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린 비아르도-가르시아 탄생 200주년

KBS 음악실 ‘계희승의 음악 허물기’ 2021년 7월 19일 162번째 방송

스페인계 프랑스 성악가 폴린 비아르도-가르시아(Pauline Viardot-Garcia, 1821–1910)는 19세기 파리를 넘어 유럽 전역에서 꽤 잘나가는 메조소프라노였습니다. 베를리오즈를 비롯한 당대 유명 작곡가들의 극찬을 받은 성악가였죠. 동시에 작곡가이기도 했습니다. 폴린의 기악 음악은 지금 거의 연주되지 않지만 가곡은 종종 연주, 녹음되고 있습니다. 마침 어제 7월 18일은 폴린 비아르도-가르시아의 200번째 생일. 오늘은 그동안 들을 기회가 별로 없었던 폴린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작품 준비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겸 음악학자였던 아들 폴 비아르도(Paul Viardot, 1857–1941)의 작품과 함께 감상합니다.

Pauline Viardot, ca. 1845, Hulton Archive / Getty Images via Wikimedia Commons

첫 곡은 《6개의 소품》(6 Morceaux) 중 1번 ‘로망스’(Romance). 폴린에게는 네 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모두 음악가로 성장했습니다. 《6개의 소품》은 아들 폴이 열 살이 되는 1867년 작곡해 그에게 헌정한 작품입니다. 서로 성격이 다른 6개의 소품이 아들 폴의 교육을 위해 쓴 것 아닌가라는 추측을 하게 하지만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곡을 쓰는 데 이유가 중요한가요. 아들을 향한 사랑을 듬뿍 담은 ‘로망스.’ 레토 쿠펠(Reto Kuppel)의 바이올린, 볼프강 만츠(Wolfgang Manz)의 피아노 연주로 감상하시죠.

6 Morceaux: No. 1, Romance. Video by Reto Kuppel – Topic

어머니를 따라 자녀들 모두 음악가가 되었다니 그야말로 음악가 집안입니다. 예로부터(?) 무슨 무슨 ‘집안’이라는 말을 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3대는 해야 한다고 했는데 사실 폴린의 아버지 마누엘 가르시아(Manuel García, 1775–1832)도 유명한 테너였습니다. 그냥 ‘유명한’ 정도가 아니라 오페라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거론되는 성악가 가운데 하나. 예컨대 그는 1816년 2월 20일 있었던 로시니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Il barbiere di Siviglia) 초연에서 알마비바 백작을 노래한 인물입니다. 19세기 프랑스를 넘어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음악가 집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폴린은 생상스와도 가까운 사이였고 셋째 딸 마리안느가 포레와 약혼을 하면서 그와 가족이 될 뻔하기도 했지요. (결혼까지 가지는 못 했습니다.) 이렇게 유명한 집안이었지만 폴린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활동에 제약이 많았습니다. 본인이 정작 하고 싶었던 건 피아노였고 작곡에도 뜻이 있었지만 어머니의 반대로 성악가의 길을 걷습니다.1 결국 1863년, 42세의 나이에 무대에서 내려와 은퇴한 후 본격적으로 작곡을 시작합니다. 작품 대부분 살롱 음악회를 위한 소품들. 그렇다고 마냥 가벼운 음악은 아닙니다. 1873년 작품 《바이올린 소나티나》(Violin Sonatina), A단조 전곡 감상하며 느껴 보시지요. 차분한 Adagio로 시작해 경쾌한 Allegro를 거쳐 위트 넘치는 Allegro finale까지. 레토 쿠펠의 바이올린, 볼프강 만츠의 피아노 연주입니다.

Violin Sonatina in A Minor: I. Adagio. Video by Wolfgang Manz – Topic
Violin Sonatina in A Minor: II. Allegro. Video by Wolfgang Manz – Topic
Violin Sonatina in A Minor: III. Allegro finale. Video by Wolfgang Manz – Topic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작품 듣고 있지만 사실 폴린의 역량은 성악곡에서 드러납니다. 쇼팽과도 가까운 사이였던 폴린은 친구의 마주르카를 편곡해 선율을 붙여 성악곡을 쓰기도 했습니다. 방송에서는 시간이 없어 다루지 못 했는데 한 곡 들어볼까요? 1864년 작곡한 성악곡 《12개의 쇼팽 마주르카》, 제1집 중 4번 ‘요염한 여자’(Coquette). 쇼팽 마주르카 B$\flat$장조, Op. 7, No. 1을 반주로 노래합니다. 제법 그럴듯한 정도가 아니라 오페라 악곡 중 하나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자연스럽습니다. 들어보시죠. 소프라노 올가 파셰치니크(Olga Pasichnyk), 나탈랴 파셰치니크(Natalya Pasichnyk)의 피아노 연주입니다.

Coquette : Coquette. Video by Olga Pasichnyk – Topic
Cover image of 12 Mazurkas de Chopin, Series I, IMSLP

물론 이렇게 다른 작곡가의 작품을 바탕으로 쓴 성악곡만 있는 건 아닙니다. 이건 극히 일부일 뿐. 오리지널 작품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들으면 누구나 알만큼 유명한 곡도 있습니다. 《6개의 선율과 하바네즈》(6 Mélodies et une havanaise, 1880) 중 ‘하이 룰리!’(Hai Luli!). ‘이게 폴린 비아르도-가르시아의 곡이었어?’라고 외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립니다. 정명훈의 피아노 반주로 체칠리아 바르톨리(Cecilia Bartoli)가 노래합니다.

Viardot: Hai luli. Video by Cecilia Bartoli

어머니 생신(그것도 200번째)인데 아들 작품 듣지 않을 수 없지요. 어머니의 작품을 듣고 자란 아들의 음악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폴 비아르도가 작곡한 3개의 바이올린 소나타 중 《바이올린 소나타 1번》, G장조, Op. 5의 2악장 Andante 감상하겠습니다. 1883년 26세에 작곡한 초기작. 들어보면 바로 알 수 있지만 폴의 작품 역시 기본적으로 살롱 음악입니다. 조용히 시작해 점점 밀도를 높이며 생기 있고 발랄하게 발전합니다. 레토 쿠펠의 바이올린, 피아노에 볼프강 만츠가 함께합니다.

Violin Sonata No. 1 in G Major, Op. 5: II. Andante. Video by Wolfgang Manz – Topic

자신의 200번째 생일에 아들의 작품과 함께 자신의 음악이 소개되고 있는 사실을 알면 폴린이 기뻐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오늘 이야기는 아들과 어머니의 작품 함께 감상하며 마치겠습니다. 먼저 폴 비아르도의 1902년 작품 《6개의 소품》 중 6번 ‘작은 왈츠’(Petite valse). 제목 그대로 경쾌한 춤곡입니다. 이어서 감상할 폴린 비아르도-가르시아의 《6개의 소품》 중 3번 ‘자장가’(Berceuse)는 아들에게 들려주는 어머니의 노래처럼 따뜻한 음악이죠. 마침 두 곡이 조성적으로도 잘 어울려 함께 선곡했습니다. 레토 쿠펠의 바이올린, 볼프강 만츠의 피아노 연주로 보내드립니다.

6 Pieces (1902) : No. 6, Petite valse. Video by Reto Kuppel – Topic
6 Morceaux: No. 3, Berceuse. Video by Reto Kuppel – Topic

  1. 사실 이건 아버지의 죽음으로 가세가 기울면서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가 포함된 결정이었지만 여전히 폴린이 ‘여성이 아니었다면?’이라는 의심을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