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라리스에 각인된 바흐의 시간

러시아의 영화 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Andrei Tarkovsky, 1932–86)의 『시간의 각인』(1986) 개역판이 나왔다.1 일찌감치 『봉인된 시간』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었지만 독일어 번역본을 중역(重譯)한 것이어서 영문판과 비교해 가며 봐야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2 ‘개정판’이라면 고민이라도 했을 텐데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재단 공식 완역본’이라니. 더 이상의 고민은 배송만 늦출 뿐. 마침 얼마 전 구입한 토비아스 폰타라의 저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공명하는 영화: 음악과 의미, 《솔라리스》부터 《희생》까지』와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아 책값도 확인하기 전에 결제를 마쳤다.3

타르코프스키는 “이 책으로 누구를 가르칠 생각도 없거니와 나 자신의 관점을 강요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독자를 안심시킨다.4 하지만 서문에 드러난 글의 목적은 명확하다. 그의 영화를 이해하지 못 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글로 밝히는 것. 물론 그 대상에는 일반 감상자뿐만 아니라 평론가와 전문가까지 포함된다. 그의 작품에 대한 비평이 잔뜩 인용되어 있는 서문을 읽다 보면 타르코프스키의 답답함, 억울함, 심지어 분노 같은 감정도 느껴진다.

영화는 그 시작부터 음악과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였고 그 둘이 하나가 되는 방식은 짧지 않은 역사만큼 다양하게 변화해 왔다.5 타르코프스키 역시 음악에 관한 철학이 뚜렷한 감독이었지만, 폰타라에 따르면 그의 작품은 지금까지 음악학자들의 주목을 받지 못 했다.6

사실 타르코프스키에 관한 음악학 연구가 많지 않은 데에는 그럴 만한 아주 좋은 이유가 있는데, 그의 작품에 음악이 별로 사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가 어떤 음악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비밀스럽게 간직하고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는 타르코프스키는 “영화 속에 확실하게 조직된 소리 나는 세계는 본질적으로 음악적이다. 그리고 이것이 영화의 진정한 음악”이라고 주장한다.7 자신이 완숙의 경지에 올랐다면 음악 없이 작품을 완성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직 부족해 그러지 못 했다며 아쉬워하지만, 폰타라는 《노스탤지아》(Nostalghia, 1983)나 《희생》(The Sacrifice, 1986) 같은 작품에서 그의 이상이 어느 정도 실현되었다고 제안한다.8

영화음악학자 폰타라가 하필 음악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감독의 작품을 연구한 이유는 간단하다. “왜냐하면 음악이 거기 있으니까.”9 오히려 워낙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음악이 있다면 그럴 만한 아주 좋은 이유가 있을 것이고, 감독의 선언(?)과는 별개로 음악의 효과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게 폰타라의 설명이다.10 나는 나대로 타르코프스키 작품에 흥미를 느끼는 이유가 있는데 감독 스스로 밝힌 음악의 사용 방식 때문이다.

나의 입장은 음악을 시적 후렴으로 도입할 때 쓰는 기법에 더 가깝다. 시에서 시적 후렴을 마주할 때 우리는 방금 읽은 것을 갖고서 시인이 이 시를 처음 쓰게 된 동기로 돌아간다. 후렴은 시적 세계로 들어가는 최초의 경험으로 우리를 되돌려놓으면서 이 세계를 직접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동시에 새롭게 경험하게 해준다.

—타르콥스키, 『시간의 각인』, 207.

음악이라는 렌즈를 통해 타르코프스키의 작품을 재해석하겠다는 폰타라의 계획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은데, 그런 점에서 타르코프스키의 세 번째 작품 《솔라리스》(Solaris, 1972)는 음악이 어떻게 ‘후렴’으로 사용되는지 생각해 보기 좋은 작품이다. 폰타라가 자신의 책에서 서문에 해당하는 제1장에 이어 제2장을 《솔라리스》 분석으로 시작하는 것도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타르코프스키 팬이 아니더라도 《솔라리스》를 본 사람이라면 이 작품에 사용된 J. S. 바흐의 오르간 전주곡 주여, 당신을 소리쳐 부르나이다”(Ich ruf zu dir, Herr Jesu Christ, BWV 639)를 기억할 것이다.

Bach – Ich ruf zu dir, Herr Jesu Christ BWV 639 – Van Doeselaar | Netherlands Bach Society. Video by Netherlands Bach Society
바흐의 오르간 전주곡 “주여, 당신을 소리쳐 부르나이다”(BWV 639)의 자필 악보, 1720, Wikimedia Commons

바흐의 《작은 오르간 곡집》(Orgelbüchlein)에 포함된 이 코랄 전주곡은 사실 여러 영화에 사용된 바 있다. 예컨대 라스 폰 트리에(Lars von Trier) 감독의 《님포매니악》(Nymphomaniac, 2013) 불륨 1이나 파벨 포리코브스키(Paweł Pawlikowski) 감독의 《이다》(Ida, 2013) 모두 BWV 639를 극적 장치의 일부로 사용한다. 잠자리 후 수녀복을 챙겨 입고 덤덤히 길을 걷는 이다를 배경으로 흘러나오는 바흐라니. 정작 스티븐 소더버그(Steven Soderbergh) 감독의 2002년 영화 《솔라리스》에는 사용되지 않았는데, 리메이크라고는 하나 완전히 다른 영화이므로 패스.

Tarkovsky’s SOLARIS (Trailer) – coming Nov. 30 | Austin Film Society. Video by Austin Film Society
Cantus Firmus Scene – Lars Von Trier: Nymphomaniac. Video by capobello

폰타라는 기존 타르코프스키 연구가 바흐 전주곡을 거의 언제나 인간의 가치를 상징하는 음악으로 해석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11 지구, 고향, 기억, 향수 따위. 다 맞는 말인데 정작 영화이론적 해석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게 폰타라의 불만이다. 음악의 위치 또는 배치(placement)는 물론 디제시스적(diegetic), 비디제시스적(nondiegetic), 심지어 메타디제시스적(metadiegetic) 기능에 대한 분석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 영화 ‘이론가’들에게나 중요한 내용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문제는 바로 그 영화 이론가들의 연구에서 제대로 다루어진 적이 없다는 것이다.

폰타라의 《솔라리스》 분석을 아직 읽기 전이라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타르코프스키가 바흐의 오르간 전주곡을 사용했다는 건 몇 가지 이유에서 파격적인 동시에 논리적이다. 일단 타르코프스키는 기악이 전자 음악과 달리 “매우 독립적인 예술이어서 영화에 녹아들어 유기적 일부가 되기가 훨씬 더 어렵다. 그래서 기악을 적용할 때는 본질적으로 항상 타협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12 “기악은 언제나 설명하려는 속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인데 사실 여부를 떠나 흥미로운 통찰이다.13 하지만 타르코프스키가 생각하는 기악의 “설명하려는 속성”보다 더 큰 문제는 서양 음악, 특히 19세기 ‘클래식’ 음악, 예컨대 베토벤 음악이 갖는 다음과 같은 속성이다.

서양 음악은 소리친다. 여기 나야! 나를 봐! 내가 얼마나 고통받고 있고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들어봐! 나는 얼마나 불행한가!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나야! 내 것이야! 나에게 말이야! 나를 말이야!

—타르콥스키, 『시간의 각인』, 301.

이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빵 터졌다. 그동안 잘 감추고 있었는데 어떻게 알았나 싶어 정곡을 찔린 듯한 느낌이랄까. 실로 날카로운 통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르코프스키가 《솔라리스》에서 바흐의 음악을 사용한 이유는 폰타라의 표현을 빌리자면 바흐의 음악이 서양 음악의 “히스테리적인 자아 도취”(hysterical self-absorption)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기 때문이다.14 타르코프스키에게 바흐의 음악은 어쩌면 동양 사상에 훨씬 가까운 음악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타르코프스키에 따르면 서양과 달리 “동양은 자기 자신에 관해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신과 자연, 시간에 완전히 녹아든다. 모든 것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자신 안에서 모든 것을 열어 보인다!”15 그럼 한없이 겸허한 종교 음악이면 되는 것 아닌가 싶지만 이 문제는 그의 작품 전반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하니 일단 또 패스.

어쨌거나 폰타라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결국 타르코프스키 작품의 음악은 음악학자들의 연구를 필요로 한다는 것. 그래서 기존 연구가 오류로 가득하다고 당당히 지적한다. 예컨대 타르코프스키 사후 5.1 서라운드로 리마스터링된 《스토커》(Stalker, 1979)를 분석한 연구는 오리지널 모노 버전과 다른 작품을 연구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솔라리스》에서 총 네 차례 사용되는 바흐 전주곡을 ‘세 군데’로 서술하고 해석한 연구는 중요한 나머지 한 장면을 누락한 것이다.

실제로 《솔라리스》를 감상하는 동안 바흐 전주곡은 총 네 곳에서 들을 수 있다. (1) 오프닝 크레딧에서 처음 사용되고 약 1시간 40분 가까이 흐른 후 (2) 크리스가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촬영한 영상을 하리와 감상할 때 다시 듣게 된다. 이 장면은 2시간 45분에 육박하는 영화에서 오프닝 크레딧 후 ‘음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소리가 처음 들리는 순간이다. 다시 30분가량 흐른 후 2시간 12분 부근, 잠시 무중력 상태가 될 때 그 유명한 (3) 공중 부양(levitation) 장면과 함께 음악이 흐르고[유튜브에서 보기], 영화 끝나기 직전 마지막 장면, 2시간 40분 근처에서 (4) 오프닝 장면과 흡사한, 지구인지 솔라리스인지 알 수 없는 곳을 배경으로 들으면서 마무리된다[유튜브에서 보기].

이렇게 바흐의 전주곡을 총 네 번 듣지만 사용 방식은 조금씩 다르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세 번째와 네 번째. 오르간 소리에 아르테미예프의 전자 음악이 대선율로 추가된다. 특히 마지막 감상 때에는 여기에 현악 파트까지 추가되면서 오르간 소리를 압도한다. 영화 속 내러티브로 들어가기 전 오프닝 크레딧은 논외로 하더라도 두 번째 감상은 지구를 배경으로, 세 번째는 정거장 안이다. 마지막 장면은? 지구인지 솔라리스인지 명확하지 않다.

《솔라리스》의 마지막 장면은 오프닝에서 본 별장이 있던 장소를 연상케 하지만 곧 줌아웃되면서 솔라리스 안의 섬(?)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크리스는 결국 지구에 돌아가지 않고 솔라리스에 남았다고 ‘단정’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렇게 단정할 수 없다는 게 이 영화가 던지는 중요한 질문 가운데 하나 아닌가. 중성미자(?)의 결정체에 불과한 하리조차 “내가 어디서 온 거죠?” 따위의 고민을 하고 있는 마당에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다만 오르간으로 시작해 전자 음악으로 탈바꿈한 바흐 전주곡을 단서로 또 다른 하나의 해석이 가능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오르간과 전자 음악의 조합은 절묘하다.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감독의 《인터스텔라》(Interstellar, 2014)의 음악을 작곡한 한스 짐머(Hans Zimmer) 역시 오르간 소리를 선택했다. 가장 인간적이고 종교적인 동시에 미지의 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 악기. 하지만 짐머가 오르간 소리를 날것 그대로 사용한 것은 아니다. 영화 안에서 사용되는 방식은 전혀 다르지만 음악 자체는 《솔라리스》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해도 놀랍지 않다.

Hans Zimmer – making of INTERSTELLAR Soundtrack. Video by Elegyscores

기본적으로 나는 세계가 그 자체로 아름답게 소리 내고 있으며, 우리가 세계의 소리를 적절하게 듣는 법을 배웠다면, 음악이 영화에 전혀 필요 없었으리라고 생각한다.

—타르콥스키, 『시간의 각인』, 211.

《솔라리스》는 음악 가득한 영화에 익숙한 사람이 보기에는 숨막힐 정도로 고요하다. 음악은 커녕 소리조차 없는 경우도 많다. 완벽하게 무음인 (것처럼 들리는) 장면도 있다. 가끔 소스라칠 정도로 시끄러운 소리가 날 때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조용한 영화라서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이라도 착용하지 않으면 디테일한 사운드 디자인을 지나치기 십상이다. 우리가 세상의 소리를 들을 줄 안다면 음악 없이 영화가 가능할 것이라는 타르코프스키. ‘소리와 청취의 정치학’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쉽게 동의할 수도, 그렇다고 동의하지 않을 수도 없는 말이다. 『시간의 각인』을 되읽으며 생각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지. 일독을 권한다.

J. S. Bach: Ich ruf zu dir Herr Jesu Christ, Chorale Prelude BWV 639 (Transcr. by Ferruccio Busoni). Video by Víkingur Ólafsson

How to cite this: 계희승, “솔라리스에 각인된 바흐의 시간,” 『음악학 허물기』, 2021년 7월 23일.


  1.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시간의 각인』, 라승도 옮김(곰출판, 2021). 본문에서는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타르코프스키’로 통일한다.

  2.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봉인된 시간: 영화 예술의 미학과 시학』, 김창우 옮김(분도출판사, 1991); Andrey Tarkovsky, Sculpting in Time: The Great Russian Filmmaker Discusses His Art, trans. Kitty Hunter-Blair (Austin: University of Texas Press, 1989).

  3. Tobias Pontara, Andrei Tarkovsky’s Sounding Cinema: Music and Meaning from “Solaris” to “The Sacrifice” (New York: Routledge, 2020).

  4. 타르콥스키, 『시간의 각인』, 23.

  5. 영화 음악의 역사에 관한 개론서는 다음 글을 추천한다. Mervyn Cooke, A History of Film Music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8).

  6. Pontara, Andrei Tarkovsky’s Sounding Cinema, 2.

  7. 타르콥스키, 『시간의 각인』, 209.

  8. Pontara, Andrei Tarkovsky’s Sounding Cinema, 6.

  9. 같은 책, 3.

  10. 같은 책, 4.

  11. 같은 책, 20.

  12. 타르콥스키, 『시간의 각인』, 211.

  13. 같은 책, 211–12.

  14. Pontara, Andrei Tarkovsky’s Sounding Cinema, 4.

  15. 타르콥스키, 『시간의 각인』, 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