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라흐너의 교향곡

KBS 음악실 ‘계희승의 음악 허물기’ 2021년 8월 30일 168번째 방송

지난주 조스캥 데 프레(Josquin des Prez, ca. 1450–1521)의 음악 듣고 좋았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습니다. 바로크 이전 음악은 전문가, 비전문가를 떠나 진입 장벽이 있어 조금 걱정했는데 웬걸요. 역시 르네상스 시대 ‘스타’ 작곡가의 명성은 어디 가지 않습니다. 심지어 더 자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까지. 중세 시대 음악은 정말 쉽지 않지만 르네상스 음악이라면 조스캥 말고도 많으니 언제 기회가 되면 또 들고 오겠습니다.

오늘은 19세기 독일의 작곡가 겸 지휘자 프란츠 라흐너(Franz Paul Lachner, 1803–1890)의 교향곡 준비했습니다. 라흐너란 이름이 왠지 낯설지 않다면 〈응접실의 모차르트〉 함께하신 분들입니다. 프란츠 라흐너는 첫 날 연주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K. 488을 피아노와 현악오중주로 편곡한 작곡가 겸 지휘자 이그나츠 라흐너(Ignaz Lachner, 1807–1895)의 친형입니다. 그 아래 동생 빈센츠(Vinzenz Lachner, 1811–1893)도 작곡가 겸 지휘자였으니 그야말로 음악가 집안. 맏형 프란츠는 그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음악가였습니다.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전통을 잇는 독일의 ‘소리.’ 함께 감상하시죠.

Photograph of Franz Lachner by Fritz Luckhardt, Wikimedia Commons

첫 곡은 1837년 완성한 〈교향곡 6번〉, D장조, Op. 56의 2악장 Andante. 지금은 완전히 잊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프란츠 라흐너는 작곡가와 지휘자로서 당대 꽤 잘나갔던 음악가였습니다. 8편의 교향곡을 포함해 200곡 가까이 작곡했습니다. 모두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영향이 뚜렷한 작품들. 하지만 비평가들의 평가는 크게 갈렸습니다. 라흐너의 〈교향곡 5번〉, C단조, Op. 52를 혹평했던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 1810–1856)이 〈교향곡 6번〉을 듣고 프란츠를 재평가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슈만의 표현을 빌리자면 〈교향곡 6번〉은 “슈베르트에 근접한 수준”의 “성숙하고 잘 구성된 작품.”1

교향곡에 있어서 “슈베르트에 근접한 수준”이라는 말이 욕인지 칭찬이지는 잘 모르겠지만 〈교향곡 5번〉에 대한 평가와 비교하면 슈만이 좋은 의미로 한 말이라는 사실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교향곡 5번〉에 대한 슈만의 비평이 그만큼 가혹하다는 뜻이겠지요. 슈만을 예로 들었지만 라흐너의 교향곡은 1830년대 비평가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논의된 작품 가운데 하나라고 하니 저는 그 사실만으로도 라흐너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논쟁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을 테니까요. 슈만이 극찬한 “질서와 명료함”이 특히 돋보이는 〈교향곡 6번〉 2악장 Andante.2 직접 들어 보시죠. 저는 정말 좋더라고요. 게르노트 슈말푸스(Gernot Schmalfuss)가 지휘하는 에버그린 교향악단(Evergreen Symphony Orchestra)의 연주입니다.

Symphony No. 6 in D Major, Op. 56: II. Andante. Video by Kellie Gutman
Title page of the first edition, Lachner’s Symphony No. 5, IMSLP

〈교향곡 6번〉을 극찬한 슈만이 〈교향곡 5번〉은 혹평했다고 하니 이것도 들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슈만의 평가가 궁금하기도 하지만 〈교향곡 5번〉은 프란츠 라흐너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동시에 그의 커리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작품입니다. 긴 얘기 짧게 하면 1835년 비엔나의 유명 출판업자 토비아스 하슬링거(Tobias Haslinger, 1787–1842)가 주관한 교향곡 작품상에서 라흐너의 〈교향곡 5번〉이 1위를 차지합니다. 이 작품으로 유명세를 탄 프란츠는 단숨에 뮌헨의 궁정 카펠마이스터 자리에 올랐습니다.

Drawing of Tobias Haslinger by Josef Kriehuber, 1842, Wikimedia Commons

교향곡 곳곳에서 베토벤의 흔적이 발견됩니다. ‘열정’(Passionata)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것도 그렇지만, 조성도 베토벤의 〈교향곡 5번〉, Op. 67과 같은 C단조. 물론 이 둘은 작품성과는 별개로 전혀 다른 곡이지만 자신의 롤 모델인 베토벤에 대한 ‘열정’을 감추지 않은 것만은 분명합니다. 슈만의 평가는 혹여나 감상에 영향을 미칠까 싶어 저만 알고 있겠습니다. 클래식 음악에서도 이른바 ‘권위에 호소하는 논증’(argumentum ad verecundiam)이 종종 건전한 감상을 방해하거든요. 프란츠 라흐너의 〈교향곡 5번〉, ‘열정,’ C단조, Op. 52 중 2악장 Andante con moto. 폴 로빈슨(Paul Robinson)이 지휘하는 슬로바키아 국립 코시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Slovak State Philharmonic Orchestra, Košice)의 연주로 감상하겠습니다.

Symphony No. 5 in C Minor, Op. 52, “Preis-Symphonie”: II. Andante con moto. Video by Slovak Philharmonic – Topic

어떻게 들으셨나요? 확실히 베토벤보다는 슈베르트에 가깝습니다. 대중과 비평가의 평가는 음악가에게는 숙명이 아닐까 싶어요. 자신의 교향곡이 비평가들 사이에서 늘 논쟁의 대상이 되었으니 프란츠 라흐너도 스트레스 꽤 받았을 겁니다. 실제로 이를 의식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프란츠는 1837년 〈교향곡 7번〉, Op. 58을 끝으로 사실상 이 장르와 작별합니다.3 대신 방향을 전환해 약 20년간 8편의 관현악 모음곡을 작곡합니다. 베토벤 이후 더 이상 어떻게 교향곡을 작곡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슈베르트의 하소연처럼 19세기 들어 교향곡에 더해진 무게감과 비교하면 모음곡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이니까요.4 그렇다고 마냥 가벼운 작품은 아닙니다. 1874년 작품 〈무도회 모음곡〉(Ball-Suite), D장조, Op. 170의 4번곡 Intermezzo 들어 볼까요? 라흐너의 교향곡은 19세기 작품답게 악장 하나하나가 길어 오늘 선곡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는데 짤막한 춤곡으로 구성된 〈무도회 모음곡〉 덕분에 살았습니다. 알프레드 발터(Alfred Walter)가 지휘하는 슬로바키아 국립 코시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입니다.

Ball-Suite in D Major, Op. 170: IV. Intermezzo. Video by Slovak Philharmonic – Topic

프란츠 라흐너 탄생 100주년이 되는 1903년, 영국의 저명한 학술지 『뮤지컬 타임스』(The Musical Times) 독자 투고란(Correspondence)에 게재된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앨저넌 애쉬튼(Algernon Ashton, 1859–1937) 영국 왕립음악대학(Royal College of Music) 피아노과 교수의 글을 보면 라흐너가 얼마나 빠르게 잊힌 작곡가인지 알 수 있습니다.5 애쉬튼은 라흐너가 바흐, 헨델, 모차르트, 베토벤의 전통을 잇는 작곡가라고 주장하며 오늘날(1903년 기준) 그의 작품이 더 이상 연주되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토로합니다.6 특히 그의 관현악 모음곡에 찬사를 보내는데 애쉬튼이 구체적으로 언급한 〈관현악 모음곡 1번〉, D단조, Op. 113 중 4악장 ‘서주와 푸가’(Introduzione und Fuge) 준비했습니다. 시간 관계상 방송에는 넣지 못 했는데 여기까지 와서 읽어 주시는 분들을 위한 작은 선물입니다. 스티븐 건젠하우저(Stephen Gunzenhauser)가 지휘하는 폴란드 국립 카토비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Polish State Philharmonic Orchestra, Katowice)의 연주로 감상하겠습니다.

Suite No. 1 in D Minor, Op. 113: IV. Introduzione und Fuge. Video by Polish Radio Symphony Orchestra, Katowice – Topic

프란츠 라흐너는 활동 당시 기본적으로 관현악 작곡가였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출판된 작품만 200곡 가까이 됩니다. 거의 모든 장르를 다루었어요. 특히 그의 오르간 작품과 합창 음악은 걸작입니다. 지금은 그나마 연주가 용이한 실내악이 기억되고 있지요. 그의 주옥같은 실내악은 다음 주 만날 수 있으니 그때까지 프란츠 라흐너의 교향곡 감상해 보시는 것도 좋겠네요. 정말 들을 만합니다.

How to cite this: 계희승, “프란츠 라흐너의 교향곡,” 『음악학 허물기』, 2021년 8월 30일.


  1. Bert Hagels, Liner notes for Franz Lachner: Symphony no. 6, Concertino for bassoon, Chia-Hua Hsu, Evergreen Symphony Orchestra, Gernot Schmalfuss, trans. J. Bradford Robinson (CPO 555 210–2, 2021).

  2. Ibid.

  3. 1851년 작곡한 〈교향곡 8번〉, Op. 100은 논외로 하겠습니다.

  4. 슈베르트의 정확한 워딩은 “I hope to be able to make something out of myself, but who can do anything after Beethoven?” Otto Erich Deutsch, ed., Schubert: Memoirs by His Friends, trans. Rosamond Ley and John Nowell (London: A & C Black, 1958), 128.

  5. Algernon Ashton, “The Centenary of Franz Lachner,” The Musical Times and Singing Class Circular 44, no. 722 (1903): 246. 1844년 창간, 1904년부터는 학술지명을 The Musical Times로 바꾸어 지금까지 출판되고 있습니다.

  6. Ib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