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스캥 데 프레 서거 500주년

KBS 음악실 ‘계희승의 음악 허물기’ 2021년 8월 23일 167번째 방송

오늘은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듣는 〈서양음악사〉 시간에 아주 잠깐 만나고 지나가는 르네상스 시대 작곡가 조스캥 데 프레(Josquin des Prez, ca. 1450–1521)의 음악 준비했습니다. 2021년은 조스캥 데 프레 서거 500주년. 정확히 이번 주 금요일 8월 27일이 그의 500주기입니다. 바로크 이전 르네상스, 중세 음악은 진입 장벽이 높습니다. 자주 연주되지 않아 들을 기회가 별로 없는데 듣는 사람이 없다 보니 자주 연주되지 않는 악순환이 거듭됩니다. 음반은 상대적으로 풍부한 편이지만 마니아가 아닌 이상 쉽게 손이 가지 않습니다. 음악 전공자도 마찬가지. 〈서양음악사〉 시간에 기껏해야 한두 시간 다루고 넘어가는 음악가지만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에 앞서 ‘천재’ 타이틀을 얻은 작곡가입니다. 생각보다 들을 만하니 ‘딴 데 가지 마시’고 함께 들어 볼까요?

A woodcut of Josquin des Prez, 1611, Wikimedia Commons

첫 곡은 조스캥 작품 가운데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아베 마리아… 조용한 처녀〉(Ave Maria… Virgo serena). 사실 중세, 르네상스 음악을 들으면 별로 와 닿지도 않고 좋다는 느낌도 없습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텐데 하나만 꼽자면 우리에게 익숙한 조성 체계가 확립되기 이전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서양음악사〉 수업은 보통 중세 시대 음악부터 시작합니다. 그 이전에도 물론 음악은 있었겠지만 사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간략히 다루고 중세로 넘어갑니다. 지루해 하던 학생들도 르네상스 시대로 넘어가면서 변화를 보이는데 특히 조스캥의 음악은 반응이 괜찮은 편입니다. 여전히 우리가 기대하는 17세기 말 조성 어법은 아니지만 비슷한 소리(3화음)가 들리기 때문이죠. 그 중에서도 〈아베 마리아〉는 다성 음악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는 곡입니다. 일단 들어 보세요. 피터 필립스(Peter Phillips)가 지휘하는 탈리스 스콜라스(The Tallis Scholars)가 부릅니다.

Josquin: Ave Maria… Virgo Serena. Video by Peter Phillips & The Tallis Scholars – Topic

생각보다 괜찮지 않나요? 서양음악사에서 우리 귀에 정말 익숙한 음악은 16세기는 되어야 나옵니다. 예컨대 팔레스트리나(Giovanni Pierluigi da Palestrina, ca. 1525–1594) 정도 되면 취향의 문제가 있을 뿐 아무런 거부감 없이 들을 수 있어요. 그의 다성 음악과 대위의 원칙들은 지금도 대학에서 가르치고 배웁니다.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같은 대가들도 그의 음악을 공부했습니다. 조스캥은 팔레스트리나보다 약 70년가량 앞선 시대에 활동했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이 계보의 맨 위에 있는 작곡가입니다. 한 곡 더 들어 볼까요? 조스캥 데 프레의 〈깊은 구렁 속에서〉(De profundis). 베이스 바리톤에 저프리 쇼(Geoffrey Shaw), 테너에 마틴 힐(Martyn Hill)과 폴 엘리엇(Paul Elliott), 베이스에 테리 에드워즈(Terry Edwards), 데이비드 먼로우(David Munrow)가 지휘합니다.

De profundis a 5. Video by David Munrow – Topic

‘작곡’의 개념은 시대마다 조금씩 달랐습니다. 중세, 르네상스 시대 음악은 ‘작품’의 개념보다는 종교적인 ‘기능’에 가까웠지요. 그 중에서도 정점은 미사곡. 사실 미사곡도 우리에게나 작품이지 그 사람들에게는 그냥 기도를 위한 ‘도구’였습니다. 우리는 미사곡을 ‘키리에’(Kyrie)부터 ‘아뉴스 데이’(Agnus dei)까지 여러 ‘악장’으로 구성된 하나의 ’작품’으로 생각하는데 (성당 다니시는 분들은 잘 알겠지만) 미사곡을 그렇게 연주하거나 듣는 경우는 없습니다. 중간중간 다른 음악(기도)이 삽입되지요.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는 미사곡을 ‘교향곡’처럼 생각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조스캥 데 프레의 《미사 ‘무장한 남자’》(Missa L’homme armé super voces musicales)의 마지막 곡 〈아뉴스 데이〉는 이 미사곡의 다섯 번째 곡이지만 5악장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베르나르 파브르-가뤼(Bernard Fabre-Garrus)가 지휘하는 아 세이 보치(A Sei Voci)의 연주로 듣겠습니다.

Missa l’homme armé super voces musicales: V. Agnus Dei. Video by A Sei Voci – Topic

오늘 시작하면서 조스캥을 ‘천재’라고 했는데, 천재가 교회 중심의 중세 시대 이후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 시대 재발견된 개념이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물론 음악사학자들의 지적처럼 천재가 단순히 ‘타고난 시인’을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예컨대 조스캥은 인쇄술의 발전으로 본격적인 악보 출판 시장이 열린 시기에 활동한 작곡가입니다. 거기에 그의 재능을 알아본 출판업자 오타비아노 페트루치(Ottaviano Petrucci, 1466–1539)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활자) 인쇄술과 악보 출판 시장의 가능성을 재빠르게 포착한 페트루치가 없었다면 우리는 조스캥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가 오늘날까지 기억된다면 말이지요. 흔히 성공의 많은 부분은 운이라고 하는데 역사 공부를 하다 보면 정말 그런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Front page of IMSLP, screen shot

참고로 음악 전공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사이트 IMSLP(International Music Score Library Project)의 다른 이름 ‘페트루치 음악 도서관’(Petrucci Music Library)은 오타비아노 페트루치에서 온 것입니다. 홈페이지 첫 화면에 배경으로 사용된 그림(화려하게 장식된 글자 ‘A’) 역시 페트루치가 활자(moveable type)를 사용해 1501년 출판한 서양음악사 최초의 다성 음악 악보집 『오데카톤』(Harmonice Musices Odhecaton A)의 표지에서 왔습니다. 저작권이 만료된 악보를 제공하는 음악 도서관에서 다성 음악 출판 시장을 개척한 페르루치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는 사실은 전혀 놀랍지 않습니다.

Petrucci’s Harmonice Musices Odhecaton, 1501, Wikimedia Commons

서양음악사는 조스캥을 동시대 작곡가에게 영향을 미친 첫 번째 작곡가로 기억합니다. 당시 악보에 ‘조스캥 작곡’이라고 적기만 해도 판매가 보장되었을 정도로 그의 이름은 하나의 브랜드였습니다. 그래서 ‘가짜’ 조스캥이 판을 쳤습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가짜 조스캥 작품만 150곡이 넘습니다. 그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는 사례입니다. 그리고 조스캥의 영향은 후배 작곡가의 음악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조스캥과 팔레스트리나 중간 세대 작곡가 니콜라 공베르(Nicolas Gombert, ca. 1495–ca. 1560)의 〈주피터의 뮤즈〉(Musæ Jovis)는 조스캥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쓴 작품입니다. 다니엘 로이스(Daniel Reuss)가 지휘하는 카펠라 암스테르담(Cappella Amsterdam)이 노래합니다.

Musæ Jovis. Video by Daniel Reuss – Topic

조스캥 데 프레 서거 500주년을 맞아 그의 음악 함께 감상해 봤는데 어떤가요? 학부 수준에서 공부하는 서양음악사는 사실 방대한 역사의 파편에 불과합니다. 서양 고전 음악, 그 중에서도 특정 작곡가나 양식을 중심으로 서술된 내용일 뿐이지요. 모든 역사 서술이 그렇듯 편향되어 있기도 합니다. 〈KBS 음악실〉에서 르네상스 시대 음악 들을 일이 거의 없는데 조스캥이 중요해서라기보다는 지금 우리 귀에도 충분히 좋은 음악이라고 생각해서 준비했습니다.

조스캥 서거 500주년답게 그의 생애와 음악을 조망하는 글도 다수 발행되었습니다. 『뉴욕타임스』의 재커리 울프(Zachary Woolfe)는 탈리스 스콜라스의 리더 피터 필립스와 작곡가 니코 뮬리(Nico Muhly)의 대화를 인터뷰 형식으로 정리해 음악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음악가들의 목소리를 들려 줍니다.1 조스캥에 관한 밀도 있는 이야기를 원하신다면 『뉴요커』의 비평가 알렉스 로스(Alex Ross)의 글을 추천합니다.2 조스캥 데 프레의 또 다른 대표곡 〈비통한 슬픔〉(Mille Regretz) 감상하며 읽는 것도 좋겠네요. 스틸레 안티코(Stile Antico)가 부릅니다.

Mille regretz. Video by Stile Antico

How to cite this: 계희승, “조스캥 데 프레 서거 500주년,” 『음악학 허물기』, 2021년 8월 23일.


  1. Zachary Woolfe, “The Renaissance’s Most Influential Composer, 500 Years Later,” The New York Times, April 29, 2021.

  2. Alex Ross, “The Musical Mysteries of Josquin,” The New Yorker, June 14,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