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소유할 수 있는가? 『검은 바이올린』

얼마 전 번역, 출간된 프랑스 소설 『검은 바이올린』(Le Violon noir, 1999)을 읽었다. 막상스 페르민(Maxence Fermine)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작가. 프랑스 문학(특히 ‘1950년대 이후’ 프랑스 문학)과는 잘 맞지 않아 멀리하는 편이지만 음악을 소재로 다룬 소설은 빠짐없이 읽으려고 한다. 별다른 고민 없이 집어 든 소설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때는 18세기 말 유럽. 바이올린이 전부인 소년 요하네스… Continue reading 음악은 소유할 수 있는가? 『검은 바이올린』

가즈오 이시구로의 “단조로움”이 주는 울림

1. 고백하건대 지루해서 읽다 말았다. 이제는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이야기다. 애초에 그의 소설을 집어 들었던 동기부터 그다지 ‘순수’(?)하지 못했는데 작년 봄에 보다 만 일드 《나를 보내지 마》(2016)가 계기였다. 아야세 하루카 팬이다… 이보다 훨씬 전에 원작과 조금 더 유사한 형태로 제작된 영화 Never Let Me Go (2010)가 개봉되었지만 제목 외에는 아무 정보도 관심도 없었던 터라 모르는 영화나 마찬가지였고.… Continue reading 가즈오 이시구로의 “단조로움”이 주는 울림

편의점의 소리를 듣다

1. 지난 주말에 조선일보 박돈규 기자의 기사 “편의점에서 세상을 쓰다”를 뒤늦게 접하고 부리나케 무라타 사야카의 소설 『편의점 인간』(2016)을 꺼내 보았다. 오랜전에 구입해 놓고 미처 펼쳐 보지 못한 책. 늘 그렇듯 와이프가 먼저 읽어버렸다. 2. “소설 『편의점 인간』은 ‘편의점은 소리로 가득 차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기사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문장이다. 소리연구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이런 대목에서… Continue reading 편의점의 소리를 듣다

“상황적 지식”의 미덕

지난 달 『스테이션 일레븐』(Station Eleven)을 완독한 후 잠자리 소설로 읽기 시작한 책은 James P. Hogan의 1977년작 Inherit the Stars. 소설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그 다음 책을 선택하기까지 시간이 제법 걸린다. Inherit the Stars로 굳히기 전에 집적댔던 책은 Jonathan Franzen의 Freedom (2010)과 Peter Swanson의 The Kind Worth Killing (2015) 두 권. Franzen의 Freedom은 워낙 명성이 자자한 소설이라 별 고민 없이 집어 들었고 명작임을… Continue reading “상황적 지식”의 미덕

타루스킨과 반스의 쇼스타코비치 (feat. 쇼펜하우어의 독서론)

1. 국내 독자들에게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잘 알려진 줄리언 반스(Julian Barnes)의 신작 소설 The Noise of Time의 서평이 뉴욕타임스에 올라왔다. 서평을 읽기 전에 두 번 놀랐는데 우선 올 초에 출간된 소설의 서평이 이제서야 올라왔다는 사실 때문이고, 또 한 가지 (더욱 놀랐던) 이유는 서평을 쓴 사람이 음악학자 Richard Taruskin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음악학자가 소설을 읽고 쓴 서평이 한 박자 늦게 올라온… Continue reading 타루스킨과 반스의 쇼스타코비치 (feat. 쇼펜하우어의 독서론)

“생존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니까”

소설은 주로 밤에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서 본다. 연구와 관련된 전문적인 내용의 글을 읽으면 오히려 잠이 깨는 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잠드는 순간까지 그렇게 치열하고 열심히 살아야 하나 싶기도 해서 지양하는 편이다. 아무튼 와이프와 내게는 하루 중 가장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다. 요즘 읽고 있는 소설은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Emily St. John Mandel)의 2014년작 『스테이션 일레븐』(Station Eleven). 책을… Continue reading “생존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니까”