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윈 픽스》 다시 듣기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 감독의 TV 시리즈 《트윈 픽스》(Twin Peaks, 1990–1991)를 다시 보고 있다. 최근 출간된 『트윈 픽스의 음악: 소리 듣기』를 읽기 전에 기억을 상기시키는 게 목적이다.1 하도 오래 전에 봐서 기억도 나지 않을뿐더러 2017년, 26년 만에 방영된 시즌 3도 보지 못 한 터라 갈 길이 멀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시즌 2 마지막 에피소드보다 더 찜찜하게 마무리하며 시즌 4를 갈구하게 만든다고.2

30년도 더 된 TV 시리즈를 다시 보는 게 이상할 수도 있는데 린치 팬이라면 그의 작품에는 다시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답하지 않을까. 여기에는 안젤로 바달라멘티(Angelo Badalamenti)의 오리지널 스코어도 한몫한다. 린치의 작품 세계를 다룬 연구는 많지만 음악과 소리에 관한 글은 (영화)음악학계에서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트윈 픽스의 음악: 소리 듣기』에는 어떤 신나는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아직 읽기 전이지만 이 글에서 내가 다룰 음악은 《트윈 픽스》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로라 파머의 테마〉(Laura Palmer’s Theme). 파일럿 에피소드(“Northwest Passage”)에서만 총 14번을 듣는다. 도입부가 조금 난해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1분만 참고 들어 보시길. (인내심을 발휘해 30초만 더 들으면 하루 종일 이 곡을 반복 재생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Laura Palmer’s Theme (Instrumental). Video by Angelo Badalamenti – Topic

논의의 편의를 위해 아래 간단한 축약본을 제시한다.3 (적어도 음악적으로는) 뚜렷한 기승전결이 있는 테마다. (하지만 딸림예비화음만 있고 정작 딸림화음은 나오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로라 파머의 테마〉는 크게 주제 x (“어두운 숲에서”), y (“외로운 소녀”), 그리고 z (“로라 파머”)의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4 이 중 주제 x는 x.0, x.1, x.2로 다시 나누었다. 악보 하단에 제시된 시간(time stamp)은 위 영상(음원)을 기준으로 했다.

〈로라 파머의 테마〉의 축약 그래프

이하 논의는 기본적으로 《트윈 픽스》를 봤다는 전제 하에 진행된다. 자세한 줄거리는 생략하지만 스포일러를 포함할 수 있다. 논의에 제시되는 시간은 왓챠에 서비스되는 영상을 따른 것이다.


#0. 오프닝 크레딧. 인구 5만의 시골 마을 트윈 픽스(“트윈 픽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인구 51,201명”). 오프닝 음악(“Falling”)이 2분 40초 동안 흐른다. (긴 편이다.)

Falling. Video by Angelo Badalamenti – Topic

#1. [02:51] 화장대 앞 조시 패커드의 모습과 함께 C단조에서 A$\flat$–G–B$\flat$–G 동기(이하 x.1)가 반복된다. 피트 마텔은 낚시하러 가는 길에 (로라 파머의) 시체를 발견하고 트윈 픽스 보안관실에 신고한다. x.2로 진행되지 않고 [04:37] 페이드 아웃.

#2. [06:10] 보안관 해리 트루먼과 검시관, 앤디, 피트가 시체를 둘러싸고 있다. 이번에는 주제 x 전체를 들을 수 있다. [07:29] 시체를 뒤집자는 검시관의 제안(“Let’s roll her over.”)과 함께 처음으로 주제 y까지 진행. [07:55] 시체를 감싼 비닐을 벗기고 신원(=로라 파머)이 확인되기 직전 주제 z가 연주된다. 비극적인 사건에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운 음악이다. 로라네 집으로 장면 전환. [08:27] 주제 x 반복. 로라의 어머니 세라는 딸이 집에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남친 바비네 집에 전화를 건다. [09:20] 페이드 아웃.

#3. [13:05] 주제 x. 세라는 남편 리랜드의 직장에 전화를 걸어 로라가 거기 있는지 묻는다. 때마침 남편을 찾아온 보안관 트루먼. 세라와 리랜드는 좋지 않은 소식을 직감하고. [14:18] 로라의 죽음을 확신하는 세라. 주제 y를 지나 [14:42] 주제 z를 배경으로 외치는 리랜드의 대사 “딸애가 죽었대”(My daughter’s dead). 으스스한 단조(x)에서 시작해 경과구(y)를 거쳐 C장조에 도달(z)한 순간 찾아오는 비극이라니. #2에서 들었던 주제 z가 마을 주민들의 슬픔이었다면 여기서 듣는 z는 부모의 것. [15:12] 주제 x 반복. 그리고 세라의 절규. [15:27] 페이드 아웃 및 장면 전환.

#4. [25:16] 주제 x. 학교에서 용의자 신분으로 보안관의 취조를 받던 로라의 남친 바비는 자신이 죽이지 않았다며 강렬히 저항. 교장이 교내 방송으로 로라의 죽음을 전하며 [26:33] 주제 y로 진행. 울먹이는 교장과 학생들. [26:58] 주제 z을 배경으로 전교생의 감정이 폭발한다. 교내 전시된 로라의 사진이 클로즈업되고. (로라의 사진이 왜 저기에? 프롬 퀸이었나?) x.0 들으며 [27:28] 페이드 아웃.

#5. [34:05] 동기 x.1. 로라에 이어 두 번째(사실은 세 번째) 희생자가 될 뻔한 생존자 로네트가 다리 위를 걷고 있다. 지금까지 들었던 x.1과는 조금 다르게 들린다. 악기가 더해지며 밀도가 높아졌다. 머리부터 아래로 로네트의 신체를 비추는 카메라. 온몸의 상처가 처참한 상황을 대변한다. [34:34] 페이드 아웃되며 다음 트랙으로 전환.

#6. [40:47] 치료 중인 로네트가 FBI 요원 데일 쿠퍼에게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 동기 x.1 시작. 부검실로 가는 엘리베이터로 장면 전환. 문이 잠시 열리는 순간 [41:07] 페이드 아웃. 자코비 박사와의 대화를 통해로라가 정신과 의사를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7. [48:37] 트윈 픽스 전경을 비추며 동기 x.1 재생. 범행 현장(버려진 기차)이 발견되었다. [49:38] 장면 전환되며 페이드 아웃. 변호사를 동행한 바비는 쿠퍼의 취조를 받는다.

#8. [03:37] 도나 역시 쿠퍼의 취조를 받지만 바비와는 달리 변호사를 동행하지 않았다. 동기 x.1과 동일한 음악이지만 몽환적인(?) 사운드. [03:47] 쿠퍼가 이 영상을 촬영한 인물이 누구인지 묻는 순간 주제 y로 넘어가고 도나의 감정도 격해진다. [04:15] 주제 z. 영상 속 도나와 로라는 행복해 보인다. 주제 x로 돌아간 듯하지만 [05:00] 주제 z와 병치된다. (주제 x를 반주로 주제 z가 연주된다.) 처음 벌어진 일. [05:19] 페이드 아웃.

#9. [06:13] 쿠퍼가 영상 속 눈동자에 비친 바이크를 보여줄 때 동기 x.1. 바이크 주인이 있는 곳으로 장면 전환되며 [06:33] 페이드 아웃.

#10. [07:21] 범행 현장. 주제 x의 가장 강렬한 버전을 듣는다. [08:32] 페이드 아웃.

#11. [16:28] 동기 x.1. 윌(도나의 아버지)이 휠체어에 탄 아일린을 위로하고 있다.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목걸이에 관한 대화를 엿듣는 도나. [17:35] 다음 트랙으로 전환되는 줄 알았지만 페이크. 여동생 헤리엇의 방에 들어가는 순간 x.1 다시 재생. 하지만 방금 들었던 것보다 조금 더 거친 버전이다. 이번에는 정말 다음 트랙으로 전환되는 듯하지만 다시 x.1. [19:19] 비로소 다음 트랙으로 전환.

#12. [27:44] 도나를 추격하다 놓친 쿠퍼와 트루먼. 동기 x.1이 여러 차례 반복된다. [30:28] 마침내 주제 y로 이동. J(=James=바이크 주인)가 슬퍼한다. [30:53] 도나와 제임스는 주제 z를 배경으로 격렬한 키스를 나누고. 그러던 중 갑자기 무언가 깨닫는 도나. [31:20] 주제 x로 돌아가는 척하다 주제 y를 거쳐 [31:33] 다시 주제 z. (이렇게 두 번 연달아 듣는 건 처음이다.) 도나가 무엇을 깨달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상관없다는 듯 하던 키스를 마저 한다. [31:45]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리고 [32:00] 주제 x 반복. 자신이 처리할 테니 제임스에게 목걸이를 내놓으라는 도나.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목걸이를 묻는다. [33:17] 부근에서 페이드 아웃.

#13. [39:14] 주제 x. 조시와 해리가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한 캐서린의 수상한 전화. [39:49] 다음 트랙으로 전환. [40:12] 누군가 도나와 제임스가 묻어 놓은 목걸이를 가져간다. (장갑을 끼고 있어 손으로 성별을 짐작할 수 없다.) 세라의 꿈? 엔드 크레딧으로 넘어간다.

#14. [40:29] 엔드 크레딧은 로라의 (프롬?) 사진을 배경으로 주제 y 마지막 부분에서 시작해 [40:36] 바로 주제 z로 넘어간다.


글 서두에 밝힌 대로 〈로라 파머의 테마〉는 파일럿 에피소드 94분 동안 총 14번 듣는다. 평균 6.7분에 한 번씩 듣는 꼴. 그래서 파일럿 끝날 때쯤 되면 G음이나 A$\flat$음만 들어도 주제 x(특히 동기 x.1)를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14번 중 같은 방식으로 듣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다. 실질적인 주선율에 해당하는 주제 z를 듣는 경우는 6번(##2, 3, 4, 8, 12, 14). 주제 z는 기본적으로 누군가 로라의 죽음을 슬퍼할 때에만 나오는 듯하다. 예컨대 #2 = 마을 주민, #3 = 로라의 부모, #4 = 교장 및 학생, #8 = 절친 도나, #12 = 도나와 제임스,5 마지막으로 #14 = 로라 파머 본인(혹은 시청자?).

〈로라 파머의 테마〉를 작곡할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 바달라멘티의 영상은 분명 흥미롭지만 이 음악을 어떠한 방식으로 편집해 영상과 결합할 것인지 결정하는 일은 감독의 몫이다. 그 감독이 음악과 소리에 ‘강박’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예민한 데이비드 린치라면 말할 것도 없다. 주제 x와 z는 작품 속 기능이 비교적 뚜렷한 반면 주제 y는 경과적으로만 사용되어 쓰임이 애매하다. 조금 더 봐야 할 듯.

Transcription || Twin Peaks: Angelo Badalamenti explains how he wrote Laura Palmer’s Theme [piano]. Video by Play Like The Greats . com

개인적으로 〈로라 파머의 테마〉를 들을 때마다 생각나는 음악은 피노 도나지오(Pino Donaggio)가 작곡한 브라이언 드 팔마(Brian De Palma) 감독의 영화 《드레스드 투 킬》(Dressed to Kill, 1980)의 〈메인 테마〉. 이 곡은 최근 줄리아 로버츠가 출연해 화제가 된 아마존 프라임 오리지널 《홈커밍》(Homecoming, 2018) 시즌 1 첫 번째 에피소드의 오프닝 음악으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홈커밍》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트위 픽스》의 오마주 같은 면이 있다. 줄리아 로버츠의 시즌 2 출연이 무산되면서 흥미를 잃었는데 시즌 1의 음악만 해도 할 이야기가 산더미라 일단 두고 봐야겠다.

Pino Donaggio – Dressed to Kill (1980) main title theme. Video by Borgarborgen

How to cite this: 계희승, “《트위 픽스》 다시 듣기,” 『음악학 허물기』, 2021년 7월 16일.


  1. Reba A. Wissner and Katherine M. Reed, eds., Music in “Twin Peaks”: Listening to the Sounds (New York: Routledge, 2021).

  2. 하지만 그로부터 또 다시 4년이 흘렀고 1946년생 린치 감독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이를 먹고 있다…

  3. 잘 보이지 않는다면 화면 우측 하단의 ‘Dark Mode’가 ‘Off’로 되어 있는지 확인하라.

  4. “어두운 숲에서,” “외로운 소녀,” “로라 파머” 등의 표제는 아래 영상에 제시된 바달라멘티의 설명을 바탕으로 차용한 것이다.

  5. 둘이 키스하느라 바쁜 것 같지만 로라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