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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음악실

95. 비킹구르 올라프손의 음악 페어링

KBS 음악실 ‘계희승의 음악 허물기’ 2020년 4월 6일 방송

아직 못 먹어 봤습니다. 굳이 먹어 봐야 할 이유도 욕구도 없었다고 하는 편이 정확하겠군요. ‘짜파구리’ 얘기입니다. 짜파게티와 너구리의 조합. 여기에 ‘한우 채끝살’이 들어가야 하느냐 마느냐는 논외로 하겠습니다. 다만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서 가장 중요한 설정은 이게 두 가족이 아니라 세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 그리고 “값싼 두 종류의 면이 마구 뒤섞이는 곳에 값비싼 한우가 추가로 들어가게 된 음식”인 “한우 채끝살을 넣은 짜파구리”가 이 세 가족 이야기를 상징한다는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분석에 동의할 수 있다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둘—혹은 셋—의 조합에 썩 구미가 당기지 않는 이유도 설명이 가능할 겁니다.1

믿음의 벨트 The Belt of Faith. Video by Jung Jaeil – Topic

이 상징적인 장면에 등장하는 음식 못지않게 ‘음악’에 관한 글도 많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글이 한결같이 ‘우아하고 고풍스런 척하도록 의도된 바로크풍 음악’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으니 해석의 ‘다양성’은 보이지 않습니다.2 이동진 평론가의 표현을 다시 빌자면 “이게 두 가족이 아니라 세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을 간과한 셈입니다. ‘짜파게티+한우’ 또는 ‘너구리+한우’가 아니라 ‘짜파게티+너구리+한우’라는 사실을. 「기생충」의 음악에 관한 이야기는 저보다 먼저 ‘찜’한 직장 동료(음악인류학자) 선생님이 연구를 진행 중이니 상도의(?) 차원에서 이만하고 오늘 주제로 넘어가겠습니다.

열흘 전, 독특한 컨셉의 앨범이 발매되었습니다. 아이슬란드의 피아니스트 비킹구르 올라프손(Víkingur Ólafsson, b. 1984)의 신보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클로드 드뷔시(Claude Debussy, 1862–1918)와 장 필리프 라모(Jean-Philippe Rameau, 1683–1764)의 ‘페어링’(pairing). 프랑스 작곡가라는 공통점이 있기는 하지만 태어난 해를 기준으로 보면 약 180년의 시간차가 있습니다. 낭만주의(인상주의) 음악과 바로크 음악의 조합. “어울릴 것 같지 않”다기 보다는 애초에 그 둘을 섞을 생각을 못했다고 고백하는 게 좋겠군요. 생각보다 아주 잘 어울리거든요. 현대적인 감각으로 늘 놀라움을 안겨 주는 올라프손의 기획과 연주라서 더욱 기대가 됩니다.

첫 페어링은 드뷔시의 1888년 칸타타 〈축복받은 소녀〉(La Damoiselle élue, L. 62)의 ‘전주곡’(Prelude)과 라모의 〈클라브생 작품집〉(Pièces de clavecin) 중 ‘새들의 지저귐’(Le rappel des oiseaux). 올라프손이 연주하는 드뷔시의 〈축복받은 소녀〉 ‘전주곡’은 1906년 반주 악보(vocal score)를 출판하려고 작곡가가 직접 편곡한 피아노 버전입니다. 원곡 먼저 들어 보시는 것도 괜찮겠군요.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가 지휘하는 런던교향악단(London Symphony Orchestra)의 연주로 감상하시죠.

Debussy: La damoiselle élue (Poème Lyrique) , L.62 – Beginning. Video by London Symphony Orchestra – Topic

라모가 1724년 출판한 〈클라브생 작품집〉의 또 다른 제목은 〈손가락 기술 훈련을 위한 클라브생 작품집>(Pièces de Clavessin avec une Méthode pour la Méchanique des Doigts). 그러니까 ‘연습곡’이라는 뜻입니다. ‘새들의 지저귐’은 이 안에 담겨 있는 두 개의 모음곡 가운데 E단조 모음곡(RCT 2)에 포함된 곡입니다.3 혹시 속으로 ‘드뷔시와 라모?’를 외치신 분이 있다면 생각을 바꾸시게 될 겁니다. 아주 매력적인 페어링이니까요. 드뷔시의 칸타타 〈축복받은 소녀〉 ‘전주곡’과 라모의 〈클라브생 작품집〉, 모음곡 E단조 중 ‘새들의 지저귐.’ 비킹구르 올라프손의 연주로 듣겠습니다.

Debussy: La damoiselle élue, L. 62 – Prélude. Video by Víkingur Ólafsson
Rameau: Le Rappel des oiseaux. Video by Víkingur Ólafsson

드뷔시 ‘전주곡’의 처음과 끝을 울리는 두 (화)음—각각 E단3화음과 E음—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시작하는 라모 작품 속 ‘새들의 지저귐’(E단3화음). ‘전주곡’을 듣는 내내 풀리지 않던 E(화)음의 모호함(ambiguity)에 대한 라모의 명쾌한 답변처럼 들립니다.4 앨범의 1–2번 트랙으로 손색없는 조합입니다.

이쯤에서 던져야 할 궁극의 질문 하나. 올라프손은 어쩌다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되었을까요? 듣고 보니 잘 어울린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애초에 어떻게 이런 생각을? 긴 얘기 짧게 하면 2019년 봄, 아내의 출산을 위해 연주 일정을 비워 놓았는데 예정보다 2주 늦어지면서 계획에 없던 시간이 생겼다고 합니다. 학생 시절, 에밀 길렐스(Emil Gilels, 1916–85)가 1951년 녹음한 ‘새들의 지저귐’ 음반을 듣고 라모의 음악에 반해 나중에 기회가 되면 전곡을 초견 연주해 보겠노라 벼르고 있었는데 마침 시간이 난 것. 그러니까 일단은 길렐스에게 감사해야 겠군요. 어떤 연주였기에 올라프손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직접 들어 보시죠. 길렐스가 연주하는 ‘새들의 지저귐’입니다.

Pieces de clavecin: Suite in E Minor: V. Le Rappel des oiseaux. Video by Emil Gilels – Topic

올라프손에 따르면 연주를 하면 할수록 자꾸 드뷔시가 떠올랐답니다. 이때의 경험이 단초가 되어 본격적으로 페어링을 시작, 앨범을 기획하게 되었다는군요. 올라프손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왜 이 둘인가’에 대한 답은 여전히 하지 않고 있습니다. “연주를 하면 할수록 자꾸 드뷔시가 떠”오른 이유를 어쩌면 올라프손 자신도 명확히 알지 못 하는 것이겠죠. 그리고 또 어쩌면 이 이유를 ‘말’로, ‘언어’로 설명할 수 없기에 음악으로 대신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아이는 건강히 잘 태어났냐고요? 아내와 아들 모두 건강하다고 합니다. 참고로 올라프손의 첫 아이라네요. 그래서인지 아이가 태어난 직후 가진 인터뷰 기사에는 올라프손의 눈이 반짝반짝했다는 코멘트가 자주 등장합니다.5 그리고 그래서인지 앨범에도 ‘아이’를 떠올리게 하는 페어링이 있습니다.

드뷔시의 1908년 작품 〈어린이 차지〉(Children’s Corner, L. 113) 중 4번 ‘춤추는 눈송이’(The Snow Is Dancing)와 라모의 〈클라브생 작품집〉 중 ‘상냥한 호소’(Les tendres plaintes). 갓 태어난 아이를 보며 생각한 페어링일까요. ‘춤추는 눈송이’는 워낙 유명한 곡입니다. 연초에도 〈음악 허물기〉 시간에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연주로 들려 드린 적 있죠. 그런데 두 사람의 연주가 어쩜 이렇게 다를 수 있는지. 과장 조금 보태면 다른 곡인 줄 알았습니다. 아주 매력적인 연주예요. 라모의 ‘상냥한 호소’는 앞서 감상한 ‘새들의 지저귐’과는 다른 D장조 모음곡(RCT 3) 중 하나. ‘춤추는 눈송이’와 잘 어울립니다. 얼른 들어 보죠. 드뷔시의 〈어린이 차지〉 중 ‘춤추는 눈송이’와 라모의 〈클라브생 작품집〉, 모음곡 D장조 중 ‘상냥한 호소.’ 비킹구르 올라프손이 들려 드립니다.

Debussy: Children’s Corner, L. 113 – 4. The Snow Is Dancing. Video by Víkingur Ólafsson
Rameau: Les tendres plaintes. Video by Víkingur Ólafsson

드뷔시와 라모가 이렇게 잘 어울리다니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앨범에는 80분가량 되는 28곡이 담겨 있는데 굉장히 고민해 페어링한 흔적이 보입니다. 그런데 페어링 외에도 주목할 만한 트랙이 하나 있습니다. 올라프손답다고 해야 할까요. 라모 작곡, 올라프손 편곡의 〈예술과 시간〉(The Arts and the Hours). 이 앨범의 중심이 되는 곡이라고 해도 좋을 듯 싶습니다.

라모의 원곡은 1763년—혹은 그 이전—작곡한 그의 마지막 오페라 〈북풍의 신〉(Les Boréades, RCT 31), 제4막, 장면 4의 간주곡(interlude). 올라프손의 피아노 트랜스크립션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제목 〈예술과 시간〉은 이 간주곡의 표제 ‘뮤즈, 산들바람, 계절, 시간, 그리고 예술의 입장’(Entrée pour les Muses, les Zephyres, les Saisons, les Heures et les Arts)에서 온 것입니다. ‘폴리힘니아의 입장’(Entrée de Polymnie)으로 더 잘 알려져 있죠. 원곡 먼저 들어 볼까요? 마크 민코프스키(Marc Minkowski)가 지휘하는 루브르의 음악가들(Les Musiciens du Louvre)입니다.

Rameau: Les Boréades / Act 4 – Entrée de Polymnie (Live). Video by Les Musiciens du Louvre – Topic

간주곡의 기능을 유지하려는 듯 앨범 중앙에 위치한 트랙입니다. 올라프손의 세심한 성격이 드러나는 순간이죠. 앞뒤로 배치된 라모, 드뷔시와의 페어링도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이 곡은 그 자체로 라모와 올라프손의 페어링. 〈예술과 시간〉이 ‘시간을 초월한 예술’로 읽히는 순간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예술이 아니라, 세월을 거치며 변화를 맞더라도 여전히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예술로. 라모의 오페라 〈북풍의 신〉, 제4막, 장면 4의 간주곡 ‘폴리힘니아의 입장’을 피아노로 편곡한 올라프손의 〈예술과 시간〉. 앨범 발매 3주 전, DG에서 공개한 감각적인 영상으로 감상해 보시죠.

Víkingur Ólafsson – Rameau: Les Boréades: The Arts and the Hours (Transcr. Ólafsson). Video by Deutsche Grammophon

라모를 모르는 클래식 음악 애호가는 없을 겁니다. 음반도 있고 연주도 종종 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고음악 애호가를 자처하는 분이 아니라면—아주 친숙한 작곡가는 아닙니다. 그 점에서 올라프손의 이번 앨범은 라모의 음악을 새롭게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 않나 싶습니다.

오늘 마지막 곡은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는 드뷔시의 〈전주곡 1권〉(Préludes, Book 1, L. 117) 중 8번 ‘아마빛 머리의 소녀’(La fille aux cheveux de lin). 1909–10년 작품입니다. 앞서 감상한 〈예술과 시간〉 바로 다음 트랙이라 함께 들으면 좋을 것 같아 준비했습니다. 코로나19의 여파에도 매주 월요일, 방송을 위해 여전히 KBS본관을 방문하고 있지만 이동우 PD, 신윤주 아나운서와 함께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은지는 꽤 되었군요. KBS 구내식당 밥 참 좋아하는데. 이참에 짜파구리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겠네요.

Debussy: Préludes / Book 1, L. 117 – 8. La fille aux cheveux de lin. Video by Víkingur Ólafsson

  1. 이동진,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 이동진 영화 평론집』(고양: 위즈덤하우스, 2019), 24.

  2. 바로크 음악의 사회적 의미—혹은 사회적으로 구축된 바로크 음악의 함의—에 대해서는 ‘3. 클래식 음악을 통한 범죄예방?’ 참조.

  3. RCT = Rameau Catalogue Thématique. Sylvie Bouissou and Denis Herlin, Jean-Philippe Rameau: Catalogue thématique des œuvres musicales, T. 1, Musique instrumentale, Musique vocale religieuse et profane (Paris: CNRS Édition et Éditions de la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2007); L. = François Lesure, Catalogue de l’œuvre de Claude Debussy (Genève: Minkoff, 1977).

  4. 칸타타의 조성인 C장조 맥락 안에서 ‘전주곡’의 E(화)음을 해석하는 연구도 있습니다. John R. Clevenger, “Debussy’s Rome Cantatas,” in Debussy and His World, ed. Jane F. Fulcher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1), 82–90.

  5. 예컨대 Imogen Tilden, “Pianist Víkingur Ólafsson: ‘Everyone knows how to listen to music, just like we know how to drink water,’” The Guardian, April 30,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