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의, 모차르트에 의한, 모차르트를 위한

KBS 음악실 ‘계희승의 음악 허물기’ 2021년 8월 16일 166번째 방송

KBS 클래식FM 2021 여름음악학교 〈응접실의 모차르트〉가 무사히 마무리되었습니다. 저도 기획 단계부터 함께하며 선곡에 의견을 낼 수 있어 개인적으로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이었는데요. 제가 다루고 싶은 곡이 전부 반영된 건 아닙니다. 조금 과장하면 여름음악학교에서 자꾸 〈음악 허물기〉를 하려고 하니까 뜯어말리는 분위기였습니다. 오늘은 정말 〈응접실의 모차르트〉에 제안한 선곡은 아니지만 연장선상에서 함께 들을 수 있는 음악 준비했습니다. 18–19세기 작곡가들에 의해 피아노 곡으로 재탄생한 모차르트. 자세한 이야기는 한 곡 듣고 나눌까요?

Drawing of Josef Gelinek by Friedrich John (after Louis René Letronne), ca. 1820, Wikimedia Commons

첫 곡은 체코 태생 작곡가 요제프 겔리네크(Josef Gelinek, 1758–1825)의 《마술피리 아리아에 의한 변주곡》. 겔리네크는 모차르트보다 두 살 어린 동시대 음악가입니다. 모차르트와 잘 알던 사이였고 당대 알아주는 즉흥 연주자였습니다. 겔리네크가 일자리를 구하는 데 모차르트가 도움을 주기도 했지요. 지금은 거의 잊힌 작곡가지만 많은 변주곡을 작곡했고 19세기 초에는 나름 인기를 누리기도 했습니다. 《마술피리 아리아에 의한 변주곡》은 너무나 유명해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파파게노의 아리아 〈연인 혹은 아내〉(Ein Mädchen oder Weibchen)에 의한 변주곡입니다. 이게 정말 피아노 소리가 맞나 싶을 정도로 작품도 연주도 기가 막힙니다. 시프리앙 카차리스(Cyprien Katsaris)의 연주로 들려 드립니다.

Air des mysteres d’Isis (After “Die Zauberflote”). Video by Cyprien Katsaris – Topic
Portrait of Johann Nepomuk Hummel by Joseph Karl Stieler, 1820, Wikimedia Commons

모차르트의 아리아를 이렇게 피아노 변주곡으로 듣는 것도 색다르지만 19세기에는 오페라 주제에 의한 환상곡이 특히 인기였습니다. 당시 출판 시장의 주력 상품 가운데 하나라고 해도 과장이 아닙니다. 리스트 같은 피아니스트를 시작으로 자리 잡은 독주회의 필수곡이 될 정도로 인기였지요. 리스트를 비롯해 많은 작곡가들이 오페라 주제에 의한 환상곡을 썼는데 그 중 모차르트의 제자였던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요한 네포무크 훔멜(Johann Nepomuk Hummel, 1778–1837)의 1833년 작품 《피가로의 결혼 주제에 의한 환상곡》(Fantasia über Le nozze di Figaro, Op. 124) 들어 보겠습니다. 정확히는 피가로의 아리아 〈더 이상 날지 못하리〉(Non più andrai)에 의한 환상곡. 역시 말이 필요 없는 아리아에 의한, 말이 필요 없는 작곡가의 환상곡입니다. 바베테 돈(Babette Dorn)이 연주합니다.

Fantasina on themes from Mozart’s Le nozze di Figaro, Op. 124. Video by Babette Dorn – Topic
Photograph of Sigismond Thalberg by Henry Hering, ca. 1860, Wikimedia Commons

훔멜의 작품은 피아니스트 사이에서도 어렵기로 유명한데 기교 넘치는 피아노 작품으로 재탄생한 모차르트 아리아도 예외는 아닙니다. 모차르트 사후에도 많은 작곡가들이 꾸준히 그의 작품을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에 각자의 방식으로 대가를 기억하는 것이겠지요. 지역도 가리지 않습니다.

스위스 작곡가 지기스문트 탈베르크(Sigismond Thalberg, 1812–71)가 피아노로 편곡한 모차르트 《레퀴엠》의 〈눈물의 날〉(Lacrimosa)은 《피아노에 응용된 노래 기법》(L’art du chant appliqué au piano, Op. 70)이라는 작품집에 실린 24개 곡 중 다섯 번째 곡입니다. 오페라 아리아 중심의 작품집인데 특이하게 모차르트 《레퀴엠》의 〈눈물의 날〉이 들어가 있어 유독 두드러집니다. 10년에 걸쳐 총 4권으로 발표된 작품집 중 〈눈물의 날〉이 포함된 1권은 1853년 출판되었습니다. 이 곡이 피아노에 이렇게 잘 어울릴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페트로넬 말란(Petronel Malan)의 연주로 감상하겠습니다.

L’art du chant applique au piano, Book 1: No. 5. Lacrimosa tire du Requiem (K. 626) de Mozart. Video by Petronel Malan – Topic
Lithograph of Carl Czerny by Josef Kriehuber, 1833, Wikimedia Commons

선대 작곡가에 대한 존경심도 물론 있었겠지만 사실 대가의 유명한 작품을 주제로 곡을 쓰면 흥행에 유리한 측면도 있었을 겁니다. 잊기 쉽지만 예술가들도 결국 생계 유지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었으니까요. 19세기는 수요가 있었기 때문에 내로라하는 피아니스트라면 이런 종류의 환상곡 몇 곡은 쓸 수밖에 없었던 시대였지요. 피아니스트의 기교를 보여줄 수 있는 환상곡이 특히 인기였습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배틀(?)이 붙기도 했는데요. 경쟁했다는 게 아니라 여러 작곡가들이 같은 주제로 환상곡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는 겁니다. 예컨대 카를 체르니(Carl Czerny, 1791–1857)의 1842년 작품 《피가로의 결혼 주제에 의한 화려한 환상곡》(Fantasie brillante sur Le nozze di Figaro, Op. 493). 앞서 감상한 훔멜의 환상곡이 특정 아리아에 의한 작품이라면 체르니는 오페라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주요 악곡을 주제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10분 남짓한 이 곡을 듣고 나면 오페라를 한 편 감상한 것 같은 기분입니다. 바베테 돈의 연주로 감상해 보시지요.

Fantaisie brillante on themes from the opera The Marriage of Figaro, Op. 493. Video by Babette Dorn – Topic

이렇게 한 작곡가의 동일한 주제가 어떻게 다르게 재해석되는지 듣는 일은 무척 재밌습니다. 시간이 부족해 방송에서 소개만 하고 듣지는 못 했지만 비제와 베르디 모두 《돈 조반니》(Don Giovanni, K. 527, 1787)의 이중창 〈그대 손을 잡고〉(Là ci darem la mano)를 피아노로 편곡했는데 미묘하게 다릅니다. 러시아 작곡가 미하일 글린카(Mikhail Glinka, 1804–1857)의 《마술피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도 기가 막힙니다. 언제 또 기회가 되면 함께 듣겠지만 지금 바로 들어 보시는 것도 좋겠네요. 시프리앙 카차리스의 비제, 바베테 돈의 베르디, 잉가 피올리아(Inga Fiolia)가 연주하는 글린카까지 차례로 감상해 보시지요.

La ci darem la mano (after the opera/nach der Oper/d’apres l’opera/dall’opera: “Don Giovanni”). Video by Cyprien Katsaris – Topic
Mozart – Don Giovanni, K. 527, Act I: La ci darem la mano. Video by Babette Dorn – Topic
Variations on a theme of Mozart in E-Flat Major (version for piano). Video by Inga Fiolia

How to cite this: 계희승, “모차르트의, 모차르트에 의한, 모차르트를 위한,” 『음악학 허물기』, 2021년 8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