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소유할 수 있는가? 『검은 바이올린』

얼마 전 번역, 출간된 프랑스 소설 『검은 바이올린』(Le Violon noir, 1999)을 읽었다.1 막상스 페르민(Maxence Fermine)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작가. 프랑스 문학(특히 ‘1950년대 이후’ 프랑스 문학)과는 잘 맞지 않아 멀리하는 편이지만 음악을 소재로 다룬 소설은 빠짐없이 읽으려고 한다. 별다른 고민 없이 집어 든 소설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때는 18세기 말 유럽. 바이올린이 전부인 소년 요하네스 카렐스키는 청년이 되어 바이올린을 그만두고 오페라를 쓰기로 한다. 만 31세가 되는 해 어느 날, 나폴레옹이 이끄는 전쟁에 징집되어 참전. 전장에서 심각한 부상을 당하지만 기적적으로 고비를 넘기고 후방 부대에 배치된다. 얼마 후 베네치아 점령군에 배속된 카렐스키는 자신이 머물게 될 집에서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집주인 에라스무스를 만나고. 그가 오래 전 파리에서 바이올린 제작자로 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벽에 걸린 ‘검은 바이올린’이 궁금한 요하네스. 그리고 사랑처럼 한 번 맛보면 빠져나올 수 없어 불행해질 테니 신경 끄라는 노인. 한 여인의 목소리를 바이올린에 “가두고 싶”었던 에라스무스는 결국 꿈을 이루지만 “그녀의 눈동자들처럼 검은 바이올린에서 그녀 목소리를 재현”(141)한 “그 흉한 밤,” 그 여인은 “목소리를 잃었다”(148). 동화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에라스무스는 숨을 거두고. 카렐스키는 결국 오페라를 완성하지만 곧 태워 버린다.

길어도 1시간 반이면 읽을 수 있는 이 짤막한 소설의 요지는 ‘역자의 말’ 그대로다. “광기 어린 소유의 시대 (중략) 사랑이란 예술이란 소유할 수 없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이다”(162–63). 음악은 정령 소유할 수 없는 것인가? 일부 음악학자들이 음악은 소유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수행적(performative)으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한지도 수십 년이 지났지만 음악학자, 연주자, 애호가를 비롯해 음악을 ‘사랑’하는 우리 모두는 여전히 음악을 소유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도 음반을 수집하고, 스트리밍과 구독의 시대에도 ‘내 라이브러리’에 차곡차곡 쌓아 소유하고 싶은 욕구를 해소한다. 연주자에게 권위 있는 ‘판본’(edition)의 악보는 소유 대상이고, 이는 연구 분야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음악학자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애호가와 연주자는 음악의 어떤 형태(음반이나 악보)를 소유하고 ‘소비’라도 하지만 나 같은 음악학자는 종종 음악을 듣지도 쓰지도 연주하지도 않고 ‘생각’만 하며 대신 그 생각이 구체화된 ’책’과 ‘논문’을 소유한다.

하지만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페르민의 소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다면(정말 그런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음악은 오로지 연주되고 감상되는 그 순간,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존재한다는 것. 애초에 소유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는 ‘경험’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건 페르민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지만 4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남은 인생에 대해 생각이 많아진 작금의 나라면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하되 미련을 갖지는 말라고 답하지 않을까.

그 외에도 『검은 바이올린』을 읽을 수 있는 방식은 무수히 많다. 논술 고사 문제라면 그들(?)이 원하는 답을 얼마든지 들려 줄 수 있겠지만 뭘 굳이. 다만 특별히 인상적인 부분이라면 바이올린 소리(음악)를 견디지 못 하는 전방 부대의 병사들과 다음 날 아침 부서진 채 발견된 바이올린. 음악은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고 전쟁의 참혹한 현실을 잊게 해 준다고,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라고 단정하기 쉽지만 음악학자 마틴 도트리 뉴욕대 교수의 저서 『전쟁 듣기: 전시 이라크의 소리, 음악, 트라우마, 그리고 생존』2은 전쟁에서 음악이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음악은 전쟁 중인 병사들의 감정 조절을 위해서도 사용되지만 적을 혼란에 빠뜨리거나 민간인을 선동하고 심지어 포로를 심문하는 데에도 사용된다. 도트리의 연구는 음악이 전쟁의 참혹한 경험을 잠시나마 ‘둔화’시켜 ‘미화’할 수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드러낸다. 카렐스키의 바이올린을 부숴 버린 병사에게 음악은 어쩌면 간신히 붙잡고 있는 정신줄을 놓게 만드는 ‘위험한’ 소리로 들렸을지도.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음악을 소재로 하는 소설은 웬만하면 읽으려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어떤 음악학자나 음악가보다 음악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훌륭히 묘사하는 작가들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다. 몇 달 전 읽은 레이철 조이스의 『뮤직숍』도 그런 소설 가운데 하나.3 그래서 더욱 비교가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나와는 반대로 영미권 소설이 맞지 않는 이들도 있을 테니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검은 바이올린』을 즐겁게 읽은 독자라면 한 대의 바이올린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아래 영상이 좋은 후렴이 되지 않을지.

Mirecourt, Dominique Nicosia, making of a violin, Luthier. Video by Simply 3D

How to cite this: 계희승, “음악은 소유할 수 있는가? 『검은 바이올린』,” 『음악학 허물기』, 2021년 7월 28일.


  1. 막상스 페르민, 『검은 바이올린』, 임선기 옮김(파주: 난다, 2021).

  2. J. Martin Daughtry, Listening to War: Sound, Music, Trauma, and Survival in Wartime Iraq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5).

  3. Rachel Joyce, The Music Shop: A Novel (New York: Random House,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