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폰 쳄린스키 탄생 150주년

KBS 음악실 ‘계희승의 음악 허물기’ 2021년 10월 11일 173번째 방송

오늘은 이번 주 목요일(10월 14일) 150번째 생일을 맞는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겸 지휘자 알렉산더 폰 쳄린스키(Alexander von Zemlinsky, 1871–1942)의 피아노 소품 준비했습니다. 아르놀트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 1874–1951)의 스승이자 처남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브람스와 말러가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작곡가. 생전 출판된 작품은 27곡뿐이지만 미출판된 60여 곡을 더하면 100곡 가까이 됩니다. 그의 가곡과 현악사중주, 관현악은 지금도 종종 연주되는 반면 초기작에 속하는 피아노 소품은 들을 기회가 많지 않은데 묵혀 두기에는 아까운 음악. 일단 한 번 들어 보세요.

Alexander von Zemlinsky, ca. 1900,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첫 곡은 ‘빈의 추억’(Erinnerungen aus Wien)이라는 부제로 잘 알려진 1895년 작품 《알붐블라트》(Albumblatt). 만 24세에 작곡한 소품이지만 바그너를 연상케 하는 화성과 브람스의 피아니즘이 훅 치고 들어오며 귀를 기울이게 만듭니다. 엠마뉴엘 토르콰티(Emanuele Torquati)의 연주로 감상해 보시지요.

Albumblatt (Erinnerungen aus Wien). Video by Emanuele Torquati – Topic

쳄린스키가 처음 출판한 작품도 피아노곡이었습니다. 1891년경 작곡한 《전원무곡》(Ländliche Tänze), Op. 1. 그 이전에 쓴 작품도 물론 있지만 《전원무곡》은 쳄린스키가 출판한 첫 작품입니다. 총 12곡으로 구성된 이 작품에는 쇼팽, 슈만, 멘델스존, 브람스 등 19세기 대가들의 어법이 골고루 담겨 있습니다. 그동안 공부했던 것들을 한데 모아 자신의 방식으로 소화해 출판한 만 20세 청년의 작품이지요. Op. 1은 세상에 내놓는 첫 작품이니까 왠지 ‘선언적’일 것 같지만 대가들의 Op. 1을 두루 살펴보면 의외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어쩌면 본인은 선언적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 봤자 20세 전후의 작품들. 선대 작곡가들에 기대어 자신의 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일 겁니다.

12곡 전부 들을 수 없어 1번부터 5번까지 준비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꿈을 노래하는 3번(Träumerisch)과 5번(Hinträumend)을 좋아합니다.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대체 휴일을 즐기고 계신 분들도 있겠지만 저처럼 여느 월요일과 마찬가지로 출근해 근무 중인 분들에게 잠시나마 여유를 선사하는 음악입니다. 엠마뉴엘 토르콰티의 연주입니다.

Ländliche Tänze, Op. 1: No. 1, mit Wärme. Video by Emanuele Torquati – Topic
Ländliche Tänze, Op. 1: No. 2, Flüchtig. Video by Emanuele Torquati – Topic
Ländliche Tänze, Op. 1: No. 3, Träumerisch. Video by Emanuele Torquati – Topic
Ländliche Tänze, Op. 1: No. 4, Sehr schnell und leicht. Video by Emanuele Torquati – Topic
Ländliche Tänze, Op. 1: No. 5, Hinträumend. Video by Emanuele Torquati – Topic

짤막한 소품들이지만 쳄린스키가 이른 나이에 이미 대가들의 어법을 자유롭게 구사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대는 이어서 감상할 1901년 작품 《한 줄기의 빛》(Ein Lichtstrahl)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목이 멋지지 않나요? 사실 직역하면 ‘광선’… 정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시적으로 의역해서 더 많이 부르는 것 같습니다.

《한 줄기의 빛》은 피아노를 위한 마임극(mime drama)입니다. 연기자들이 무대 위에서 오스카 겔러(Oskar Geller)의 시나리오에 따라 마임을 할 때 연주되는 곡이지요. 계획된 두 차례의 공연이 모두 취소되면서 오랜 시간 묻혀 있다가 1992년 처음 출판, 연주되었으니 작곡 후 90년이 지나서야 세상에 알려지게 된 작품입니다. 평균 연주 시간 15분 내외로 앞서 감상한 소품과 비교하면 제법 긴 곡이지만 기본적으로 극작품이기 때문에 변화가 빠르고 많은 일들이 일어나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쳄린스키가 빈에서 지휘자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1901년 작품. 엠마뉴엘 토르콰티의 연주로 감상해 보시지요.

Ein Lichtstrahl. Video by Emanuele Torquati – Topic

100곡 가까운 작품을 남겼지만 쳄린스키의 본업은 지휘였습니다. 우여곡절은 있었으나 문화의 성지 빈에서 안정적으로 활동했던 것을 보면 꽤 능력 있는 지휘자였을 겁니다. 그렇다고 아주 성공적인 지휘자는 또 아니어서 1938년 미국으로 이주할 때까지 여러 악단을 돌며 쉬지 않고 활동했습니다. 주로 오페라단 지휘를 맡았기 때문에 극작품과 인연이 깊고 직접 오페라를 쓰기도 했습니다.

‘세기말’(fin-de-siècle) 빈에서 활동한 음악가답게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는데 1898년 작품 《리하르트 데멜 시에 의한 환상곡》(Fantasien über Gedichte von Richard Dehmel), Op. 9, 3번곡 ‘사랑’(Liebe)에서 지나간 시절에 대한 향수를 느낄 수 있습니다. 엠마뉴엘 토르콰티가 연주합니다.

Fantasien über Gedichte von Richard Dehmel, Op. 9: No. 3, Liebe. Video by Emanuele Torquati – Topic

돌이켜 보면 2021년에는 기념일이 유독 많았습니다. 올 한 해 〈음악 허물기〉에서 소개한 작곡가만 해도 브와디스와프 젤렌스키(Władysław Żeleński, 1837–1921)부터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zolla, 1921–1992), 요한 필리프 키른베르거(Johann Philipp Kirnberger, 1721–1783), 토마소 알비노니(Tomaso Albinoni, 1671–1751), 폴린 비아르도-가르시아(Pauline Viardot-Garcia, 1821–1910), 조스캥 데 프레(Josquin des Prez, ca. 1450–1521), 엥겔베르트 훔퍼딩크(Engelbert Humperdinck, 1854–1921), 그리고 쳄린스키까지. 거의 매달 한 번씩 만난 것 같습니다. 방송 놓치신 분들은 메뉴의 선곡표를 클릭해 다시 들어 보세요.

사실 숫자(주로 50의 배수?)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잊힌 작곡가들을 다시 한 번 기억하고 들어 볼 수 있는 핑계랄까요. 그래서 다음 주에도 준비했습니다. 올해 서거 400주년을 맞는 네덜란드 작곡가 얀 피에테르손 스베일링크(Jan Pieterszoon Sweelinck, 1562–1621). 오르간 연주자이거나 대학원에서 서양음악사를 전공하지 않는 이상 만날 일이 거의 없는 작곡가이지만 건반 음악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스베일링크의 작품은 다음 주 〈음악 허물기〉 시간에 만날 수 있습니다.

How to cite this: 계희승, “알렉산더 폰 쳄린스키 탄생 150주년,” 『음악학 허물기』, 2021년 10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