디 27~28에서는 병행 5도(!)를 서슴치 않는 패기(?)를 보이기도 하지만 이 또한 귀에 전혀 거슬리지 않습니다. 팔레스트리나의 〈교황 마르첼리 미사〉(Missa Papae Marcelli) 중 ‘자비송(Kyrie)’과 비교해 들어 보는 것도 좋겠네요. New York Polyphony와 테너 앤드루 푹스(Andrew Fuchs), 베이스 바리톤 조나단 우디(Jonathan Woody)가 함께합니다.

Palestrina/ Missa Papae Marcelli – Kyrie | New York Polyphony. Video by New York Polyphony

1946년생 바스크스는 인생의 절반 이상을 구소련 체제에서 보낸 셈입니다. 이 시기를 보낸 다른 작곡가들과 마찬가지로 자유에 대한 갈망이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예술적 자유뿐만 아니라 물리적인 자유에 대한 희망도 있었겠죠. 사실 구소련 체제 출신 작곡가들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이들 모두가 당시 상황을 내놓고 표현하는 것은 아닙니다. 반면 바스크스는 여러 인터뷰나 작품 해설을 통해 암울했던 옛 시절을 반복적으로 회고하는 대표적인 작곡가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작품(음악)에도 그의 그런 성향이 담겨 있지 않을까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피아노 독주곡 〈여름밤을 위한 음악〉(Music for a Summer Evening). 라트비아는 겨울이 길고 여름이 짧지만 사계절이 비교적 뚜렷한 편이라죠. 조국의 아름다운 자연을 묘사하는 사계 연작(cycle)을 작곡합니다. 독립 이전에는 〈하얀 풍경〉(1980), 〈가을 음악〉(1981)을, 독립 이후에는 〈봄 음악〉(1995), 〈녹색 경관〉(2008)을.

2009년 작곡한 〈여름밤을 위한 음악〉은 사계 연작의 앙코르. 곡 후반부에 라트비아 전통 민요풍의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이게 무엇을 의미(상징)하는지에 대한 바스크스의 답변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학정의 시대를 살아남아 우리의 정체성을 지켰으니.’ 페테리스 바스크스의 〈여름밤을 위한 음악〉. 베스타드 심쿠스(Vestard Shimkus)의 피아노 연주로 감상해 보시죠.

Music for a Summer Evening. Video by Peteris Vasks – Topic

서양음악 어법으로 작곡한 곡을 라트비아 전통 민요풍의 선율로 마치며 자신의 정체성을 노래하는 바스크스의 모습이 멋집니다. 물론 해석하기에 따라서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예술의 어려움인 동시에 위대함이죠. 갑자기? 다음 작품—정확히는 다음 작품의 시인—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합창곡 〈고요한 노래〉(Silent Songs, 1979/1992). 네 개의 곡으로 구성된 연가곡입니다. 이 중 세 곡은 라트비아 시인 크누츠 스쿠예닉스(Knuts Skujenieks, b. 1936)의 시를 바탕으로 작곡했습니다. 스쿠예닉스는 구소련 체제 시절 활동한 시인. 反소비에트적인 시를 썼다는 이유로 소련의 교정(矯正) 노동 수용소 굴라크(Gulag)에서 7년을 복역한 바 있습니다.1 바스크스는 스쿠예닉스의 시에서 反소비에트적 성향을 읽어 낼 수 없다고 항변하지만 제가 라트비아 근대사학자는 아니므로 패스.

2번의 원작 시 ‘지친 그대여, 잠드소서’(1986)와 4번 ‘고마워요, 석양이여’(1978) 모두 라트비아 독립 이전 작품입니다. 바스크스는 이 두 편의 시에서 낮과 밤(=삶과 죽음) 사이에 비치는 한 줄기 빛(=희망)을 읽어 낸 모양입니다. 그리고 이 ‘희망’을 노래하고 싶었다는군요. 두려움과 불안함, 답답함과 분노로 지치기 쉬운 요즘. ‘어둠 속 한 줄기 빛’을 노래한 바스크스의 음악이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지그바르츠 클라바가 지휘하는 라트비아 라디오 합창단과 리가 신포니에타의 연주입니다.

Vasks: Silent Songs – 2. Dusi dusi. Video by Latvian Radio Choir – Topic
Vasks: Silent Songs – 4. Paldies tev vela saule. Video by Latvian Radio Choir – Topic

  1. 바스크스에 의하면 스쿠예닉스는 굴라크에 수용된 유일한 라트비아 시인이라고 하는데 확인이 필요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