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다사레 갈루피의 건반 소나타

KBS 음악실 ‘계희승의 음악 허물기’ 2021년 9월 13일 170번째 방송

오늘은 18세기 이탈리아 작곡가 발다사레 갈루피(Baldassare Galuppi, 1706–1785)의 건반 소나타 준비했습니다. 서양 음악사에서는 ‘오페라 부파의 아버지’로 기억되고 있지만 그의 건반 소나타는 아는 사람은 아는 명작. 얼마 전 발표된 비킹구르 올라프손(Víkingur Ólafsson)의 새 앨범 Mozart & Contemporaries에 갈루피의 건반 소나타 두 악장이 담겨 있는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겁니다. 단 두 곡만 수록되어 있는 게 아쉬울 정도로 기가 막힌 음악. 궁금하셨던 분들은 오늘 저와 함께 감상해 보시지요. 갈루피의 건반 소나타는 음반이 많지 않은데 특별히 마리안 믹달(Marian Migdal, 1948–2015)의 명연주 준비했으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한 곡 듣고 나눌까요?

Galuppi. D. Buranello Mae. Alla. Cap. Di. S. Marco. 1751 | Wikimedia Commons

첫 곡은 갈루피의 〈건반 소나타 9번〉, F단조, 1악장 Andante spiritoso. 갈루피는 100곡이 넘는 오페라를 작곡했습니다. 하지만 당대 존경받는 하프시코드 연주자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요. Opp. 1–2와 뒤에 감상할 Passatempo al cembalo를 제외하면 생전 출판된 건반 음악이 많지 않아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출판되지 않은 작품들은 자필 악보 필사본의 형태로 전해져 연주되었다고 하니 인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1 〈건반 소나타 9번〉 1악장은 올라프손이 이번 앨범의 첫 곡으로 선택한 작품이기도 한데, 왜 그랬는지 알 것 같은 매력적인 곡입니다. 마리안 믹달(Marian Migdal)의 연주로 감상해 보시지요.

Galuppi: Piano Sonata No. 9 in F Minor – I. Andante spiritoso. Video by Marian Migdal – Topic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는데 소나타 번호는 갈루피가 붙인 게 아니라 헤다 일리 비냐넬리(Hedda Illy Vignanelli)가 정리한 ‘일리’(I. 또는 Illy) 작품 번호를 따른 것입니다.2 하지만 작곡 연대순도 아니고 갈루피의 작품 목록도 여러 종류가 있어 같은 곡이지만 번호가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음반이 워낙 없어 자주 보기 힘들지만 최근에는 보다 업데이트된 프랑코 로시(Franco Rossi)의 2006년 목록(R.)을 사용하는 추세입니다.3 별로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고, 별도의 표시가 없는 경우 소나타 번호는 ‘일리’ 작품 번호라는 사실 정도 이해하시면 됩니다. (마리안 믹달의 앨범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음 감상할 작품은 〈건반 소나타 10번〉, G단조. 개성 뚜렷한 3개 악장으로 구성된 작품이라 전 악장 준비했습니다. 오페라 레치타티보처럼 시작하는 1악장 Largo는 아리아 선율과 번갈아 가며 한 편의 드라마를 완성합니다. 그런 면에서 극음악과 가장 거리가 먼 학구적 양식을 담은 2악장 Allegro의 푸가는 다소 파격적입니다. 나도 이런 것 쓸 줄 안다는 듯 잠시 잘난 척하는가 싶더니 3악장에서 다시 3박 계열의 춤곡을 들려주며 마무리합니다. 지루할 틈 없이 10분간 이어지는 작품. 마리안 믹달이 연주합니다.

Galuppi: Piano Sonata No. 10 in G Minor – I. Largo. Video by Marian Migdal – Topic
Galuppi: Piano Sonata No. 10 in G Minor – II. Allegro. Video by Marian Migdal – Topic
Galuppi: Piano Sonata No. 10 in G Minor – III. Allegro. Video by Marian Migdal – Topic

어느 작곡가나 마찬가지겠지만 친숙하지 않은 작곡가는 한 작품 전체를 다 들어 봐야 제대로 알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1악장의 레치타티보가 역시 오페라 작곡가답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데, C. P. E. 바흐(Carl Philipp Emanuel Bach, 1714–1788)의 건반 음악에서도 종종 발견되는 특징입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C. P. E. 바흐는 오페라를 한 곡도 쓰지 않았지만 갈루피는 기본적으로 오페라 작곡가였다는 것. 훨씬 자연스러운 면이 있지요. 다음 곡 〈건반 소나타 34번〉, C단조, 1악장 Larghetto도 마찬가지입니다. 레치타티보 오프닝과 이어지는 아리아가 매력적인 음악입니다. 감상할 1악장은 화성적으로 마무리되지 않은 채 2악장으로 넘어가다 보니 연주하다 만 것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 잠시 후 감상할 38번과 잘 연결되는 곡이니 설명 건너뛰고 바로 이어서 감상해 보시는 것도 좋겠군요. 올라프손이 선택한 갈루피의 또 다른 악장을 마리안 믹달의 연주로 감상해 보시지요.

Galuppi: Piano Sonata No. 34 in C Minor – I. Larghetto. Video by Marian Migdal – Topic

비장함이 느껴지는 아르페지오가 오페라 작곡가의 진가를 드러내는 듯합니다. 극음악 작곡가 갈루피의 면모는 2악장으로 구성된 〈건반 소나타 38번〉, C단조에서도 드러납니다. 앞서 감상한 34번과 함께 1781년 작곡한 하프시코드 곡집 Passatempo al cembalo에 담긴 작품입니다. ‘쳄발로의 위로’라고 번역하기도 하는데 사실 직역하면 ‘쳄발로의 여흥’ 정도? 1악장 Allegro moderato는 34번 1악장처럼 아르페지오로 시작하지만 비장함보다는 서정성이 느껴지는 악장입니다. 이어지는 2악장 Allegretto는 경쾌한 3박자 음악으로 좋은 대조를 이루며 마무리합니다. 마리안 막달의 연주입니다.

Galuppi: Piano Sonata No. 38 in C Minor – I. Allegro moderato. Video by Marian Migdal – Topic
Galuppi: Piano Sonata No. 38 in C Minor – II. Allegretto. Video by Marian Migdal – Topic

발다사레 갈루피처럼 시대적으로 바흐와 모차르트 사이에 활동했지만 지금은 기억되지 않는 작곡가들이 많습니다. 이번 올라프손의 앨범도 이 시기에 활동한 작곡가들의 음악을 모차르트와 함께 들려주는 구성이지요. 예전에는 바로크 이후, 고전주의 이전이라고 해서 ‘전고전주의’(pre-classical)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지금은 (적어도 음악학계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게 아무런 의미가 없거든요. 대신 1720–1780년 활동한 작곡가들의 음악을 특징짓는 ‘갈랑 양식’(galant style)을 선호합니다.4 C. P. E. 바흐와 J. C. 바흐(Johann Christian Bach, 1735–1782)가 대표적인 작곡가지만 오늘 만난 갈루피, 심지어 모차르트의 음악에서도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다양한 음악적 실험이 있었던 시기인 만큼 우리에게는 덜 알려졌지만 매력적인 음악 가득하니 또 만날 기회가 있을 겁니다.

오늘 첫 곡으로 감상한 갈루피의 〈건반 소나타 9번〉, F단조 중 1악장 Andante spiritoso를 비킹구르 올라프손의 연주로 감상하며 이야기 마치겠습니다. 지난 10년간 DG가 클래식 음악 M/V에 꽤 진심인 편이었는데 학계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 한 게 조금 의아하지만 이 얘기는 다음에 또 하지요. 예쁜 애니메이션과 함께 감상해 보세요.

Víkingur Ólafsson – Galuppi: Piano Sonata No. 9 in F Minor: I. Andante spiritoso. Video by Deutsche Grammophon – DG

How to cite this: 계희승, “발다사레 갈루피의 건반 소나타,” 『음악학 허물기』, 2021년 9월 13일.


  1. 건반 소나타만 130곡 가까이 썼다는 말도 있지만 학술적인 근거가 충분하지 않아 이에 동의하는 음악학자들은 거의 없습니다.

  2. Hedda Illy, Indice tematico delle sonate e dei concerti in Sonate per cembalo, Vol. 1, Revisione e trascrizione di Hedda Illy (Rome: de Santis, 1969), iv–xxviii.

  3. Franco Rossi, Catalogo tematico delle composizioni di Baldassare Galuppi, Parte I, Le opere strumentali (Padova: I solisti veneti, 2006).

  4. 간혹(사실 종종) ‘갈랑 양식’을 ‘로코코 양식’으로 설명하는 경우를 보는데, 음악을 묘사하는 데 건축, 미술 용어를 사용하는 게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음악학자 로버트 여딩엔의 지적에 동의합니다. (음악이 ‘로코코’하다는 게 대체 무슨 뜻인가요?) 1720–1780년은 음악학자 다니엘 헤르츠의 저서를 따른 것입니다. Robert O. Gjerdinge, Music in the Galant Styl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7), 5–6; Daniel Heartz, Music in European Capitals: The Galant Style, 1720–1780 (New York: W. W. Norton,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