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제의 피아노 소품, 두 번째 시간

KBS 음악실 ‘계희승의 음악 허물기’ 2021년 8월 9일 165번째 방송

지난주에 이어 프랑스 작곡가 조르주 비제(Georges Bizet, 1838–1875)의 피아노 음악 만나 보는 두 번째 시간. 오페라 《카르멘》(Carmen, 1875)으로 워낙 친숙한 작곡가라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비제는 적지 않은 피아노 소품을 작곡했습니다. 피아노에 대한 이해가 뛰어났던 작곡가라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나는 작품들이었는데요. 눈치채신 분도 있겠지만 지난주에는 비제의 소품집 중 1악장 위주로 선곡했습니다. 가능하면 다양한 음악을 소개하고 싶었거든요. 오늘은 지난주에 감상한 소품집의 나머지 악장들 준비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한 곡 듣고 나눌까요?

첫 곡은 1868년 작품 《녹턴 D장조》. 지난주 감상한 《녹턴 F장조》는 16세 소년의 작품이었지만 《녹턴 D장조》는 이미 성숙한 시기에 접어든 30세 비제의 작품입니다. 《녹턴 F장조》가 듣기 쉬운 선율 위주의 곡이었다면 《녹턴 D장조》는 훨씬 덜 직설적이고 화성적으로도 복잡한 편입니다. 비제가 후자를 《녹턴 1번》(Premier nocturne)으로 출판한 데에는 그럴 만한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D장조라고는 하나 정작 D장조가 확인되는 순간은 곡이 끝나기 직전. 조성 분석을 해야 한다면 난해할 수도 있겠지만 듣기에 까다로운 음악은 아니니 안심하고 편안히 감상하시면 됩니다. 율리아 세베루스(Julia Severus)의 연주입니다.

Nocturne in D Major. Video by Julia Severus – Topic

같은 녹턴이지만 확실히 《녹턴 F장조》와는 밀도가 다르지 않나요? 비제는 알면 알수록 다양한 면모를 드러내는 작곡가입니다. 지난주 만난 《종교적 명상》(Meditation religieuse)도 그런 작품 가운데 하나였죠. 이미 설명한 대로 이 곡은 1855년 『가족 상점』(Le Magasin des familles)이라는 잡지의 부록에 실린 작품입니다. 잡지에 악보가 왜 실리나 싶지만 19세기, 심지어 20세기 초 프랑스에서는 흔한 일이었습니다. 딱히 지식인을 위한 잡지도 아니었고 요즘 식으로 얘기하면 종합 매거진(?) 정도였는데, 바꾸어 말하면 당시 파리의 평균적인 독자는 악보를 읽고 연주할 수 있는 소양을 갖추었다는 것. 언뜻 패션지처럼 보이지만 악보를 비롯해 시, 비평 등도 실려 있어 19세기 프랑스의 문화 수준이 얼마나 높았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중을 겨냥한 잡지에 실린 곡인만큼 누구나 쉽게 연주하고 감상할 수 있는 작품들입니다. 비제가 1856년 같은 잡지에 출판한 〈무언가〉(Romance sans paroles)와 〈카실다〉(Casilda) 들어 보면 무슨 말인지 아실 겁니다. 율리아 세베루스가 연주합니다.

Magasin des familles: II. Romance sans paroles. Video by Julia Severus – Topic
Magasin des familles: III. Casilda. Video by Julia Severus – Topic

19세기 프랑스는 음악과 문학, 미술 등의 예술이 분리되어 있기보다는 활발히 교류했던 시기였습니다. 지난주에도 잠깐 언급한 것처럼 비제 또한 이른바 ‘문청’이었죠. 19세기 프랑스에는 유독 문학적인 작곡가들이 많았습니다. 지난 3월 29일 〈음악 허물기〉 시간에 “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월요일”이라는 주제로 소개한 적도 있지만 음악가들은 문학에서, 문학가들은 음악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당시 만난 곡들 아래 플레이리스트로 준비했으니 잠시 감상해 보세요.

같은 맥락에서 지난주 감상한 1865년 작품 《라인강의 노래》(Chants du Rhin)는 조제프 메리(Joseph Méry, 1797–1866)의 시에 의한 무언가. 1번 〈여명〉(L’aurore) 보내 드리면서 나머지 곡들은 오늘 들을 수 있으니 “딴 데 가지 마시라”고 했는데 약속 지켜야지요. 《라인강의 노래》 마지막 두 곡, 5번 〈속내〉(Les confidences)와 6번 〈귀환〉(Le retour). 비제가 얼마나 시적인 음악가였는지 알 수 있는 작품입니다. 율리아 세베루스의 연주로 듣겠습니다.

Chants du Rhin: V. Les confidences. Video by Julia Severus – Topic
Chants du Rhin: VI. Le retour.

어느덧 마칠 시간이 되었네요. 지난주 이야기는 비제가 직접 피아노로 편곡한 《아를의 여인 모음곡 1번》(L’arlesienne Suite)의 〈전주곡〉 감상하며 시작했는데요. 비제의 피아노 소품 감상은 《아를의 여인 모음곡 2번》의 마지막 두 곡과 함께 마무리하겠습니다. 지난주 방송 듣지 못 한 분들 위해 짧게 다시 소개하면 원곡은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 1840–1897)의 희곡 『아를의 여인』을 위해 작곡한 부수음악(incidental music). 희곡이 흥행에 실패하자 연주용 모음곡으로 발표한 작품입니다. 3번 〈미뉴에트〉(Menuet)는 들으면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한 곡이고, 4번 〈파랑돌〉(Farandole)은 프랑스 전통 무곡인데 〈전주곡〉과 같은 선율을 사용해 친숙합니다. 율리아 세베루스가 연주합니다.

L’arlesienne Suite No. 2 (version for piano) : III. Menuet. Video by Julia Severus – Topic
L’arlesienne Suite No. 2 (version for piano) : IV. Farandole. Video by Julia Severus – Topic

2주에 걸쳐 비제의 피아노 소품 들어 봤는데 어떠셨나요. 오페라 《카르멘》에 강렬한 곡들이 많아 비제의 이미지도 그렇게 각인되는 경향이 없지 않은데 그의 또 다른 모습을 알 수 있는 시간이었길 바랍니다. 원래 사람은 길게 겪어 봐야 안다고 하잖아요. 바쁘고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첫 인상으로 모든 걸 결정하기도 하고 또 그게 적중하는 경우도 분명 있지만 어차피 ‘클래식’은 수백 년 전 음악들. 일주일에 한 번, 〈음악 허물기〉 시간에서만이라도 좀 더 많은 작곡가들의 다양한 모습 찬찬히 함께 알아갈 수 있다면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있을까요.

아쉬운 마음에 비제의 《세 개의 음악적 소묘》(3 Esquisses musicales) 중 2번 〈세레나데〉 준비했습니다. 원고 준비할 때 가끔 선곡 시간이 애매하다 싶으면 ‘예비곡’을 정해 둡니다. 정작 준비하면 사용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필요 없을 것 같아 준비하지 않으면 꼭 찾게 되더라고요. 이 곡도 그렇게 예비곡으로 준비한 음악인데 오늘 방송에서 들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혹시 아니라면 지금 들어 보세요. 기분 좋은 하루 되실 겁니다. 율리아 세베루스의 연주입니다.

3 Esquisses musicales: No. 2. Serenade. Video by Julia Severus – Topic

How to cite this: 계희승, “비제의 피아노 소품, 두 번째 시간,” 『음악학 허물기』, 2021년 8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