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스베일링크 서거 400주년

KBS 음악실 ‘계희승의 음악 허물기’ 2021년 10월 18일 174번째 방송

지난 토요일(10월 16일)은 올해 서거 400주년을 맞는 16세기 네덜란드의 오르가니스트 겸 작곡가 얀 피에테르손 스베일링크(Jan Pieterszoon Sweelinck, 1562–1621)의 서거일이었습니다. 바흐 이전 오르간과 건반 음악의 초석을 다진 인물. 한때 독일 함부르크를 대표하는 교회 오르간 연주자가 모두 스베일링크의 제자였을 정도로 대가들의 대가였습니다. 지금도 오르간 음악가로 기억되고 있지만 성악 음악도 작곡한 ‘올 라운더’ 스베일링크의 명작들. 오늘 모두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한 곡 듣고 나눌까요?

Portrait of Sweelinck by his brother Gerrit Pietersz Sweelink, 1606,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첫 곡은 모테트 〈깊은 구렁 속에서〉(De profundis), SwWV 170. 1619년 출판된 모테트집 《거룩한 노래들》(Cantiones Sacrae)에 수록된 곡입니다. 르네상스 시대에서 바로크로 넘어가는 시기에 활동한 스베일링크는 네덜란드 다성 음악 황금기의 마지막 주자였습니다. 당시 최신 트렌드였던 건반 음악에서도 두각을 나타냈지만 생전 출판된 작품은 단 한 곡도 없는 반면 그의 성악 음악은 일부를 제외하면 전부 출판되었습니다. 스베일링크가 오르간 연주뿐만 아니라 성악 음악 작곡가로서도 인정 받았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작품입니다. 〈깊은 구렁 속에서〉는 시편 130장 1절 “깊은 구렁 속에서, 주님, 당신께 부르짖나이다.”를 가사로 사용합니다. 수많은 작곡가들이 곡을 붙인 이 성경 구절을 스베일링크는 어떻게 표현했는지. 들어 볼까요? 다니엘 로이스(Daniel Reuss)가 이끄는 카펠라 암스테르담(Cappella Amsterdam)이 노래합니다.

De profundis. Video by Daniel Reuss – Topic

〈음악 허물기〉 시간에 올해 서거 500주년을 맞는 조스캥 데 프레의 〈깊은 구렁 속에서〉를 들어 보기도 했는데 스베일링크의 성악 음악도 굉장히 매력적입니다다. 한 곡만 듣고서는 알 수 없으니 하나 더 들어 보지요. 역시 같은 모테트집 《거룩한 노래들》에 수록된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Beati pauperes), SwWV 156. 마태복음 5장 산상 설교 중 참행복에 관한 내용을 가사로 사용합니다. 앞서 감상한 〈깊은 구렁 속에서〉가 숙연한 분위기였다면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는 상대적으로 밝은 음악. 네덜란드 르네상스 다성 음악 전통의 정점에 있었던 스베일링크의 해석으로 감상해 보시지요. 다니엘 로이스와 카펠라 암스테르담이 부릅니다.

Beati pauperes. Video by Daniel Reuss – Topic

스베일링크의 성악 음악 두 곡 들어 봤는데 역시 그의 건반 음악 들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 시대 최신 트렌드는 건반 음악. 스베일링크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이른 나이에 암스테르담 구교회(Oude Kerk)의 오르가니스트로 부임해 생을 마감할 때까지 40년 이상 활동했지만 예배 중 오르간 연주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교회 오르간 연주자와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긴 얘기 짧게 하면 1578년 암스테르담이 신교만 인정하기로 하면서 칼뱅교로 개혁합니다. 화려함을 극단적으로 금기시했던 칼뱅교는 예배 중 다성 음악과 오르간 연주도 금지한 것으로 유명하지요. 그래서 스베일링크는 오전과 저녁 예배가 끝난 후 열린 오르간 리사이틀에서 연주를 했습니다. 매일 두 차례, 한 시간씩 (즉흥) 연주를 했으니 원래 재능도 있었겠지만 이쯤 되면 실력이 늘지 않는 것도 이상합니다.

Oude Kerk, Amsterdam Municipal Department for the Preservation and Restoration of Historic Buildings and Sites (bMA), Wikimedia Commons
Double virginal by Lodewijck Grouwels, 1600, MET 89.4.1196 (CC0 1.0), Wikimedia Commons

오르간은 물론이고 하프시코드와 영국에서 유행하던 버지널(virginal)이라는 건반 악기까지 유행하던 시기였지만 생전 출판된 적이 없는 스베일링크의 건반 음악이 정확히 어떤 악기를 염두에 두고 쓴 것인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피터 필립스(Peter Philips, 1560–1628), 존 불(John Bull, 1562–1628) 같은 네덜란드에 정착한 영국 작곡가들과 교류한 스베일링크는 버지널도 적극 사용했는데 하프시코드와 소리가 많이 다릅니다. 이번 기회에 한 번 들어 보세요. 버지널 소리만 들으면 비교가 안 될 테니 하프시코드로 연주하는 〈날아다니는 요정〉(Vluchtige nymph, SwWV 331) 먼저 듣고 바로 이어 버지널로 연주하는 〈눈물의 파반느〉(Pavana Lachrimae, SwWV 328) 감상하겠습니다. 로버트 울리(Robert Woolley)가 연주합니다.

Vluchtige nymph, SwWV 331. Video by Robert Woolley – Topic
Pavana Lachrymae, SwWV 328. Video by Robert Woolley – Topic

오늘 마지막 곡은 가장 유명한 스베일링크 작품 가운데 하나 《반음계적 환상곡》(Fantasia Chromatica, SwWV 258)입니다. 그의 서거 400주년을 기념해 특별히 헬무트 발햐(Helmut Walcha, 1907–1991)의 연주로 준비했습니다. 제목 그대로 반음계적으로 시작하는 곡이라 처음에는 조금 난해하게 들릴 수 있지만 금방 익숙해집니다. 바흐의 스승의 스승, 혹은 그 스승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스베일링크의 대작. 오르간이 낼 수 있는 소리를 기가 막히게 조합하는 발햐의 현란한 테크닉은 덤입니다. 이게 정말 오르간 소리가 맞나 싶은 순간도 있으니 귀 기울여 들어 보세요. 헬무트 발햐(Helmut Walcha)의 연주입니다.

Sweelinck: Fantasia chromatica. Video by Helmut Walcha – Topic

2021년을 기념하는 작곡가와의 만남은 다음 주에도 계속됩니다. 2006년 타계한 영국 작곡가 말콤 아놀드 경(Sir Malcolm Arnold, 1921–2006)의 탄생 100주년. 제가 너무나 사랑하는 그의 명곡들 고르는 중입니다. 〈음악 허물기〉에서 정말 오랜만에 영화 음악도 들려 드릴 수 있겠네요. 다음 주 방송 놓치면 아마 후회하실 걸요?

How to cite this: 계희승, “얀 스베일링크 서거 400주년,” 『음악학 허물기』, 2021년 10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