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악으로 편곡된 베토벤 교향곡

음악학자 낸시 노벰버(Nancy November)의 신간 『실내악으로 편곡된 베토벤 교향곡』을 읽고 있습니다.1 지금은 베토벤 교향곡을 듣고 싶으면 유튜브나 스트리밍 서비스를 사용합니다. 굳이 음악회에 가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든 들을 수 있지요. LP나 CD로 감상하는 분들도 여전히 많습니다. 하지만 19세기 초에 살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1877년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 1847–1931)이 축음기(phonograph)를 발명하기 이전 음악을 감상하려면 다른 이의 연주를 ‘라이브’(live)로 듣거나 직접 연주하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언제 어디에서 어떤 연주 단체가 베토벤 교향곡을 연주하는지 확인하는 일이 지금처럼 쉽지는 않았을 겁니다. 알게 되었을 때쯤이면 이미 지나간 후였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교향악단의 수가 지금처럼 많지도 않았습니다. 매년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교향악축제’를 아시나요?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교향악단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는 자리입니다. 체감할 때도 되었는데 아직도 놀라요. 더욱 놀라운 건 국내 활동하고 있는 교향악단 중 극히 일부만 교향악축제에 참여한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교향악단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건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일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19세기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교향악단 연주가 그렇게 쉽게 접할 수 있는 이벤트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뉴욕타임스』의 비평가 재커리 울프(Zachary Woolfe)의 말처럼 “교향악단의 연주를 듣는 건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한 기회”였습니다.2

그럼 19세기 초중반, 모차르트나 베토벤 교향곡은 어떻게 들었을까요? 실내악으로 ‘편곡’된 연주를 들었습니다. 19세기 중반 이후에는 피아노 독주용으로 편곡된 악보를 가정(집)에서 직접 연주하고 감상하기도 했지요. 중요한 건 실내악으로 ‘편곡’된 교향곡이 보편적인 연주, 감상 방식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실내악으로 편곡된 베토벤 교향곡』의 저자 노벰버에 따르면 1800–30년에 출판된 베토벤 교향곡의 실내악 악보는 101개에 달한다고 하니 놀라운 일입니다.3 심지어 이 숫자는 ‘초판’(first edition)만 포함한 것입니다.4 노벰버가 19세기를 “편곡의 시대”(the age of arrangements)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5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실제로 그랬습니다. 한 곡 들어 볼까요? 베토벤과 아주 가까운 사이였던 훔멜(Johann Nepomuk Hummel, 1778–1837)이 실내악으로 편곡한 베토벤 교향곡 1번, Op. 21의 1악장입니다. 편성이 아주 독특합니다. 플루트,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19세기 초부터 중반까지 가장 인기 있었던 편성 가운데 하나입니다. 오케스트라의 그 많은 악기를 다 덜어 내고 이 네 악기만으로 어떨까 싶지만 막상 들어보면 위화감은 없습니다. 베토벤 교향곡 1번, Op. 21, 1악장 Adagio molto – Allegro con brio. 우베 그로트(Uwe Grodd)의 플루트, 굴드 피아노트리오(Gould Piano Trio)의 연주입니다.

Symphony No. 1 in C Major, Op. 21 (Arr. J. N. Hummel for Flute & Piano Trio) : I. Adagio molto – Allegro con brio. Video by Uwe Grodd – Topic
Cover page of Beethoven’s Symphony No. 1 arranged by J. N. Hummel, IMSLP

베토벤 교향곡을 교향악단의 연주로 듣는 데 익숙한 우리는 이런 질문들을 던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건 베토벤이 “의도”한 방식이 아니잖아? 그럼 당시 사람들은 “진짜” 베토벤 교향곡은 듣지 못 한 것 아닌가?’ 일리 있는 지적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찌 되었든 간에 ‘원곡’의 수많은 파트와 악기를 덜어 낸 것이잖아요. 그런데 그게 꼭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리는 베토벤 교향곡을 하나의 고정된 형태로 존재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함부로 ‘훼손’해서도 안 되고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예술’로 대상화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사고 방식이 자리 잡기 시작한 시기가 19세기라는 사실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19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음악’의 정의가 지금과 같지 않았다는 겁니다. 여기까지가 교과서 수준의 이야기라면 노벰버의 연구는 그 다음부터 시작됩니다.6

『실내악으로 편곡된 베토벤 교향곡』은 서문 첫 문장에서 이 책이 “19세기 초 편곡의 예술과 문화를 상세히 다룬 첫 연구”라고 밝히며 시작합니다.7 노벰버는 이른바 작곡가의 ‘마지막 의도’(Fassung letzter Hand) 같은 “‘작품’에 대한 시대착오적 관념” 때문에 음악이 예술, 작품이 되고, ‘진짜’가 되어가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19세기 초중반 ‘편곡’ 문화가 학계에서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고 진단합니다.8 그러고 보면 19세기 말의 피아노 트랜스크립션(transcriptions) 시장에 관한 논의는 종종 접할 수 있지만 그 이전, 특히 19세기 초의 실내악 편곡 문화를 다룬 학술서(monograph) 단위의 연구는 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만큼 흥미로운 내용이 가득합니다. 이를 테면 19세기 초 출판사들이 교향곡 출판을 꺼렸다는 사실은 데이비드 존스(David Wyn Jones)의 연구에서 이미 논의된 바 있습니다.9 의외 아닌가요? 출판사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길고 복잡한 이유가 있습니다만 요약하면 봉건 제도의 붕괴와 교회의 권력 약화라는 19세기 초 유럽의 정치, 경제 상황을 고려했을 때 교향악단은 사치였다는 것.10 노벰버의 연구는 한 발 더 나아가 그로 인한 공백을 실내악 편곡이 어떻게 메웠는지 보여 줍니다. 실내악으로 편곡된 악보에 총보를 끼워 팔기도 했다는군요.11 이건 뭐 ‘요약본을 사니까 책을 주더라’는 식 아닌가 싶지만 악보가 더 이상 연주를 위한 최소한의 정보가 담겨 있는 종이가 아니라 연구를 위한 읽기의 대상이 된 것도 19세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편곡 문화가 서양음악사에 미친 영향을 간과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노벰버는 19세기 유럽의 편곡 문화를 간과하는 것은 19세기 서양음악사를 간과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교향곡을 ‘실내악’으로 듣는 게 ‘노멀’이었으니까요. 이런 비유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먼 훗날 21세기 초 대한민국의 식문화를 논하는데 ‘배달’이라는 요소를 빼놓고 ‘음식’ 그 자체만 평가한다는 건 좀 이상합니다. 배달 음식이라서 포기해야 하는 맛도 있을 테고, 거꾸로 배달 음식이라서 가능한 맛도 있을 겁니다. 심지어 배달 음식이라서 음식과는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어느 쪽이든 배달 문화를 빼놓고 21세기 초 식문화를 논하는 건 좀 웃긴 일입니다. 하지만 노벰버의 주장은 우리가 지금 그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부제 ‘사교, 수용, 정전의 형성’이 강조하듯 이 책은 19세기 초 음악이 어떻게 사람들 사이에서 연주되고 경험되었는지, 그리고 베토벤이 어떻게 베토벤이 되었는지를 편곡 문화를 통해 추적합니다.

Portrait of J. N. Hummel by Joseph Karl Stieler, 1820, Wikimedia Commons

이건 베토벤에 국한된 이야기 아닌가 싶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예컨대 앞서 만난 훔멜은 모차르트 교향곡도 다수 편곡했지요. 음악학자 데이비드 오웬 노리스(David Owen Norris)와 마크 에버리스트(Mark Everist) 영국 사우샘프턴대 교수는 1820년대부터 1850년대까지 영국(특히 런던)에서 누군가 모차르트 교향곡이나 협주곡을 들었다면 플루트,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의 실내악 편성으로 들었을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최근 연구를 통해 밝혔습니다.12 훔멜이 편곡한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G단조, K. 550, 1악장 Molto allegro. 우베 그로트와 굴드 피아노트리오의 연주로 감상해 보시지요.

Symphony No. 40 in G Minor, K. 550 (arr. J.N. Hummel for flute, violin, cello and piano) : I. Molto allegro. Video by Uwe Grodd – Topic

노벰버는 이렇게 다른 작곡가들이 편곡한 베토벤 교향곡을 통해 전문가들, 그러니까 베토벤의 동료 음악가들이 베토벤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엿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19세기는 음악 비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입니다. 많은 글이 쏟아져 나왔지요. 하지만 편곡 작업은 (베토벤의 워딩을 인용하면) 주어진 음악을 ‘번역’(translations)하는 일입니다.13 자연히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지요. 이러한 변화와 다양한 버전들 간의 차이를 살펴보면 베토벤 교향곡에 대한 편곡자의 생각을 엿들을 수 있다는 게 노벰버의 주장입니다. 글로 표현되는 비평과는 또 다른 종류의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그래도 역시 모차르트, 베토벤 교향곡은 교향곡으로 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면 당연한 말입니다. 노벰버도(그리고 그의 의견에 공감하는 저도) 교향곡을 실내악으로 편곡해 듣자는 건 아닙니다. 당시에는 그렇게 들었으니 우리도 그렇게 들어야 한다는 뜻은 더욱 아니고요. 당시 사람들이야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들은 것이지 지금은 ‘원곡’ 그대로 듣는 데 아무런 문제도 없는데 뭘 굳이. 노벰버가 하려는 일은 19세기 서양음악사(특히 수용사) 서술에서 종종 누락된 편곡 문화를 재조명해 그동안 보지 못 했던 그림을 그려 보자는 것. 그뿐입니다.

필요 없는 것들은 사라지기 마련이지만 한편으로는아쉬운 점도 없지 않습니다. 연주자 입장에서 생각해 봐도독주회나 실내악 연주회에서 좋은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게 중요한데 레퍼토리 확장에 고려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말인데 8월에 우리나라에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과 교향곡을 19세기 실내악 편성으로 들을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됩니다. 저도 기획 단계부터 참여했지요. 자세한 소식은 곧 전하겠습니다. 그때까지 음악학자나 음악학을 전공하는 학생이라면 노벰버의 책을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애호가라면 실내악으로 편곡된 베토벤 교향곡을 감상해 보시는 것도 좋겠군요. 마지막으로 훔멜이 편곡한 베토벤 교향곡 3번, Op. 55, 1악장 Allegro con brio. 우베 그로트와 굴드 피아노트리오의 연주로 보내 드립니다.

Symphony No. 3 in E-Flat Major, Op. 55 “Eroica” (Arr. J. N. Hummel for Flute & Piano Trio) : I. Allegro con brio. Video by Uwe Grodd – Topic

  1. Nancy November, Beethoven’s Symphonies Arranged for the Chamber: Sociability, Reception, and Canon Formation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21).

  2. Zachary Woolfe, “Who Played Mozart When He Was New?,” The New York Times, July 19, 2019.

  3. November, Beethoven’s Symphonies Arranged for the Chamber, 21.

  4. Ibid., 21.

  5. Ibid., 3.

  6. 19세기 들어 음악이 작품화되고 정전화(canonized)되는 과정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리디아 괴어 컬럼비아대 교수의 다음 저서를 참고하길 바랍니다. Lydia Goehr, The Imaginary Museum of Musical Works: An Essay in the Philosophy of Music, rev. ed.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7).

  7. November, Beethoven’s Symphonies Arranged for the Chamber, 1.

  8. Ibid., 2–3.

  9. David Wyn Jones, The Symphony in Beethoven’s Vienna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6), 27; cited in November, Beethoven’s Symphonies Arranged for the Chamber, 4.

  10. November, Beethoven’s Symphonies Arranged for the Chamber, 4.

  11. Ibid., 5.

  12. Daivd Owen Norris and Mark Everist, Liner notes for The Jupiter Project, David Owen Norris, Katy Bircher, Caroline Balding, and Andrew Skidmore (Hyperion CDA68234, 2019), 4.

  13. Wiener Zeitung 87 (1802), 3916; translations cited in November, Beethoven’s Symphonies Arranged for the Chamber,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