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글이 완성되기까지

글쓰기의 이론과 원칙은 간단한 반면 실천은 어렵습니다. 학생들에게 나도 마찬가지라고, 일단 써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지만 제 말을 믿지 않습니다. 가끔은 제가 얼마나 삽질해 가며 글을 쓰는지 보여주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보여줄 수 있잖아요? 학생들에게는 늘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면서 정작 과정을 보여주거나 칭찬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유튜브까지 할 시간은 없으니 어차피 쓰는 글.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아 벌써 아프지만 누군가에게는 현실적인 도움이, 누군가에게는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전체 과정 그대로 녹화해 편집 없이 업로드합니다.

‘한 편의 글이 완성되기까지 – 논문편’은 비디오 게임 《바이오쇼크 인피니트》(BioShock Infinite, 2013)의 음악과 소리를 다룹니다. 학술적인 글의 형식을 갖추어 쓰되 문체는 살릴 겁니다. 아직 아무런 연구 질문도 주제도 없습니다. 전공실기 수업 첫 시간(특히 첫 학기)에 들어오는 학생들과 비슷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보통 3–4주 고민할 시간을 줍니다. 물론 고민만 할 수는 없으니 관심사도 들어보고 그 분야에서 읽을 만한 문헌을 추천하기도 합니다. 그 다음 시간에 만나 읽고 생각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연구 주제를 함께 고민하죠. 게임음악연구에 특별한 관심이 없었던 5–6년 전 재밌게 플레이한 후 관련 문헌 몇 편 읽어 봤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저도 학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연구 주제 설정하는 과정부터 보여줄 수 있겠네요. 그냥 무식하게 쓰고 생각하고 갈아엎기를 되풀이할 뿐 별다는 기교는 없습니다. 다음과 같은 원칙에 따라 쓰고 기록해 업로드합니다.

  1. 매일 자정 딱 1시간만 쓴다. 그리고 이 시간에만 읽고 쓰고 생각한다. 화면에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아마 게임 영상이나 음악을 다시 감상하며 분석 중이거나 관련 문헌을 읽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2. 편집은 하지 않고 그대로 업로드해 다음 날 자정에 공개한다. 편집할 시간도 없거니와 부끄러운 것 하나둘씩 가리기 시작하면 끝도 없고 취지에도 어긋난다. 단, 주의는 하고 있지만 개인정보가 노출되거나 저작권 관련 문제가 발견되면 그 부분만 들어낸다.
  3. 배경 음악도 삽입하지 않는다. 잠시 고민했지만 음악 고르고 편집할 시간도 없을뿐더러 취향 맞추기도 어렵다. 차라리 듣고 싶은 음악 들으며 볼 수 있도록 비워 두는 게 낫다.
  4. 연구윤리 규정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내가 이해하는 바에 의하면 이 글은 완성해도 학술지 투고나 게재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열심히 써 봤자 연구 실적으로 인정 받을 수 없다. 쓰고 싶은 주제로 즐겁게, 하지만 진지하게 쓴다.
  5. 그런데 마감일을 정해 두지 않으면 이 작업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학생들과 같은 조건으로 한 학기 15주 기준 대략 100일. 하루 1시간씩 총 100시간 내에 완성한다.

macOS Big Sur에서 Noto Serif CJK KR 폰트를 적용해 Pages로 작성하고 QuickTime Player로 기록했습니다. 결과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바로 Day 1 영상을 확인해 보세요.

한 편의 글이 완성되기까지 – 논문편 Day 1. Video by Undoing Musicolo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