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예술, 그리고 《나의 어머니》

이탈리아의 감독 난니 모레티(Nanni Moretti)의 영화 《나의 어머니》(Mia madre, 2015). 에스토니아의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Arvo Pärt, b. 1935)의 음악으로 도배되어 있다는 소문을 듣고 한참을 벼르다 이제서야 봤다. 이 영화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일과 가족 사이에서 어떻게든 삶을 살아가려는 여성 마르게리타의 이야기. 노동자 인권을 그리는 영화 감독인 동시에 아픈 어머니를 돌보는 딸이다. 그렇지 않아도 애초에 어떻게 섭외된… Continue reading 삶과 예술, 그리고 《나의 어머니》

음악은 소유할 수 있는가? 『검은 바이올린』

얼마 전 번역, 출간된 프랑스 소설 『검은 바이올린』(Le Violon noir, 1999)을 읽었다. 막상스 페르민(Maxence Fermine)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작가. 프랑스 문학(특히 ‘1950년대 이후’ 프랑스 문학)과는 잘 맞지 않아 멀리하는 편이지만 음악을 소재로 다룬 소설은 빠짐없이 읽으려고 한다. 별다른 고민 없이 집어 든 소설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때는 18세기 말 유럽. 바이올린이 전부인 소년 요하네스… Continue reading 음악은 소유할 수 있는가? 『검은 바이올린』

2020 도쿄 올림픽 개막식 외

1. 2020 도쿄 올림픽 개막식 음악 뉴스레터에서 예고(?)한 대로 당분간 기승전-올림픽.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저는 게임 음악도 연구합니다. 연구고 뭐고 일단 게임을 좋아해요. 그래서 4시간이나 하는 줄도 모르고 보기 시작한 2020 도쿄 올림픽 개막식에서 게임 음악이 흘러나왔을 때 유독 반가웠습니다. 대부분 제가 했던 게임들이고 친숙한 음악이지만 정작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아직 해 본 적… Continue reading 2020 도쿄 올림픽 개막식 외

프랑스 바로크 바이올린의 대가들

KBS 음악실 ‘계희승의 음악 허물기’ 2021년 7월 26일 163번째 방송 오늘은 프랑스 바로크 바이올린의 대가 장 바티스트 세나이에(Jean-Baptiste Senaillé, 1687–1730)와 장 마리 르클레르(Jean-Marie Leclair, 1697–1764)의 바이올린 소나타 준비했습니다. 열흘 전, 기가 막힌 조합의 두 연주자가 만나 녹음한 음반이 발표되었습니다. 요즘 핫한 1988년생 바이올리니스트 테오팀 랑글로와 드 스와르테(Théotime Langlois de Swarte)와 앙상블 레자르 플로리상(Les Arts Florissants)의… Continue reading 프랑스 바로크 바이올린의 대가들

솔라리스에 각인된 바흐의 시간

러시아의 영화 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Andrei Tarkovsky, 1932–86)의 『시간의 각인』(1986) 개역판이 나왔다. 일찌감치 『봉인된 시간』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었지만 독일어 번역본을 중역(重譯)한 것이어서 영문판과 비교해 가며 봐야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개정판’이라면 고민이라도 했을 텐데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재단 공식 완역본’이라니. 더 이상의 고민은 배송만 늦출 뿐. 마침 얼마 전 구입한 토비아스 폰타라의 저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공명하는 영화: 음악과… Continue reading 솔라리스에 각인된 바흐의 시간

에스더 베자라노 타계 소식 외

1. 에스더 베자라노 타계 지난 7월 10일.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마지막 생존자 중 한 명 에스더 베자라노(Esther Bejarano, 1924–2021)가 만 96세를 일기로 타계했습니다. 베자라노는 소녀오케스트라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했다고 하지요. 어떤 경험이었을지 궁금하신 분들은 이참에 지난 3월 출간된 음악학자 이경분 박사의 책 『수용소와 음악: 일본 포로수용소, 테레지엔슈타트, 아우슈비츠의 음악』(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21) 읽어 보시는 것도 좋겠군요. 개인적인 친분은 고사하고 인사… Continue reading 에스더 베자라노 타계 소식 외

폴린 비아르도-가르시아 탄생 200주년

KBS 음악실 ‘계희승의 음악 허물기’ 2021년 7월 19일 162번째 방송 스페인계 프랑스 성악가 폴린 비아르도-가르시아(Pauline Viardot-Garcia, 1821–1910)는 19세기 파리를 넘어 유럽 전역에서 꽤 잘나가는 메조소프라노였습니다. 베를리오즈를 비롯한 당대 유명 작곡가들의 극찬을 받은 성악가였죠. 동시에 작곡가이기도 했습니다. 폴린의 기악 음악은 지금 거의 연주되지 않지만 가곡은 종종 연주, 녹음되고 있습니다. 마침 어제 7월 18일은 폴린 비아르도-가르시아의 200번째… Continue reading 폴린 비아르도-가르시아 탄생 200주년

《트윈 픽스》 다시 듣기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 감독의 TV 시리즈 《트윈 픽스》(Twin Peaks, 1990–1991)를 다시 보고 있다. 최근 출간된 『트윈 픽스의 음악: 소리 듣기』를 읽기 전에 기억을 상기시키는 게 목적이다. 하도 오래 전에 봐서 기억도 나지 않을뿐더러 2017년, 26년 만에 방영된 시즌 3도 보지 못 한 터라 갈 길이 멀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시즌 2 마지막 에피소드보다 더 찜찜하게… Continue reading 《트윈 픽스》 다시 듣기

E. M. 포스터와 음악

대만의 음악학자 충한 차이(Tsung-Han Tsai)의 신간 『E. M. 포스터와 음악』은 험프리 제닝스(Humphrey Jennings, 1907–1950)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티모시를 위한 일기》(A Diary for Timothy, 1945)의 한 장면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라디오 뉴스를 틀어 놓고 시간을 보내는 평범한 가정의 모습이 보입니다. 잠시 후 ‘열정’(Appassionata)이라는 부제로 친숙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F단조, Op. 57의 1악장이 흘러나옵니다. 음악회 프로그램이 카메라에… Continue reading E. M. 포스터와 음악

제프스키 타계 소식 외

1. 제프스키, 안드리슨 타계 미국 작곡가 프레더릭 제프스키(Frederic Rzewski, 1938–2021)와 네덜란드 작곡가 루이 안드리슨(Louis Andriessen, 1939–2021)이 나란히 타계했습니다. 작곡을 전공하던 시절 핫했던 음악가들이 하나둘 떠날 때면 왠지 마음이 쓸쓸합니다. 제프스키의 The People United Will Never Be Defeated! (1975)를 처음 들었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이렇게 생생한데 말이지요. 마지막 변주(Var. 36) 뒤에 나오는 코다 감상하며 두 거장의… Continue reading 제프스키 타계 소식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