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음악실 ‘계희승의 음악 허물기’ 2021년 11월 22일 179번째 방송
이탈리아의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 조반니 바티스타 레알리(Giovanni Battista Reali, 1681–1751). 음악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알려진 바가 거의 없는 베일에 싸인 음악가입니다. 레알리에 비하면 몇 주 전에 만난 발터 라블(Walter Rabl, 1873–1940)은 셀럽이죠. 하지만 기록에 따르면 18세기 초 베니스에서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1741)와 양대 산맥을 이루었던 명 바이올리니스트. 오늘은 그의 트리오 소나타(Trio Sonata) 준비했습니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저스틴 테일러(Justin Taylor)가 이끄는 르 콩소르(Le Consort)의 연주가 일품입니다. 불과 열흘 전에 나온 앨범이지만 몇 곡을 제외하면 모두 처음 노금되는 것이라고 하니 지금까지 들어 볼 기회조차 없었던 음악이라는 뜻이지요. 녹음도 얼마나 기가 막힌지 바로크 음악 팬이 아니더라도 즐겁게 감상하실 수 있을 겁니다.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 르 콩소르의 이번 앨범 Specchio Veneziano은 (오늘 첫 곡 뮤직비디오를 제외하면 아직) 유튜브에 등록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각자 이용하시는 국내외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감상하시는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구독 중인 국내 서비스가 없어 등록되어 있는지 잘 모르겠고 애플 뮤직과 스포티파이에서는 감상할 수 있으니 아래 플레이리스트 남깁니다.
오늘 감상할 작품은 모두 1709년 출판된 레알리의 〈트리오 소나타〉, Op. 1에서 선곡했습니다. 트리오 소나타는 이 시대 가장 유명한 기악 장르 가운데 하나. ‘신포니아’(Sinfonia)로 표기하기도 하는데 긴 얘기 짧게 하면 같은 겁니다. 기악 장르의 보편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18세기 초 ‘신포니아’는 웬만한 기악 합주곡에 다 갖다 붙일 수 있는 이름이었으니까요.
Op. 1에는 모두 12곡이 담겨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곡부터 먼저 듣죠. 〈신포니아 12번〉, 일명 ‘폴리아’(Folia). 레알리는 처음 들어 봤어도 ‘폴리아’ 주제는 어디선가 들어 보셨을 겁니다. 이를 테면 라흐마니노프 《코렐리 변주》(Variations on a Theme of Corelli, Op. 42, 1931). 이 곡의 주제를 코렐리(Arcangelo Corelli, 1653–1713) 작품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폴리아’는 정확한 기원이 알려지지 않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코렐리도 ‘폴리아’ 주제에 의한 변주곡(Violin Sonata in D minor, Op. 5, No. 12, ‘La Folia,’ 1700)을 썼으니 잘 못 된 건 아니지만 ‘폴리아’는 코렐리 이전부터 이후까지 비발디를 포함한 수많은 작곡가들이 사용한 선율입니다. 레알리는 어떻게 변주했는지 뮤직비디오로 감상해 보시죠. 그 아래에는 이번 앨범에 함께 수록된 비발디의 ‘폴리아’도 남깁니다. 첼리스트 빅토르 줄리앙 라페리에르(Victor Julien-Laferrière)가 콘티누오로 참여한 르 콩소르의 연주입니다.
코렐리의 영향이 뚜렷한 작품입니다. 코렐리는 레알리를 비롯한 후대 작곡가들에게 기악 음악과 조성 음악의 가능성을 제시한 인물이니까요. 레알리의 Op. 1이 코렐리에게 헌정되었다는 사실만 봐도 그의 영향력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Op. 1의 마지막 곡부터 들었는데 코렐리의 흔적이 더욱 분명한 〈신포니아 1번〉, D장조 들어 보죠. 자필 악보에는 앞서 감상한 12번 ‘폴리아’를 제외한 나머지 곡들이 홀수는 ‘소나타’(Sonata), 짝수는 ‘카프리치오’(Capricio)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신포니아 1번〉은 사실 〈소나타 1번〉. 음원 사이트나 음반 자켓에는 D단조로 표기되어 있는데 들어 보면 D장조가 맞습니다. 단순 오타인 듯한데 착각하지 마시라고. 르 콩소르가 연주합니다.
코렐리의 영향을 받았다지만 비발디가 그랬던 것처럼 레알리도 결국 자신만의 소리를 찾았을 겁니다. 좋은 예가 〈신포니아 10번〉, A장조. 자필 악보 기준으로 〈카프리치오 5번〉에 해당합니다. 당시 트리오 소나타로서는 제법 높은 음역대를 선회하는 곡입니다. 그리고 앞서 감상한 〈신포니아 12번〉과 마찬가지로 콘티누오 파트가 추가되었는데, 베이스 음을 더블링하는 게 고작이었던 이 시대 흔한 트리오 소나타의 콘티누오와는 달리 독립적인 선율을 연주합니다. 빅토르 줄리앙 라페리에르의 바로크 첼로, 르 콩소르가 함께합니다.
이 시대 바이올린 대가들의 작품을 듣고 있으면 이탈리아가 음악적으로 얼마나 발전된 곳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특히 바이올린 음악에 있어서는 베니스를 따라올 곳이 없었지요. 영국의 음악비평가 찰스 버니(Charles Burney, 1726–1814)의 기록에 따르면 그냥 길에 널린 게 최소한 비발디 수준의 연주자들.1 물론 MSG가 첨가된 표현이겠지만 그 정도로 도시 전체가 뛰어난 음악가들로 가득했던 곳이라는 뜻일 겁니다. 오늘 마지막 곡 〈신포니아 9번〉, D단조도 그런 환경에서 작곡된 작품. 르 콩소르의 연주로 감상하시죠.
앞서 언급한 대로 오늘 준비한 레알리의 음악은 모두 Op. 1에 수록된 곡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초 녹음된 것들이 대부분. 지금까지 감상할 기회가 없었다는 뜻이기도 한데 이렇게라도 들을 수 있어 좋습니다. 음반도 거의 없고 지금까지 알려진 작품도 1712년 출판된 Op. 2가 전부입니다. 어쩌면 그게 정말 다일 수도 있지만 또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니 그때까지 앨범에 수록된 다른 곡들 감상하며 기다리는 수밖에요.
How to cite this: 계희승, “조반니 바티스타 레알리의 트리오 소나타,” 『음악학 허물기』, 2021년 11월 22일.
Charles Burney, The Present State of Music in France and Italy (London, T. Becket and Co., 1771), 138–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