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라이네케의 실내악

KBS 음악실 ‘계희승의 음악 허물기’ 2021년 11월 1일 176번째 방송

이번 주에는 19세기 독일의 작곡가 겸 지휘자 카를 라이네케(Carl Reinecke, 1824–1910)의 실내악 준비했습니다. 그의 음악적 성향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멘델스존, 슈만, 브람스와 같은 전통주의자. 앞의 두 사람과는 특히 가까운 사이였지요. 그의 1882년 《플루트 소나타》, Op. 167, 일명 ‘운디네’나 1908년 《플루트 협주곡》, Op. 283 같은 작품들은 지금도 자주 연주됩니다. 자신이 직접 작곡한 대가들의 피아노 협주곡 카덴차를 모아 출판한 Op. 87도 중요한 사료로 남아 있고요. 그 밖에도 종종 연주되는 작품이 몇 곡 더 있지만 출판된 마지막 작품이 Op. 288. 30곡이 넘는 미출판곡까지 평생 300곡을 넘게 쓴 작곡가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리 친숙한 이름은 아닙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제가 사랑하는 현악사중주 세 곡의 느린 악장과 피아노사중주 준비했습니다. 가을에 잘 어울리는 음악들. 한 번 들어 보세요. 낭만 가득한 하루를 약속합니다.

Photo of Carl Reinecke by Alfred Naumann, 1893; with his autograph of 1908,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첫 곡은 1852년 작품 《현악사중주 2번》, F장조, Op. 30 중 2악장 Andante. 20대 후반에 쓴 초기작 가운데 하나입니다. 라이네케는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알리기도 했지만 어린 시절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배웠고, 음악가였던 아버지가 일주일에 한 번씩 연주자들을 초대해 현악사중주를 들려 주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모차르트, 베토벤의 현악사중주를 꿰고 있었지요. 특히 슈만의 1842년 《현악사중주》, Op. 41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그런 슈만의 영향이 뚜렷한 《현악사중주 2번》 2악장. 라인홀트 콰르텟(Reinhold Quartett)의 연주로 감상해 보시지요.

String Quartet No. 2 in F Major, Op. 30: II. Andante. Video by Reinhold Quartett – Topic

라이네케는 몰랐지만 슈만은 그의 음악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비평을 쓰기도 했는데 슈만의 평을 요약하면 아주 특출나지는 않지만 딱히 흠잡을 데도 없는, 꽤 괜찮은 음악을 쓰는 친구. 평가 받는 입장에서는 호평으로도, 혹평으로도 들릴 수 있겠지만 슈만이 자신의 1845년 작품 《4개의 푸가》, Op. 72를 그에게 헌정한 것을 보면 혹평은 아닌 것 같습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덜 알려진, 그래서 음반도 거의 없는 슈만의 《4개의 푸가》 잠시 듣고 갈까요? 푸가가 이렇게 낭만적일 수 있는 형식이었나 싶은 1번 푸가(Nicht schnell). 야라 탈(Yaara Tal)의 연주로 준비했습니다.

Fugue in D Minor, Op. 72, No. 1: Nicht schnell. Video by Yaara Tal – Topic

다음 곡은 1890년 작품 《현악사중주 4번》, D장조, Op. 211 중 2악장 Adagio ma non troppo. 앞서 감상한 《현악사중주 2번》과 작품 번호(Op. 30) 차이가 많이 납니다. 라이네케는 작곡가와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알렸지만 무엇보다 명지휘자였습니다. 1860년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Leipzig Gewandhaus Orchestra)의 음악 감독으로 취임해 명문 관현악단의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1895년까지 무려 35년간 이 자리를 유지했지요. 오케스트라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입니다. 물론 이 시기에도 작곡을 멈추지 않고 《현악사중주》 3번과 4번을 출판했습니다.

《현악사중주 4번》과 앞서 감상한 2번 사이에는 약 40년의 세월이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2번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작품으로 들린다는 점에서 그의 전통주의자다운 면모가 드러납니다. 물론 디테일을 따지자면 2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숙한 작품입니다. 이를 테면 《현악사중주 4번》의 조성 변화(구조)는 브람스의 그것과 비교해도 결코 덜 진보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음악학자들에게 맡겨 두기로 하지요. 감상할 2악장은 크게 일 벌리지 않고 평온하게 진행되는 음악. 가볍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라인홀트 콰르텟이 연주합니다.

String Quartet No. 4 in D Major, Op. 211: II. Adagio ma non troppo. Video by Reinhold Quartett – Topic

《현악사중주》 2번과 4번 사이에 약 40년의 시간이 있으니 《현악사중주 3번》은 언제 쓴 것인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정말로 《현악사중주 2번》 후 약 20년이 지난 1874년에 《현악사중주 3번》, C장조, Op. 132를 완성했습니다. 20년에 한 곡씩(!) 쓴 셈입니다. 그렇다고 브람스처럼 걸작을 쓰겠다는 집념 때문에 오래 걸닌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지휘자로 워낙 바쁘기도 했고, 그 사이에 100곡 가까이 되는 작품을 쓰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인지도 모르지요. 앞서 감상한 두 개의 느린 악장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2악장 Lento ma non troppo. 마음을 따뜻하게 녹이는 음악입니다. 라인홀트 콰르텟의 연주로 듣겠습니다.

String Quartet No. 3 in C Major, Op. 132: II. Lento ma non troppo. Video by Reinhold Quartett – Topic

어린 시절 밤마다 아버지가 초대한 음악가들의 현악사중주 연주를 듣고 자라서 그런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음악입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나중에는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그의 피아노 협주곡도 참 좋지만 오늘은 그보다 내밀한 《피아노사중주 D장조》, Op. 272 중 3악장과 4악장으로 대신하지요. 1910년 타계한 라이네케는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작곡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피아노사중주 D장조》는 그의 나이 80세가 되는 1904년 출판된 작품이지만 전혀 그렇게 들리지 않습니다. 노년의 여유가 느껴지는 3악장 Adagio와 생기 발랄한 4악장 Finale. Rondo – Allegretto. 리노스 앙상블(Linos Ensemble)이 함께합니다.

Piano Quartet in D Major, Op. 272: III. Adagio. Video by Linos Ensemble – Topic
Piano Quartet in D Major, Op. 272: IV. Finale. Rondo – Allegretto. Video by Linos Ensemble – Topic

출판된 마지막 작품이 Op. 288이면 정말 많은 곡을 쓴 것인데 안타깝지만 이 중 절반도 녹음되지 않아 들을 방법이 없습니다. 절반은요. 3분의 1도 안 되어 있으니까요. 또 아나요? 누군가 오늘 방송을 듣고, 혹은 이 블로그의 글을 읽고 아직 녹음되지 않은 라이네케의 명작을 발굴해 낼지. 혹시 아직 녹음되지 않은 라이네케의 명곡을 발견해 연주하시게 되면 꼭 연락 주세요. 들으러 가겠습니다!

How to cite this: 계희승, “카를 라이네케의 실내악,” 『음악학 허물기』, 2021년 1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