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브루흐의 협주곡

KBS 음악실 ‘계희승의 음악 허물기’ 2021년 7월 12일 161번째 방송

2020년 서거 100주년을 맞은 독일 작곡가 막스 브루흐(Max Bruch, 1838–1920)의 작품 만나보는 두 번째 시간. 지난주 방송 후 좋았다는 연락을 많이 받았습니다. 〈현악8중주〉가 단연 인기더군요. 오늘은 규모가 조금 더 큰 협주곡 준비했습니다. 〈바이올린 협주곡 1번〉(Violin Concerto No. 1, Op. 26, 1867)이나 〈스코틀랜드 환상곡〉(Scottish Fantasy, Op. 46, 1880) 아니니 걱정 마시길. 내밀한 실내악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입니다.

첫 곡은 브루흐의 오페라 〈헤르미오네〉(Hermione, Op. 40, 1871)의 전주곡. 브루흐가 오페라를 썼다는 것도 놀랍지만 사실 그는 많은 성악곡을 작곡했습니다. 합창곡과 가곡만 40곡을 넘게 썼으니 출판된 작품 절반가량 성악곡인 셈입니다. 우리는 브루흐를 기악 음악 작곡가로 기억하고 있지만 그는 자신을 극작가(dramatist)로 생각했다니 아이러니합니다. 인생이 다 그렇지요.

오페라도 세 곡을 썼습니다. 하지만 20대에 쓴 〈로렐라이〉(Die Loreley, Op. 16, 1863)을 제외하면 음반도 전무하고 연주되는 일도 거의 없습니다. 〈헤르미오네〉는 브루흐가 존더스하우젠(Sondershausen)의 음악 감독(1867–70)으로 있을 때 완성해 1871년 초연한 작품입니다. 셰익스피어의 『겨울 이야기』(The Winter’s Tale)를 각색한 에밀 호퍼(Emil Hopffer, 1838–77)의 대본을 바탕으로 브루흐가 시도한 마지막 오페라입니다.1 그다지 성공적이지도 않았지만 본인이 오페라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 했습니다. 이후에는 합창곡에 전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르미오네〉 전주곡은 오페라 전곡을 듣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로버트 트레비노(Robert Trevino)가 지휘하는 밤베르크 교향악단(Bamberger Symphoniker)의 연주로 감상하시죠.

Hermione, Op. 40 (Excerpts) : Prelude. Video by Bamberger Symphoniker – Topic

지난주 실내악 감상할 때도 느끼셨겠지만 브루흐는 인상적인 선율을 잘 쓰는 것 같습니다. 공교롭게도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이나 〈스코틀랜드 환상곡〉 모두 바이올린이 주인공인 바람에 브루흐를 바이올리니스트로 생각하기 쉬운데 그는 사실 피아니스트. 그것도 꽤 괜찮은 피아니스트였다는군요. 하지만 정작 브루흐 본인은 피아노에 특별한 애정이 없어 작품을 쓸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2 자신이 잘하지만 하고 싶지 않은 것과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이지만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현실이라니. 뭐 그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피아노에 별다른 애정이 없었기 때문인지 습작에 가까운 초기작이나 피아노를 포함한 실내악 몇 곡을 제외하면 피아노 작품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그런 점에서 77세의 나이에 쓴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Concerto for Two Pianos and Orchestra, Op. 88a, 1912)은 의외의 작품입니다. 유럽에서 인기가 예전 같지 않자 브루흐는 미국으로 눈을 돌립니다. 마침 피아노 듀오로 활동하던 수트로 자매(Ottilie Sutro and Rose Sutro)가 작품을 위촉하자 덥석 받아들입니다. 재밌는 사실은 수트로 자매가 브루흐의 ‘동의’ 없이 악보를 수정해 연주했다는 것.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어쩌면 작곡가의 ‘허락’을 구한다는 개념 자체가 굉장히 20세기적인 생각일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 1916년 있었던 미국 초연은 엄밀히 따지면 수트로 자매의 수정본을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 그 후 악보의 행방이 묘연했는데, 긴 얘기 짧게 하면 1971년 한 경매장에서 우연히 발견되어 1973년 처음 녹음되었습니다. 사실 〈관현악 모음곡 3번〉을 새로 쓴 작품이지만 들어보면 마치 처음부터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으로 작곡된 듯한 낭만주의 음악. 3악장 Adagio ma non troppo 감상하겠습니다. 율리아 코츄반(Julia Kociuban)과 올리버 슈나이더(Oliver Schnyder)의 피아노, 하워드 그리피스(Howard Griffiths)가 지휘하는 빈 방송교향악단(ORF Vienna Radio Symphony Orchestra)의 연주입니다.

Concerto for 2 Pianos and Orchestra, Op. 88a: III. Adagio ma non troppo. Video by Vienna Radio Symphony Orchestra – Topic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이 워낙 유명해서 그렇지 브루흐는 다양한 협주곡을 썼습니다.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외에도 〈클라리넷과 비올라를 위한 협주곡〉(Concerto for Clarinet, Viola, and Orchestra, Op. 88, 1911) 같은 이중 협주곡이 있지요. 바이올린 협주곡도 Op. 44와 Op. 58 두 곡 더 있지만 자주 연주되지는 않습니다. 이 중 〈바이올린 협주곡 2번〉, D단조, Op. 44, 1악장을 들어볼까요? 스페인의 작곡가 겸 바이올리니스트 파블로 데 사라사테(Pablo de Sarasate, 1844–1908)에게 헌정되고 1877년 그에 의해 초연된 작품입니다. 참고로 1악장은 Adagio ma non troppo. 그러니까 느린 악장으로 시작하는 협주곡입니다. 느린 악장으로 시작하는 바람에 초연 당시 ‘근본 없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습니다.3

그런데 음악학자 빌헬름 알트만(Wilhelm Altmann, 1862–1951)에 따르면 이는 사라사테가 제안한 아이디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4 사라사테가 스페인 카를로스 전쟁(Carlist Wars)을 묘사하는 1악장을 요구했다는 것.5 전투 후 연인을 찾아 헤매는 한 여성의 모습과 장송 행진곡이 이어지고 전쟁과 죽음 끝에 찾아오는 평온함으로 마무리되는 구체적인 표제를 사라사테가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사실 여부를 떠나 스스로를 극작가로 생각한 브루흐다운 협주곡이 아닐까 싶습니다.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 D단조, Op. 44 중 1악장 Adagio ma non troppo. 막심 페도토프(Maxim Fedotov)의 바이올린, 드미트리 야블론스키(Dmitry Yablonsky)가 지휘하는 러시아교향악단(Russian Philharmonic Orchestra)의 연주로 감상하겠습니다.

Violin Concerto No. 2 in D Minor, Op. 44: I. Adagio ma non troppo. Video by Maxim Fedotov – Topic

〈바이올린 협주곡 1번〉 약 10년 후 작곡한 협주곡 2번은 사라사테의 표제 때문인지 한층 더 진중하게 들립니다. 드라마티스트로 알려지길 원했던 브루흐의 진면목을 엿들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네요. 하지만 아까도 언급한 것처럼 우리 생각과는 달리 브루흐의 진가는 그의 합창 음악에서 발휘됩니다. 시간이 부족해 방송에서는 소개하지 못 했지만 제가 사랑하는 합창곡 하나 남기며 마무리하겠습니다. 〈자비송, 거룩하시도다, 하느님의 어린 양〉(Kyrie, Sanctus und Agnus Dei, Op. 35) 중에서 ‘하느님의 어린 양.’ 1860년 완성했지만 1870년 초연된 작품입니다. 월요일 아침부터 듣기에는 너무 경건한 음악 아닌가 싶지만 막상 듣고 나면 한 주 평안히 보내실 수 있을 겁니다. 롤란트 바더(Roland Bader)가 지휘하는 크라코우 필하모니아 합창단(Cracow Philharmonia Chorus)이 함께합니다.

Bruch: Agnus Dei, Op. 35, 3. Video by Cracow Philharmonia Chorus – Topic

  1. 미 의회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대본을 읽어 볼 수 있습니다. Max Bruch and Karl Emil Heinrich Hopffer, Hermione: grosse Oper in 4 Aufzügen (Berlin: N. Simrock, n.d.).

  2. Ulrike Lampert, Liner notes for Bruch: Double Concertos, Adagio appassionato & Loreley Overture, Oliver Schnyder, Julia Kociuban, Ecesu Sertesen, Kyoungmin Park, Berfin Aksu, ORF Vienna Radio Symphony Orchestra, Howard Griffiths (Sony Classical G010003984373N, 2019), 16.

  3. Tully Potter, Liner notes for Bruch: Violin Concerto No. 2 & Other Works, Jack Liebeck, BBC Scottish Symphony Orchestra, Martyn Brabbins (Hyperion CDA68055, 2017), 4.

  4. Ibid., 4.

  5. Ibid.,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