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질병, 장애의 문화사

본 연구의 목적은 질병으로 고통받은 19세기 작곡가의 병력(病歷)과 사인(死因)을 의학사적 관점에서 재구성하고, 본질적으로 언어화를 거부하는 ‘고통’이 음악으로 ‘대상화’되는 방식을 분석하여, 병든 신체가 음악을 통해 사회·문화적으로 구축되는 과정을 밝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악보 중심, 작품 중심의 연구에서 탈피한 인간 중심의 음악문화사를 서술하는 것이 본 연구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고통받는 ‘위대한’ 작곡가와 작품은 학계와 대중의 오랜 관심사였다. 2010년까지 모차르트의 사인으로 제시된 이론만 118가지에 이르며,1 청각 장애를 ‘극복한’ 위대한 작곡가 베토벤은 서양음악사를 대표하는 ‘영웅’으로 자리잡았다. 또한 2017년 새롭게 밝혀진 쇼팽의 사인과 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고통받는 작곡가’에 대한 ‘낭만’을 잘 드러낸다.2 정신 질환을 앓았던 슈만의 연구 역시 일일이 나열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학계의 오랜 연구 대상이었고, 불과 30년 전까지만 해도 전문가, 비전문가를 막론하고 입에 담기 꺼려했던 슈베르트의 질병(매독)과 사인 역시 이제는 음악학 연구의 단골 주제이다.3

음악과 의학은 긴 역사를 함께 해 왔지만 기존 연구가 이를 다루는 방식은 필연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의학사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기존 연구는 작곡가의 질병 ‘진단’에 집중하면서 병든 신체가 음악으로 ‘약호화’되는 과정을 다루지 않거나(혹은 못 하거나) 피상적으로 서술한다.4 이 연구들은 다소 거칠게 표현하면 작곡가를 ‘인간’보다 ‘환자’로, ‘환자’보다 ‘질병’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이 갖는 문제는 “고통받는 환자와 인간에게서 멀어진 의사”의 관계를 지적하고 “고통의 본질과 의학의 목적”을 재고한 에릭 카셀(Eric J. Cassell)의 저서에서 잘 드 러난다.5 이를 보완하려는 목적으로 발전한 의료인문학(Medical Humanities)은 질병의 의학적·생물학적 특징과는 별개로 특정 질병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표상이 시대와 문화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밝혀 잃어버린 인간을 되찾으려 노력하고 있다.6

반면 음악학 연구에서는 질병의 의학사적 맥락화 없이 질병과 음악의 관계가 극히 ‘낭만적’으로 서술된다. 예컨대 베토벤의 청각 장애와 음악을 이해하는 데 자주 사용되는 ‘운명–투쟁–승리’의 서사 구조는 ‘아름다움’보다 ‘숭고함’을 추구하는 19세기 사조에 기반을 두고 있다.7 하지만 베토벤의 청각 장애와 음악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한 음악학자 로빈 월리스(Robin Wallace)의 연구는 고통받는 위대한 작곡가에 대한 낭만적 서사로 인해 ‘인간 베토벤’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8 본 연구는 “질병을 은유적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9 음악을 만드는 주체와 그 주체의 아픈 몸을 중심에 둔다는 점에서 선행 연구들과 차별된다.

본 연구의 시대적 범위인 19세기는 의학사적으로 근대 의학이 발전한 매우 중요한 시기다. 신체의 균형이 깨져서 질병을 앓는다는, 즉 질병의 보편성이 없었던 18세기까지의 내과(內科)학은 19세기로 접어들면서 구체적인 병인(예: 세균)을 밝혀내는 데 집중한다.10 따라서 의학사적 전환기에 활동한 작곡가의 질병과 음악은 질병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어떤 방식으로 병든 몸을 재구성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연구 대상이다.

또한 음악사적으로 19세기는 (근대적 의미의) ‘천재’가 탄생한 시기다. 소위 ‘위대한 작곡가’라는 개념이 정착되면서 이들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닌, 혹은 인간을 초월한 ‘초인’(超人)이 되었다. 하지만 이들도 결국 늙고 병들고 고통받는 인간이었다. 이에 본 연구는 질병과 장애, 노화라는 틀을 통해 ‘인간’ 작곡가와 음악에 대한 문화사적 접근을 제시한다.

앞서 언급한 기존 연구의 한계가 훌륭한 연구의 부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19세기적 몸과 음악의 관계를 고찰한 음악학자 데이비스(J. Q. Davies)의 연구는 성악가의 목소리나 피아니스트의 손이 음악을 통해 재구성되는 과정을 음악사·의학사적 관점에서 서술한다.11 데이비스의 연구를 거칠게 요약하면 음악은 신체를 재구성하는 도구라는 것이다. 예컨대 19세기 이탈리아의 성악가 조반니 바티스타 루비니(Giovanni Battista Rubini, 1794–1854)의 독특한 목소리는 음악이 요구하는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망가진 몸(쇄골)의 소리라는 것이다.12 그래서 데이비스는 성악가의 목소리나 연주자의 손이 음악을 위한 도구, 즉 악기라는 기존의 관념을 뒤집고 그 반대를 주장한다. 다시 말해 음악이 손과 목소리를 양성하는 도구라는 것이다.13 더불어 데이비스의 연구는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탈베르크(Sigismond Thalberg, 1812–1871)가 제시한 이상적인 연주 자세(posture)가 당시 정형외과학의 발전과 함께 형성되었다는 사실도 보여 준다.14

데이비스의 연구가 연주자 (겸 작곡가) 중심의 연구라면, 린다·마이클 허천 (Linda & Michael Hutcheon)의 연구는 의학사, 정확히는 질병사를 통해 오페라사를 재서술하는 작품 중심의 연구다.15 예컨대 1882년 로베르트 코흐(Robert Koch, 1843–1910)의 결핵균(Mycobacterium tuberculosis) 발견 이전과 이후의 오페라가 결핵에 걸린 여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을 어떻게 다르게 묘사하고 있는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16 하지만 허천 부부의 연구는 음악학자가 아닌 영문학자(린다)와 임상의학자(마이클, 호흡기 전문의)의 협업이 갖는 어쩔 수 없는 한계도 드러낸다. 음악에 관한 묘사는 극히 제한적이며 대부분의 경우 분석 대상인 오페라에 대한 기존 음악학 연구를 참고·인용하는 것으로 약점을 보완한다.

본 연구는 기존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고 생물학적으로 규정될 뿐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구축되는 몸의 비정상성(질병, 장애, 노화)이 음악에서 어떻게 재현되는지 탐구한다. 예컨대 일레인 스캐리(Elaine Scarry)의 지적처럼 본질적으로 언어적 “대상화”(objectification)를 거부하는 ‘고통 ’은 어떻게 음악적으로 ‘상상’ 또는 ‘재현 ’되는가(될 수 있는가)?17 어빙 고프만(Erving Goffman)이 읽어 낸 사회적 “낙인”(stigma)은 어떤 방식으로 질병에 부여되며,18 이러한 질병(예컨대 성병,19 정신질환)으로 고통받은 작곡가의 주체성과 정체성은 어떻게 음악으로 약호화되는가? 본 연구는 음악사를 재서술함에 있어 질병과 고통이 어떻게 음악 작품 속에서 표현되는지 규명하고, 그 표현 방식이 질병과 고통의 시대성과 장소성을 드러내는지 묻는다.20 더 나아가 작곡가의 (비정상적) 몸에 대한 담론은 어떻게 구축되며, 그 담론이 특정 음악의 수용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밝히고자 한다. 본 연구의 필요성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인간 중심의 음악 연구: 최근 각광 받고 있는 ‘음악과 뇌과학’ 연구는 생물학적으로 정의되는 인간의 신체를 탐구하는 신경과학적 접근이다. 하지만 카셀은 “고통을 겪는 주체는 인간이지 물질적 육체가 아니”기 때문에 “고통이란 것은 어쩔 수 없이 인간(person)의 문제”라고 지적한다.21 역설적이지만 살아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인 ‘고통받는 몸’에 대한 담론을 통해 뇌로 환원되어 사라져가는 몸의 주체를 재고할 수 있다.22 본 연구는 사회적으로 정의되는 인간의 (병든) 신체와 그 주체가 만들어 낸 음악의 관계를 물음으로써 음악 치료, 심리학, 인지신경과학적 접근과의 경쟁이 아닌 보완을 제시한다.

2. ‘초인’(超人)이 아닌 ‘인간’ 작곡가에 대한 이해: 서양음악사의 ‘위대한’ 작곡가들, 예컨대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은 오랫동안 천재, 영웅 중심의 서사로 이해되었지만 이들도 결국 늙고 병들고 고통받는 인간이었다. 스메타나(Bedřich Smetana, 1824–1884)는 베토벤 못지않게 청각 장애로 고통받은 19세기 작곡가임에도 불구하고 스메타나에게 ‘영웅’ 서사가 적용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들의 초인적 면모가 아닌 병든 인간으로서의 삶과 그 고통스런 삶이 낳은 음악에 집중함으로써 음악의 인문학적 의의를 재고할 수 있다.

3. 교육적 의미: 의료인문학은 오랫동안 문학,23 미술,24 영화25를 통해 질병과 장애, 노화에 의한 고통의 문화·사회적 의미를 탐구해 왔다. 하지만 주요 의료인문학 교재의 목차를 살펴보면 음악에 관한 논의는 유독 ‘치료’에 국한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26 의료인문학의 목적이 ‘예술의 의학적 효과’를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매개로 한 인문학적 통찰을 얻는 데 있다면 질병으로 고통받은 작곡가와 작품에 관한 연구는 의학 교육에 기여할 수 있다.

4. 시각 중심 서사에서 탈피: 기존의 시각 중심 서사에서 벗어나 청각 중심의 근대사 서술을 제안한 조나단 스턴(Jonathan Sterne)의 연구는 영상화 기술을 통해 살아있는 사람의 몸 안을 들여다보기 이전부터 ‘질병 듣기’에 사용된 ‘청진 기’(stethoscopes)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의학의 발전은 ‘청취의 역사’와 함께했다고 주장한다.27 하지만 의료 기기의 발전으로 인해 환자의 말보다는 질병이 하는 말(분석 기록)에 더욱 집중하게 된 것 또한 사실이다.28 본 연구는 병든 작곡가의 말(글)과 또 다른 형태의 ‘말’(음악)에 주목해 청각 중심의 음악문화사 서술에 도전한다.

5. 융복합, 학제간 연구를 위한 모델 제시: 본 연구는 연구자가 단독으로 진행하는 연구지만 ‘음악과 의학’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주제와 접근 방식은 본질적으로 융복합, 학제간 연구의 성격을 갖고 있다. 음악학자(연구자 본인)와 의학사가(임상의학자 포함)의 효율적인 협업을 시도해 새로운 연구 모델을 제시한다.

How to cite this: 계희승, “음악과 질병, 장애의 문화사,” 『음악학 허물기』, 2021년 8월 28일.


  1. Dawson 2010.

  2. Witt et al. 2018. 기존 가장 유력한 사인으로 알려진 낭포성 섬유증(cystic fibrosis)을 뒤집고 ‘결핵’이 새롭게 제시되었다. 쇼팽의 사인을 다룬 대표적인 의학사 연구는 다음 문헌들을 참고하라. O’Shea 1987, 140–54; Majka, Gozdzik, and Witt 2003; Persson, Wikman, and Strandvik 2005.

  3. Solomon 1989; McClary 1994.

  4. 예컨대 Altenmüller, Finger, and Boller 2015.

  5. Cassell 2004. 인용된 문구는 초판(1991)의 우리말 번역서(2002)의 제목이다.

  6. Bates, Bleakley, and Goodman 2014; Bleakley 2015; Charon 2006; Charon and Montello 2002; Cole, Carson, and Carlin 2015. ‘의료인문학’은 국내에서 ‘인문의학’ 혹은 ‘인문사회의학’(Medical Humanities & Social Science)이라는 이름과 혼용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편의상 ‘의료인문학’으로 통일한다.

  7. Taruskin 2005, 641–90.

  8. Wallace 2018, 1–35, 219.

  9. Sontag 1978, 3. 우리말 번역서(2002, 15)에서 인용.

  10. 19세기에 형성된 질병의 ‘세균설’(germ theory)은 의학사의 표준 담론이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병리학의 간략한 역사는 Duffin 2010, 65–97, 특히 세균설에 관한 담론은 pp. 81–88을 참조하라.

  11. Davies 2014.

  12. Ibid., 1–12.

  13. Ibid.

  14. Ibid., 93–122.

  15. Hutcheon and Hutcheon 1996.

  16. Ibid., 29–59. 결핵균 발견 이전에 초연된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 1853)의 여주인공 비올레타와 이후 작품인 푸치니의 《라 보엠》(La bohème, 1895)의 미미를 말한다.

  17. Scarry 1985, 5; Dorschel 2011.

  18. Goffman 1963; Corrigan 2014.

  19. Franzen 2008; Rempelakos et al. 2014.

  20. 고통(통증)의 생체해부학적 정의를 초월하는 사회·문화적 정의에 대한 주요 담론은 다음 문헌을 참조하라. Bending 2000; Boddice 2014; Bourke 2014a; 2014b; Morris 1991; Rey 1995; Thernstrom 2010.

  21. Cassell 2004, v. 우리말 번역서(2002, 24)에서 인용.

  22. Barthes (1975) 1977, 60; Davies 2014, 58.

  23. 예컨대 Hawkins and McEntyre 2000.

  24. 예컨대 Mackowiak 2019.

  25. 예컨대 Cole, Carson, and Carlin 2015, 138–52.

  26. Paul Robertson의 “Music, Therapy and Technology: An Opinion Piece” (Bates, Bleakley, and Goodman 2014, 227–45), Helen Odell-Miller의 “The Development of Clinical Music Therapy in Adult Mental Health Practice: Music, Health and Therapy” (Bates, Bleakley, and Goodman 2014, 264–80)가 좋은 예이다. MacDonald, Kreutz, and Mitchell 2012.

  27. Sterne 2003, 87–136.

  28. Foucault (1963) 1973, 3–21; Biro 2010; Fishman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