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뮤 뉴스레터 제19호

글의 순서를 고려하라. 에디터들은 기사를 다시 살피고 짜임을 새롭게 고치는 데 오랜 시간을 들인다. 글을 쓴 작가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무엇을 잘 알고, 독자들에게 어떤 점이 가장 호소력 있게 다가갈지 정확히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Op-Ed에서 나누는 온라인 대화는 보통 ‘순서’에 대한 것일 때가 많다. 우리가 봤을 때 핵심이라 여겨지는 대목인데, 저자가 너무 성급하게 혹은 너무 늦게 제시하는 것은 아닌가?

—트리시 홀, 『뉴욕타임스 편집장의 글을 잘 쓰는 법』 중에서
REALI // ‘Sinfonia XII, “Folia”’ by Le Consort & Victor Julien-Laferrière. Video by Alpha Classics

글쓰기에 관한 책들이 넘쳐 납니다. 가장 좋아하는 두 권은 소설가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와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의 『센스 오브 스타일』(The Sense of Style). 핑커의 책은 과학서 전문 번역으로 유명한 김명남 번역가가 옮기고 있다는 소식을 한참 전에 접한 것 같은데 아직이군요. 트리시 홀의 저서 뉴욕타임스 편집장의 글을 잘 쓰는 법』(더퀘스트, 2021)에는 사실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뉴스레터를 발행하며 ‘작가’인 동시에 ‘편집장’ 역할까지 하고 있는 처지에 보는 수밖에요. 뉴스레터 언뮤도 은근히 ‘순서’를 고민합니다. 어떤 이야기부터 해야 동료 음악학자와 학생들뿐만 아니라 평론가와 연주자, 애호가 모두를 아우르는 소식지가 될 수 있을지. 인용한 대목에서 말하는 ‘순서’는 한 편의 글에 관한 것이지만 기사 ‘배치’도 중요하니까요. 챕터를 넘나들며 읽고 있어 아직 판단하긴 이르지만 최애 글쓰기 책 세 번째 후보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그러고 보면 음악도 순서가 참 중요합니다. 흔히 ‘반복’의 예술이라고 하지만 형식의 관점에서 보면 음악은 결국 ‘순서’의 예술. 한 번 한 이야기를 언제 어떻게 다시 반복하는지가 음악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적어도 2017년 타계한 철학자 겸 음악학자 피터 키비(Peter Kivy)는 그렇다고 주장할 겁니다. 반복과 순서의 묘미는 변주곡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위의 영상은 18세기 초 베니스의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 조반니 바티스타 레알리의 〈트리오 소나타〉 12번 ‘폴리아.’ 르 콩소르와 빅토르 줄리앙 라페리에르의 연주로 감상하며 뉴스레터 제19호 시작합니다.


1. 조반니 바티스타 레알리의 트리오 소나타

이탈리아의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 조반니 바티스타 레알리(Giovanni Battista Reali, 1681–1751). 음악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알려진 바가 거의 없는 베일에 싸인 음악가입니다. 그에 비하면 몇 주 전에 만난 발터 라블(Walter Rabl, 1873–1940)은 셀럽이죠. 하지만 레알리는 18세기 초 베니스에서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1741)와 양대 산맥을 이루었던 명 바이올리니스트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KBS 음악실 ‘계희승의 음악 허물기’ 179번째 방송에서 그의 트리오 소나타(Trio Sonata) 만나 보시죠. 저스틴 테일러가 이끄는 르 콩소르의 연주가 일품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버튼으로 이어집니다.


2. 신간 안내

Alien Listening: Voyager’s Golden Record and Music from Earth. 음악이론가 다니엘 추아(Daniel K. L. Chua) 홍콩대 교수와 알렉스 레딩(Alex Rehding) 하버드대 교수의 신간입니다. 다소 생뚱맞은 제목처럼 들리지만 사실 음악은, 혹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서양고전음악은, 혹은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서양음악이론의 역사는 처음부터 ‘우주’ 혹은 ‘조화’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지금과는 ‘음악’을 대하는 태도도 방식도 굉장히 달랐지요. 이 책은 저자들이 지난 몇 년간 밀고(?) 있는 ‘Intergalactic Music Theory’의 결정체. 1977년 인류의 문화 유산을 싣고 지구를 떠난 보이저호는 태양계를 벗어나 지금 이 순간에도 우주를 떠돌고 있습니다. 언젠가 그 안에 담긴 음반이 또 다른 생명체에 의해 발견되었을 때 우리는 음악을 어떻게 다시 정의할 수 있을까요? 사랑과 화합보다는 증오와 분열이 판치는 시대에 꼭 필요한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혹시 출근길이라면 두 학자의 유쾌한 대화를 팟캐스트로 들어 보세요.

TMI: 모교에 계신 추아 선생님은 졸업 후에도 2년에 한 번씩은 국제학술대회에서 만나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최근에도 온라인으로 뵙긴 했지만 마지막 만남은 2019년. 당시 연구소 지원도 중단되어 한 학기 24.5학점 강의하며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푸념을 늘어놓않는데 학술대회 마지막 날 작별 인사하러 갔더니 안아 주시면서 건넨 말씀은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I want you to be happy). 호텔 돌아가는 길이 유독 뿌옇게 보였던 건 비밀입니다.


3. 학술대회 소식

지난 토요일(20일)에는 한국서양음악학회 정기 학술포럼이 있었습니다. 저도 학술위원 자격으로 라운드 테이블에 참석해 ‘음악학회의 기능과 역할’이라는 주제로 발제를 했지요. 말 그대로 발제였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이야기의 절반도 하지 않았고 그마저도 빙 둘러 했지만 공감해 주시는 분들도 계셨고 개인적으로 연락 주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참석하지 못 한 분들도 계실 텐데 학술대회에서 읽은 발제문은 아래 버튼으로 연결됩니다. 기본적으로 음악학자들의 고민을 다루고 있는 글이라 비공개로 설정되어 있지만 한국서양음악학회 회원이 아니더라도 국내외에서 활동 중인 음악학자라면 연락 주세요. 패스워드 보내 드리겠습니다.

음악학자들에게 10~11월은 학술대회 시즌입니다. 저도 10월 중순부터 토요일마다 좌장을 맡거나 발표 또는 발제를 하고 그게 아니더라도 참석하느라 한 달 넘게 주말 없이 지내는 중입니다. 이번 주 토요일(27일)에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서양음악연구소와 한국서양음악이론학회가 공동 개최하는 국제학술대회가 열립니다. 자세한 내용은 학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4. ‘음악학 허물기’ DB 업데이트

음악학 연구와 강의를 위한 DB에 Musicology NowSMT-V 항목을 추가했습니다. 각각 AMSSMT에서 발행하는 학술 콘텐츠. 음악학자들 간의 소통을 위한 새로운 형식의 채널이지만 대중에게 음악학자들이 하는 일을 알리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국내에도 이런 학술 콘테츠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음악학 허물기’가 하려는 일 중 하나입니다. Teaching > Resources에서 확인하세요.

이번 주 ‘음악과 질병, 장애의 문화사’ DB에는 요제프 하이든 항목이 추가되었습니다. Blahak과 동료들은 2015년 연구에서 그의 질병을 피질하혈관성뇌병증(SVE)으로 진단합니다. 치매 증상보다는 보행장애로 고생하던 시기 하이든이 완성한 작품은 1801년 초연된 마지막 오라토리오 《사계》(Die Jahreszeiten, Hob. XXI:3). 썩 좋아하는 작품은 아닌데 SVE 증상으로 작곡에 어려움을 호소했던 하이든이 이 음악에 무엇을 담아 냈을지, 다시 한 번 들어 봐야겠습니다. Medical Humanities > Database (beta)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5. 읽어 볼 만한 뉴스

앞서 언급한 대로 한 달 넘게 주말 없이 지내고 있다 보니 힘에 부치는군요. 주간 업무의 연장이 아니라 날 세우고 예민한 상태로 집중해야 하는 일들의 연속이라 이번 주 뉴스레터는 이쯤 하고 쉬어 가려 합니다. 그래도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한 가득. 『뉴욕타임스』의 음악비평가 앤서니 토마시니가 올해를 끝으로 물러납니다. 축하…는 아니고 그동안 수고하셨다고 해야 하나요?

오래 전 ‘학기 단위로 인생을 계획한다는 것의 의미’라는 제목으로 글을 남긴 적이 있는데, 주 7일의 라이프 스타일이 20세기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데이비드 헨킨 UC 버클리대 사학과 교수의 신간 The Week: A History of the Unnatural Rhythms That Made Us Who We Are은 의외의 방식으로 독자의 삶을 돌아보게 합니다. 질 레포어 하버드대 사학과 교수의 리뷰로 먼저 만나 보세요.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비전문가를 대상으로 쓴 글을 출판하는 『이온』과 『더 컨버세이션』도 읽을 거리로 가득합니다. 아델의 신곡 ‘Easy on Me’는 한 달 전에 들었을 때만 해도 별 감흥이 없었는데 지금은 다르게 들리네요. 그렇다고 사이먼 맥카시-존스 더블린 트리니티대 교수의 주장에 동의한다는 건 아니지만.

Adele – Easy On Me (Official Video). Video by Adele

국내에서는 별다른 인기를 누리지 못 하고 있는 데이비드 와인버거의 기고문은 놓치기 쉬운 기계학습의 본질이 무엇인지 되새기게 합니다. 음악과 아무 상관 없는 내용이지만 저처럼 작곡과 음악 이론을 전공한 음악학자라면 일독을 권합니다. 이 정도면 다음 주까지 충분하겠죠? 따뜻한 한 주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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