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하며

살면서 적지 않은 경험을 했지만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 하나를 꼽자면 2018년 5월 28일부터 KBS 클래식FM의 대표 프로그램 〈KBS 음악실〉에서 매주 월요일 ‘계희승의 음악 허물기’ 코너를 맡게 된 일입니다.

제가 태어난 해이기도 한 1979년, KBS 클래식FM 개국과 함께해 온 장수 프로그램이라 부담도 없지 않았고, 무엇보다 개편에 맞추어 갑작스레 투입되었던 터라 처음에는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도 적지 않았습니다. 코너명 ‘계희승의 음악 허물기’만 해도 그래요. 제작진과 사나흘 고심한 끝에 언뮤의 ‘음악학 허물기’에서 가져오기로 했다지만 ‘음악 허물기’라뇨.

그렇게 “국내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음악 사건과 최신 이슈들을 정리·분석해서 전달”한다는 코너 소개와는 달리 이리저리 방황하며 버틴 시간이 2~3개월. 서서히 코너의 정체성도 잡히기 시작하더군요. 지금 생각하면 그 시간을 감내해 준 제작진과 청취자들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사실상 처음 하는 방송이라 적응하는 데 시간은 좀 걸렸지만 어느덧 100회를 넘기면서 얻은 교훈 세 가지. 하나, 짧은 시간에 깊이 있는 이야기를 자세히 풀어내기는 어렵다. 둘, 주어진 시간 내에 소화 가능한 주제를 다뤄야 한다. 셋, 라디오는 어쨌건 선곡(음악)으로 승부하는 매체다… 정도로 요약됩니다.

자연스레 준비한 내용 대부분은 고스란히 하드디스크의 한 자리를 차지하며 쌓여 갔습니다. 2020년 5월 11일 어쩌다 100회를 넘기고 여전히 진행 중이니 100편이 넘는 글이 쌓인 셈입니다. 그사이 ‘다시 듣기’ 서비스도 종료되었지요. 그래서 생각한 대안이 방송에서 못다 한 이야기는 언뮤에 남기자는 것.

문제는 본업에 쫓기며 살다 보니 실행에 옮기기 쉽지 않다는 겁니다. “〈KBS 음악실〉 ‘계희승의 음악 허물기’의 못다 한 이야기는 매주 일요일 오전, 언뮤에 연재됩니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의 여유와 함께 음미할 수 있는 글이 되길 바라면서”라고 폼 나게 적고 싶지만 이 또한 지키지 못할 약속일 뿐. ‘연구’와 ‘강의’라는 본업에 충실하며 가끔 시간 날 때 한 번씩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