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음악실 ‘계희승의 음악 허물기’ 2021년 9월 6일 169번째 방송
독일의 작곡가 겸 지휘자 프란츠 라흐너(Franz Paul Lachner, 1803–1890)의 음악 만나 보는 두 번째 시간. 지난주에는 1830년대 슈만을 비롯한 비평가들의 호평과 혹평을 동시에 받은 교향곡 들어 봤는데요. 오늘은 라흐너의 내밀한 실내악 준비했습니다. 교향곡의 꿈을 안고 쓴 초기작부터 교향곡을 더 이상 쓰지 않았던 성숙한 시기의 작품까지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활동 당시 관현악 작품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실내악이야말로 그의 진가를 드러내는 숨은 명곡. 작곡과 음악 이론을 전공한 음악학자의 귀에는 교향곡 이상의 작품으로 들립니다.
첫 곡은 프란츠 라흐너의 〈7중주〉, E$\flat$장조, 1악장 Andante maestoso. 플루트, 클라리넷, 호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 편성으로, 이 정도만 갖추어도 웬만한 소규모 관현악단에 버금가는 소리가 납니다. 1824년에 완성한 20대 초반 작품이지만 엉성하지 않습니다. 인생의 동반자였던 6살 연상의 슈베르트와 친분을 쌓던 시기라는 점도 중요합니다. 비슷한 편성의 슈베르트 〈8중주〉, F장조, D. 803과 같은 해 작곡한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클라리넷, 바순, 호른, 2대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 편성뿐 아니라 음악에서도 슈베르트의 흔적이 발견됩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 시기 슈베르트의 음악은 아는 사람만 아는 음악이었으니 두 사람의 친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슈베르트 〈8중주〉 먼저 들어 볼까요? 기돈 크레머(Gidon Kremer)와 친구들이 함께합니다.
라흐너의 〈7중주〉는 생전 출판된 적이 없고 남아 있는 악보의 1악장은 누락된 곳이 많아 감상할 연주는 독일의 음악학자 프란츠 바이엘(Franz Beyer, 1922–2018)이 70마디 가까이 편집해 완성한 악보를 따른 것입니다. 작품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라흐너의 ‘원본’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런 식의 편집은 19세기에도 흔한 일이었고 오늘날 연주되는 대가들의 작품 역시 작곡가가 쓰지 않은 음악을 포함하고 있으니 라흐너의 곡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습니다. 갓 스물을 넘긴 작곡가의 작품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매력적인 음악. 콘소르티움 클라시쿰(Consortium Classicum)의 연주로 감상해 보시지요.
7중주쯤 되면 정형화된 편성이 없습니다. 다양한 조합이 가능한데 라흐너의 〈7중주〉는 플루트와 클라리넷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이 두 대의 목관 악기가 따로 또 함께 현악 파트와 나누는 대화를 듣는 재미가 있지요. 〈응접실의 모차르트〉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목관 악기가 독주용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게 불과 18세기 말 이야기. 라흐너가 〈7중주〉를 작곡한 19세기 초에도 다양한 실험들이 있었을 겁니다.

초기작 들으면서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라흐너가 성숙한 시기에 쓴 〈9중주〉, F장조, 3악장 Adagio 감상하겠습니다. 앞서 만난 〈7중주〉에 오보에와 바순을 더한 구성입니다. 그러니까 사실상 목관 5중주 +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 편성이 되겠네요. 〈9중주〉는 작품 번호 없이 1875년 출판되었지만 〈7중주〉와 비슷한 시기인 1820년대, 혹은 1830년대 작품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음악학자들이나 걱정할 내용이지만 바그너를 연상케 하는 도입부의 화성 진행이나 현악 파트의 약음기(con sord.)가 목관 파트와 함께 만들어 내는 독특한 음색은 〈7중주〉와 같은 시기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직접 들어 보시죠. 콘소르티움 클라시쿰이 연주합니다.
앞서 감상한 〈7중주〉보다 규모는 더 크지만 훨씬 내밀한 소리가 나는 〈9중주〉입니다. 이렇게 관악 앙상블은 현악 앙상블과는 달리 악기 하나 차이로 소리가 크게 달라집니다. 이렇게 저렇게 조합해 보며 원하는 소리를 찾는 과정이 재밌지 않았을까요? 프란츠 라흐너의 〈8중주〉, B$\flat$장조, Op. 156도 이러한 시험의 결과였을 겁니다. 기본적으로 목관 5중주 편성이지만 클라리넷, 호른, 바순을 두 대씩 사용한 목관 8중주. 플루트 없이 오보에, 클라리넷, 호른, 바순을 두 대씩 사용한 베토벤 〈8중주〉(1793/1830), Op. 103과는 또 다른 소리를 냅니다. 잠깐 들어 볼까요?
라흐너의 〈8중주〉는 오늘 감상하는 작품 가운데 작곡가 생전 작품 번호를 달고 출판된 유일한 곡입니다. 그렇다고 무슨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습니다. 작품이 출판되지 않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으니까요. 반대로 출판된 작품이라고 해서 작곡가가 특별히 애정을 가졌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다만 1850년 작품이라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겠네요. 교향곡을 더 이상 작곡하지 않았던 시기에 쓴 작품이지만 적지 않은 교향곡을 작곡하며 얻은 경험을 버리지는 않았을 겁니다. 트리오 섹션의 목가적 선율이 일품인 3악장 Scherzo가 좋은 예입니다. German Wind Soloists의 연주로 듣겠습니다.
프란츠 라흐너의 실내악을 통해 19세기에 시도된 관악 편성 기법의 일부를 들어 볼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오늘 감상한 작품들 모두 기본적으로 목관 5중주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프란츠 라흐너의 〈목관 5중주 2번〉, E$\flat$장조 감상하며 마치는 것도 좋겠군요. 1820년대 작곡한 초기작이지만 3악장 Menuetto는 앞서 감상한 〈8중주〉의 3악장 Scherzo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빈-베를린 앙상블(Ensemble Wien-Berlin)의 연주입니다.
How to cite this: 계희승, “프란츠 라흐너의 실내악,” 『음악학 허물기』, 2021년 9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