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예술, 그리고 《나의 어머니》

이탈리아의 감독 난니 모레티(Nanni Moretti)의 영화 《나의 어머니》(Mia madre, 2015). 에스토니아의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Arvo Pärt, b. 1935)의 음악으로 도배되어 있다는 소문을 듣고 한참을 벼르다 이제서야 봤다. 이 영화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일과 가족 사이에서 어떻게든 삶을 살아가려는 여성 마르게리타의 이야기. 노동자 인권을 그리는 영화 감독인 동시에 아픈 어머니를 돌보는 딸이다. 그렇지 않아도 애초에 어떻게 섭외된 것인지 알 수 없는 삼류 미국 배우 배리 때문에 환장할 노릇인데 무급 휴직까지 해 가며 어머니를 돌보는 오빠 지오반니 앞에서 왠지 주눅이 든다. 그 와중에도 지금은 따로 살고 있는 사춘기 딸 리비아와 친해지고 싶고, 전 남친이라는 인간은 힘들어서 찾아갔더니 팩폭을 날린다. 어느 날 밤 자다 깼더니 집에 물난리가 났고 급기야 혼자서 화장실도 가지 못 하는 어머니에게 분노한다. 그런 마르게리타가 안쓰럽지만 모레티는 마르게리타를 후회하는 여성으로 그리는 촌스러운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냥 삶이 그런 것이라는 듯, 때가 되면 찾아오는 일들이 있기 마련이고 그렇게 계속 살아가는 게 인생이라는 듯, 덤덤히 그려 낼 뿐이다.

패르트의 음악은 오랫동안 많은 감독들의 선택을 받았고 《나의 어머니》도 예외는 아니지만 모레티는 음악으로 많은 이야기를 하려 하지 않는다. 몇몇 특정 장면을 제외하면 그렇게 길게 나오지도 않아서 음악으로 강요되는 감정 따위는 없다. 영화에 수록된 모든 음악을 정리하고 기록할 작정으로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하지만 누가 영화를 그렇게 보나!) 의식하지 못 하고 지나갈 수도 있을 정도로 나대지 않는다. 다시 한 번, 모레티는 촌스럽지 않다.

그래서 (따로 기록해 두긴 했지만) 정작 기억에 남는 음악은 음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오프닝 크레딧의 《알리나를 위하여》(Für Alina, 1976). 패르트의 대표작이기도 하지만 물난리가 났을 때 폭발하는 마르게리타를 위로하듯 다시 한 번 흘러나와 잊을 수가 없다. 젠장. 안 그래도 인생 엿 같은데. 결국 울음이 터지고 만다. 급한 대로 어머니 집으로 피신. 집주인은 입원해 있으니 침대에서 자도 될 텐데 굳이 소파에서 잠을 청한다. 음악이 잠시 멈추고. 아침 댓바람부터 전기 회사 영업 사원이 찾아와 전기료 청구서를 보여 주면 얼마를 절약해 줄 수 있는지 알려 주겠다며 귀찮게 한다. 이걸 왜 받아 주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는 청구서 때문에 또 눈물이 나는 마르게리타. 힘들어 죽겠는데 되는 일이 없다. 눈물과 함게 《알리나를 위하여》가 다시 흐르고 다음 장면(촬영장)까지 이어진다. 지나간 듯하다 다시 흐르는 음악이 마르게리타의 심정 같다.

듣다 보면 이상한 점이 한 가지 있는데 B페달이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되는 《알리나를 위하여》가 이 영화에서는 반음 아래 B$\flat$으로 연주된다는 것. 심지어 A440보다 확연히 높게 연주된다. 엔드 크레딧에는 분명 ECM 음원이라고 되어 있는데 누구의 연주인지 어떤 음반인지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아 확인할 수 없지만 《알리나를 위하여》가 수록된 ECM 음반 중 B$\flat$으로 녹음한 연주는 없다. 그렇다면 영화에 삽입할 목적으로 일부러 낮추었다는 말인데 이건 모레티의 결정인가? 그냥 가져다 쓰면 되는 것을 굳이, 그것도 정확히 반음을 낮춘 것도 아니고 A440보다 높게 조율된 B$\flat$으로? 왜? 답은 나도 모르니 묻지 마시길.

사실 《나의 어머니》는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영화 초반, 대본을 맹신하지 말라며 캐릭터가 아니라 배우를 보고 싶다는 감독. 심지어 이 괴언을 영화 중반 다시 한 번 반복한다. 캐릭터를 연기하되 연기자도 있어야 한다. 마르게리타 자신에게 하는 말일까? 마르게리타는 꿈을 자주 꾼다. 그리고 꿈속에서 마르게리타 자신은 배우다. 마르게리타가 꿈이라는 사적인 무대 위에서 보이지 않는 카메라를 대상으로 자신의 슬픔을 연기한다는 사이먼 아브람스(Simon Abrams)의 해석에 동의할 수 있다면 연기자들에게 건네는 마르게리타의 조언은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염원을 담은 것이리라.1 그리고 마르게리타의 조언은 더 이상 연기 못 하겠다는, 현실로 돌아갈 거라는 배리의 대사와 훌륭히 대비된다. 그러고 보면 《나의 어머니》의 드라마는 인생을 마주하며 영화를 찍으려는 동시에, 영화를 찍으면서 인생을 살아가려는 데 있다는 리처드 브로디(Richard Brody)의 설명도 납득이 간다.2

그래서 《알리나를 위하여》는 적절하다. “죄와 고통으로 이루어진 자기 중심적인 삶”(egoistic life of sin and suffering)과 “용서라는 객관적 영역”(objective realm of forgiveness)의 대화가 틴틴나불리(tintinnabuli)의 핵심이라는 폴 힐리어(Paul Hillier)의 주장대로 이 둘은 결국 한 곳에서 파생된 것이다.3 패르트의 아내 노라 패르트(Nora Pärt)의 표현을 빌리자면 1+1=1.4 틴틴나불리 작품에는 늘 두 개의 성부(M-성부와 T-성부)가 공존하지만 둘 다 결국 하나의 기본음에서 파생된 배음렬의 다른 조합일 뿐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가 던지는 화두는 “인생인가 예술인가?”가 아니라 이 둘의 대화가 삶의 본질이라는 것.

보고 나면 가슴이 먹먹하진 않을까 싶어 그동안 감상을 미루어 왔는데 생각보다 덤덤하게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모레티의 《나의 어머니》는 다른 방식으로 감동을 선사한다. 촬영장에서 힘들어 하는 마르게리타에게 오늘 (힘든) 일은 어쨌건 끝난 것 아니냐는 딸의 응원이나, 죽음을 앞두고 ‘내일’을 생각한다는 어머니의 마지막 대사는 삶과 죽음을 덤덤히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준다. 마르게리타로 분한 마르게리타 부이(Margherita Buy)의 연기도 무척 인상적이다. 심지어 배리 때문에 분노하는 마르게리타를 보면 웃음이 터져 나올 지경이니 혹시 나와 같은 이유로 감상을 미루고 있다면 걱정 마시라. 영화 곳곳에서 들을 수 있는 패르트의 음악은 덤이다.

언제부터인가 ECM 음반은 유튜브 프리미엄 구독자에게만 공개되어 얼마 전 DG에서 공개한 알리스 사라 오트(Alice Sara Ott)의 《알리나를 위하여》 연주와 영상으로 대신한다.

Alice Sara Ott – A PATH TO WHERE / Arvo Pärt: Für Alina. Video by Deutsche Grammophon – DG

How to cite this: 계희승, “삶과 예술, 그리고 《나의 어머니》,” 『음악학 허물기』, 2021년 7월 30일.


  1. Simon Abrams, “Reviews: Mia Madre,” RogerEbert.com, August 26, 2016.

  2. Richard Brody, “Mia Madre: Nanni Moretti’s Cinematic Shapeshifting,” The New Yorker, August 28, 2016.

  3. Paul Hillier, The Music of Arvo Pärt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96; quoted in Laura Dolp, ed., Arvo Pärt’s White Light: Media, Culture, Politic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7), 5.

  4. Hillier, The Music of Arvo Pärt, 6; quoted in Dolp, Arvo Pärt’s White Light,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