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

음악학자 더글라스 셰이들(Douglas W. Shadle)의 신간 『안토닌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을 읽고 있다.1 영국 옥스퍼드대학출판사에서 2017년부터 발간하고 있는 ‘옥스퍼드 키노트’(Oxford Keynotes) 시리즈의 13번째 책. 느닷없이 드보르자크와 ‘신세계’ 교향곡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아니고. 음악학 허물기 독자(혹은 뉴스레터 구독자)라면 알겠지만 유튜브에서 ‘한 편의 글이 완성되기까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주제는 비디오 게임 〈바이오쇼크 인피니트〉(BioShock Infinite, 2013)의 음악과 노스탤지어. 긴 얘기 짧게 하면 드보르자크 ‘신세계’ 교향곡 2악장을 연상케 하는 오리지널 스코어(아래 영상 참조)가 단순한 배경 음악이 아니라 게임의 주제를 드러내는 내러티브적 기능을 한다고 우기는 중이다. 물론 밑도 끝도 없이 우기는 건 아니고. 음악학자 에녹 자코버스(Enoch Jacobus)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데 그는 음악 분석에 근거해 이 곡이 미국 작곡가 찰스 아이브스(Charles Ives,1874–1954)의 가곡 〈우리의 선조들이 사랑했던 것들〉(The Things Our Fathers Loved, 1917)과 흡사하다고 주장한다.2 여기서 길게 할 이야기는 아니므로 자세한 내용은 유튜브 영상을 참조하거나 100일 프로젝트가 끝나면 공개될 논문을 읽어 보시라.

“Bioshock Infinite” [1999 Mode] walkthrough [60FPS], Part 2 – Welcome Center + All Collectibles. Video by Zevik

아무튼 셰이들의 책을 집어 든 이유는 내가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 서양음악사 교과서나 인터넷 조금 뒤지면 나오는 그런 배경 지식 수준의 내용 말고, 이 작품에 대한 학술적인 논의가 궁금한 것인데 혹시 논문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있지는 않을까 싶어 읽기 시작했다. 저자 또한 이 작품이 음악학적 관점에서 제대로 논의된 적이 없다며 집필 동기를 밝힌다. 셰이들에 따르면 오늘날의 콘서트홀은 시간과 역사와는 구분된 공간으로, 이곳에서 일어나는 보편적인 ‘감상’은 음악을 정치학적 문제로부터 분리하기 위해 디자인된 것이다(xvii). 하지만 셰이들은 지난 약 2세기에 걸쳐 구체화된 미국 클래식 음악계의 인종차별 문제를 상징하는 드보르자크의 교향곡을 역사적 맥락에서 분리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xvii–xviii). 그래서 정치적으로 보이지 않는 음악적 문제들이 어떻게 조용히 하지만 엄격히 미국을 피부색에 따라 나누었는지 추적한다(xviii). (참고로 저자 더글라스 셰이들은 백인이다.) 일독을 권하지만 여의치 않다면 책을 소개하는 저자의 『뉴욕 타임스』 기고문을 읽어 보길 권한다.3

어쨌거나 내가 알고 싶은 건 드보르자크 교향곡의 ‘신세계’와 위에서 언급한 게임 스코어가 연주되는 ‘새 에덴 광장’(New Eden Square) 사이의 내러티브적 관계이다. 더 나아가 게임 곳곳에 의도적으로 설치된 인종차별주의적 요소와 주인공(=플레이어) 부커 드윗이 인디언 학살이라는 과거의 죄를 안고 살아가는 ‘운디드 니’(Wounded Knee) 참전 군인이라는 점, 그리고 이 게임이 기본적으로 부커 드윗의 죄책감과 트라우마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세계’ 2악장과 닮은 메인 테마를 통해 어떻게 표현되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장 읽어야 할 부분은 미국 클래식 음악의 미래가 흑인의 통속 음악에 기초해야 한다는 드보르자크의 발언이 불붙인 인종차별적 논쟁을 다루는 6장이다. 셰이들은 이를 통해 미국 클래식 음악계의 근간을 이루는 백인중심주의를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xviii). 또한 드보르자크의 존재, 특히 ‘신세계’ 교향곡 초연이 미국 내 흑인 음악가들에게 백인의 문화적 지배에 저항하는 변곡점을 마련해 주었다고 주장하는 7장도 읽어야 한다(xviii). 하지만 짧은 서문 후 1장을 조금 읽다 보니 어느새 2장 끝까지 읽고 말았는데 무지 재밌기도 하고 기왕 읽은 것, 마저 다 읽을 생각이다.

드보르자크가 1892년 미국 국립음악원장(National Conservatory)으로 초빙되어 미국에 갔을 당시만 해도 이렇다 할 음악 교육 기관이 없어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유럽에 유학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지만, 미국에 우후죽순 생겨난 사립 음악 학교의 교수들 상당수가 여성이었고 남성보다 높은 급여를 받았으며 일반 대학과는 달리 흑인 학생의 입학이 허용되었다는 사실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3).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 여전히 어려운 시기였지만 그게 역사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 예컨대 19세기 말 뉴욕 브루클린을 중심으로 활동한 부유한 흑인 음악가들이 백인만 입단 가능했던 뉴욕필하모닉이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대응하기 위해 교육 기관을 설립했는데, 1884년부터 사용한 학교 이름이 ‘멘델스존 음악 학교’(Mendelssohn School of Music)라는 뜬금없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5). (대체 왜 하필 ‘멘델스존’인가?)

드보르자크가 국립음악원장직을 수락하고 미국으로 건너간배경에는 자넷 서버(Jeannette Thurber, 1850–1946)가 있었다는 사실 또한 보편적인 지식이 되었지만 그 뒤에 얼마나 원대한 꿈과 치밀한 계획,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알려지지 않았다기보다는 관심이 없었다는 게 정확하다.) 1860년대 파리음악원에서 공부한 자넷 서버는 전 세계 음악가들이 미국에 유학오게 만들겠다는 꿈을 가진 여성이었는데, 이 꿈이 실현되는 데 100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서버는 당시 가장 잘 나가던 지휘자 테오도르 토마스(Theodore Thomas, 1835–1905)를 끌어들여 오페라 연주(American Opera Company)와 교육(American Opera School)을 위한 기관을 차례로 세우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미국 같은 번영하고 재능 있는 나라에서 제대로 된 음악 교육 기관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정치가들을 설득한다. 1885년 기사에 따르면 자넷 서버의 이러한 계획에 예술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까지 동참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4

길고 복잡한 과정 끝에 서버는 국립음악원 설립을 실현하고 드보르자크에게 거부할 수 없는 조건을 제시한다. 국립음악원장 후보에 시벨리우스도 있었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실인데(10), 1878–1880년 미국에서 동유럽 ‘사운드’가 유행했다는 점이 특히 흥미롭다(21). 셰이들에 따르면 당시 미국 관현악단은 무슨 경쟁이라도 하듯 노르웨이, 헝가리, 슬로바키아 광시곡이나 무곡 등 동유럽을 테마로 하는 작품들을 선보였다(Table 2.1, 22–23). 당시 비평가들은 이러한 작품들이 독일의 교향곡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고 생각한 모양인데(21), 19세기 베토벤 이후 너무나 견고한 위치를 차지한 독일 음악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동유럽과 전략적 동맹(?)을 맺은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무튼 당시 국립음악원장에 왜 하필(?) 서양음악사 시간에 겨우 한 주 다루고 넘어가는 시벨리우스와 드보르자크가 최종 후보에 올랐는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드보르자크의 입지가 아주 견고한 것은 아니었는데 이 또한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당시 교향악단의 주요 레퍼토리에 안톤 루빈스타인(Anton Rubinstein, 1829–1894)의 작품이 이미 자리 잡고 있었다는데 루빈스타인 교향곡 흥얼거릴 수 있는 사람 손!? (나는 못 한다.) 심지어 요아힘 라프(Joachim Raff, 1822–1882)에게도 밀렸다니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상 이야기다. 라프는 〈음악 허물기〉 시간에도 3주에 걸쳐 소개한 적이 있을 정도로 애정하는 작곡가지만 오늘날 그의 음악(특히 교향곡)은 거의 기억되지 않는다. 드보르자크가 이 작곡가들 때문에 미국에서 자리를 잡지 못 했다니 믿기 어렵지만, 서버가 라프를 선택했다면 1882년 부임과 동시에 새 원장을 찾아야 했을 것이고 루빈스타인도 그의 출신을 생각하면 전략적으로 좋은 선택은 아니었을 테니 드보르자크는 결국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셰이들은 당시 미국에서 연주된 관현악 작품을 나열하며 드보르자크가 얼마나 치열한 경쟁 끝에 살아남은 것인지 보여주는데(Table 2.2, 25–27), 그의 교향곡이 미국에서 엇갈린 평가를 받은 것에 비해 영국에서는 호평 일색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드보르자크가 서버의 제안을 받아들인 건 기적에 가깝다(29). 사실 시벨리우스나 드보르자크보다 훨씬 그럴듯한 후보들도 있었지만 서버는 음악 교육에 관한 자신의 비전을 공유한 드보르자크에게 마음이 간 듯하다(30).

하지만 드보르자크를 선임하고 나서도 부임 전까지(심지어 후에도) 지속된 엇갈린 평가 때문에 서버는 초조할 수밖에 없었는데, 오페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 했던 서버는 드보르자크에게 ‘미국’ 오페라 작곡을 제안한다. 드보르자크도 좋은 대본이 있다는 전제 하에 제안을 받아들이지만 그의 마음에 드는 대본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여러 루트를 통해 흑인 영가(spirituals)를 접하게 되고(34), 1893년 2월, 교향곡 9번을 마무리하던 드보르자크가 미국 남부의 흑인 음악을 공부하고 있으며 슬로바키아 전통 선율과의 관계를 살피고 있다는 기사가 게재된다5. 그리고 같은 해 5월, “이 나라의 미래의 음악은 흑인 영가라고 불리는 것에 기초해야 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6 그해 12월 초연이 예정된 교향곡 9번이 드보르자크의 이 발언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쏟아졌다(35). 초연 하루 전 발행된 인터뷰에서 드보르자크는 인디언 선율을 사용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는데,7 본질적으로 백인의 장르인 교향곡에 비유럽의 재료를 사용했다는 사실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35).

정말 궁금한 내용은 3장부터 나올 듯한데 다음 포스팅(10월 첫째 주) 전에는 완독하지 않을까 싶다. “새로운 귀로 교향곡을 듣는 것은 아직 들리지 않은 이야기의 수많은 측면을 알게 해 준다”(xix)는 셰이들의 말처럼 이 이야기를 “듣는 게 어쩌면 우리를 원하는 것 이상으로 불편하게 만들지도”(xix) 모르지만 그 불편한 이야기 또한 음악과 역사의 일부라면 모른 척할 수는 없다. “이 책을 쓰고 나면 나는 이 음악을 다시는 같은 방식으로 듣지 못 하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xix)는 셰이들의 고백에서 음악학자로서의 마음가짐이 느껴진다.

How to cite this: 계희승,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 『음악학 허물기』, 2021년 9월 5일.


  1. Douglas W. Shadle, Antonín Dvořák’s New World Symphony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21).

  2. Enoch Jacobus, “Lighter Than Air: A Return to Columbia,” Paper presented at the North American Conference on Video Game Music, Texas Christian University, January 17–18, 2015.

  3. Douglas W. Shadle, “Let’s Make the Future That the ‘New World’ Symphony Predicted,” The New York Times, March 17, 2021.

  4. ”A High Priestess of Opera,” New York Tribune, November 1, 1885; quoted in Shadle, New World Symphony, 7.

  5. “Dr. Dvořák,” American Art Journal, February 4, 1893, 327; quoted in Shadle, New World Symphony, 34.

  6. ”Real Value of Negro Melodies,” New York Herald, May 21, 1893; quoted in Shadle, New World Symphony, 35.

  7. ”Dvořák on His New Work,” New York Herald, December 15, 1893; quoted in Shadle, New World Symphony,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